‘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로 귀결되고 있다.
발의 9개월여만에 상임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 전국 광역의회 최초 제정 기대를 모았던 ‘의원행동강령 조례안’이 다시 벽에 부딪쳤다. 사실상 무산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도의회 윤화섭(민·안산) 의장은 지난 13일 운영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경기도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안’의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이를 두고 의회 안팎에서는 최근 안전행정부가 광역의원들에게 보좌관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과 맞물려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도의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고 책임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작 도의회 의원들이 의원행동강령조례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조례안은 공용물의 사적 사용과 직무 관련자로부터 금품수수 금지, 다른 기관·단체의 여비를 받은 국내외 활동 금지, 사무처 직원에 대한 성적(性的)인 말·행동 금지 등을 담고 있다.
이중 의원들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부분으로 공무국외여행 등에 대한 제약 부분을 꼽았다.
대통령령의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지방의원은 공무국외연수와 관련해 다른 기관·단체로부터 여비 및 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의장의 승인이 있을 경우 가능하다는 ‘구멍’이 존재한다.
최근 도의원들은 도 산하기관의 예산을 이용해 편법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여론의 질책을 받았지만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도의회에 따르면 A위원회 일부 의원은 최근 한 산하기관에 “해외연수 예산을 마련해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압력을 넣었고, B위원회 일부 의원 역시 상임위 소관의 산하기관에 압력을 행사해 해외연수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경기도체육회 ‘체육진흥대책비’ 예산의 일부로 여행경비를 편성, 런던올림픽 방문을 계획해 도의원 특권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원행동강령을 의결하기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여야 정치권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앞다퉈 ‘특권 포기’ 경쟁을 벌였지만, 정작 대선 이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과도 다를 바 없다. 잔여임기 1년여를 남기고 무리한 ‘특권 포기’에 나서지 않겠다는 속내도 깔려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안건 상정 보류 이유와 관련해 의원들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검토가 필요하다는 8명의 상임위원장들의 변명을 바라보는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도의회 C의원은 “입법예고 기간까지 포함해 10개월여에 걸친 기간동안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당당하게 대는 의원들을 이해할 수 없고 ‘일 하지 않은 의원’이라는 자기 고백과 다름없다”면서 “이런 의원들의 수준으로 어떻게 집행부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D의원은 “본회의 투표 결과가 공개되는 만큼 이번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될 경우 부결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안건이 통과되면 윤 의장이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회장직에 도전하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안건 상정을 보류하는 것 아닌가”라는 추측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