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자금 연루
정치인생 ‘최대 시련’
박 대통령 정성에 감복
‘신세는 반드시 갚는다’
2007년 이명박 아닌
‘박근혜 지지’ 선언
2008년 총선 공천서
친이계에 밀려
‘친박 공천 대학살’
결과 불복
‘친박연대’ 결성
총선서 14석으로 ‘돌풍’
1997년 한나라 사무총장 맡아
‘나섰다 하면’
승전보 전해
화성의 새로운 도약
‘역량 쏟겠다’ 약속에
시민들 ‘기대 부풀어’
“화성발전을 10년 앞당길 것입니다. 신분당선 전철을 봉담, 향남까지 연장하고 사통팔달 교통망을 만들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겠습니다”
서청원, 그가 돌아왔다.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그가 나서면 이긴다’는 선거 불패의 기록을 다시 한번 재연했다.
공천 때 부터 야당은 ‘비리 정치인에 대한 낙하산 공천’이라며 연일 폄하·비판했는가 하면 당내에서 조차 부정적 시각이 제기됐지만 6선의 관록과 뚝심으로 당당하게 극복하고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화성시민 역시 연고도 없는 그가 이번 보선에 뛰어 들었을 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새벽부터 밤까지 지역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자세를 낮춰 주민과 접촉하는 서 당선인의 인간적인 접근에 서서히 마음이 움직였고 특히 USKR 사업, 전철 수원~봉담~향남 연장선 추진 등 굵직한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집권당의 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그를 선택했다. 서청원 당선인의 정치 역정을 조명해본다.
서청원, 과연 그는 누구인가
1943년 4월3일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세골에서 태어난 서청원 당선자는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69년부터 1980년까지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 민주한국당 서울특별시 동작구에서 당선 후 국회에 입성한 후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을 계기로 YS의 상도동계에 속하게 된다. 1989년에는 김영삼 총재의 비서실장을 맡기도 했다.
그 후 13대 통일민주당, 14대 민주자유당, 15대 신한국당, 16대 한나라당에서 4선을 챙겼고 제18대 총선에서는 친박연대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이번 화성갑 보궐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서 당선인은 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 정무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 한나라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대표최고의원 등 수많은 직책을 원만하게 수행한 관록있는 정치인이다.
1998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에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박근혜 현 대통령을 대구에 공천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2002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맡아 16대 대통령 선거당시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대선을 이끌었지만 한나라당이 불법선거자금에 연류되며 당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 일선에 물러나게 됐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요청을 받고 캠프 고문을 맡으며 친박에 입문하게 된다.
MB를 때려잡을 기세로 활약을 했었지만 대선에 패배한 후 2008년 총선에서 친박계가 공천학살을 당하자 총대를 매고 친박연대를 출범시켜 국회의원 14명을 당선시키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인간냄새가 풍기는 정치인 서청원
서청원 당선인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보며 인간냄새가 풍기는 정치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1996년 5월8일 여당 당직개편으로 서청원이 원내총무에 임명될 당시 한 언론 기사를 보면 이같은 서 당선인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신한국당 서청원 신임 원내총무는 여권 개편때마다 중용가능성이 거론돼왔다. 94년 말 정무1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단골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하마평대로 됐다면 지금쯤 총장이나 총무를 서너 번은 족히 했음직하다. ‘5·8당직개편’ 과정에서도 시종 유력한 사무총장 후보로 꼽혔으나 결국 원내총무로 낙착됐다. 서 의원을 줄곧 당직의 우선순위에 거론되게 한 힘은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서 의원의 이미지가 대화주의자, 합리주의자, 의회주의자 등으로 각인된 게 작용했다. 서 의원은 평판에 걸맞게 당 내 민정계와 야당의원들에게 두루 무난한 대인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후략)”
이와 함께 서 당선인의 장점으로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아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점을 꼽는다.
자신이 63세대이고 기자(조선일보) 출신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을 도저히 지지할 수 없는데도 박 대통령의 정성에 감복해 한나라당 경선 때 선봉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2007년 초 이명박 후보 측과 박근혜 후보 측이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밀고 당기기를 할 때 상당수 언론인들은 인생 역정으로 봐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단호하게 박근혜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2002년 대선자금 문제로 교도소에 들어가 나왔을 때 박 전 대표가 가장 먼저 꽃을 들고 집으로 찾아와 격려한 데 대해 감읍했다는 것.
주변의 질책에 그는 그때마다 “서청원은 인생을 그렇게 산다”라고 웃어넘겼다고 한다.
서청원이 나서는 선거는 무조건 이긴다
서 당선인은 1997년 대선 패배로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을 맡아 1998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했고 세차례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승전을 기록했다.
2000년 제16대 총선때도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대승을 이끌어냈다.
한나라당 대표로서 치른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전국 16개 시·도지사 중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을 포함해 11개 시·도지사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한나라당 내 친이계의 독선에 반발, 친박연대 정당을 급조해 나섰던 2008년 총선에서는 창당 20여일만에 13.2%의 득표율, 14명의 당선자를 내는 기적을 일궜다.
이번 선거를 통해 그의 선거 이력에는 또 하나의 승리가 추가됐다.
“화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서 당선인. 서 당선인에게 거는 화성시민의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