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들은 선조들 경험과 자신의 체험을 통해 터득한 철학을 속담이란 이름으로 보존 전수해 왔다. 서양의 이름 있는 철학자나 동양의 공자 맹자의 언어와 문장보다 더 실감적이고, 무릎을 치며 ‘옳거니’ 싶은 함축된 인문학적 도(道)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담은 평범한 사람들의 철학이요 조상의 걸러진 넋의 결정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속담을 뒤집어 재미있게 비아냥대듯 표출하면서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웃음의 미학으로 삼고 있다. 에를 들어 본다면,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는 철학적 경구를 ‘인생은 더럽고 예술은 비싸다.’고 한다. 또한 ‘헌신하면 헌신짝 되고, 일찍 일어난 새는 늙은 새다.’라는 언어적 유희 같은 말도 등장시킨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나는, 내 몸에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하는 편이다. 그런 나의 성깔을 스스로 미워하며 두 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하늘을 뚫어지게 처다 보기도 했다. 무디지 못한 성깔은 타협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범하게 나서지 못하고 다가오는 사사건건이 근심스러웠다. 그러한 내가 무슨 행복과 효도와 영광의 시간이 있었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앨범
커피에 꿀을 조금 넣고 잘 저었다. 내가 내 몸에 공양한다는 마음으로 잔을 들어 입에 대고 마셨다. 처음 느껴보는 맛이다. 차에는 차의 맛이 있고 말에는 말맛이 있다. 또한 사람에게는 사람 냄새가 있다. 차의 향 같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강원도 시인을 만나면 산속 너와집 냄새가 있고, 김제 시인을 만나면 만경 들녘의 벼이삭 익어가는 훈풍 같은 느낌이 있다. 정의감은 생명의 진화를 위해 소중한 것으로써 작가는 목숨을 걸고 실천해야만 되는 줄 알고 살아왔다. 세월의 흐름 따라 그 정신의 날은 무뎌지고 생활의 질서 뒤로 물러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점검의 성찰에서 오는 뼈아픈 후회감과 함께 느껴지는 비굴함 같을 것이기도 하다. 이럴 때 거실에 홀로 앉아 낡아진 위장을 생각하여 가벼운 차 한 잔을 마시고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바른 언론관을 생각하며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며 살아가는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는 속 쓰림 없는 커피 맛이라 할까. 말맛이 시원시원하고 뒷맛이 개운하다. 아비에게 뭘 원하는 게 아니고, 지나친 원칙주의로서 완벽하게 살려하지 말고 그때그때 기쁨이요 즐거운 쪽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라는 뜻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한 가
해 뜨는 아침 산책길에서 올해의 진달래꽃을 본다. 활짝 핀 연분홍 꽃과 아가씨 유두 같이 붉은빛으로 맺혀 있는 꽃봉오리가 볼품이다. 만개한 꽃에는 작가의 느낌을 수신하는 안테나 같은 수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진달래꽃은 언제 보아도 수수하다. 그리고 겸손하다. 조선 땅에서 알게 모르게 피어나 농부의 가슴을 파고들어 안기고 때로는 힘겨운 농부를 위로하는 꽃이다. 꽃을 보면 어머니와 아내 생각이 난다. 외국으로 가서 공부하던 아들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함께 보면 좋을 텐데…’싶은 마음이다. 좋은 아침 가라앉은 마음으로 가족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날 때 나는 ‘행복으로 가는 길’ 임을 깨닫게 된다. ‘멋있는 사람은 가난하여도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작은 사치를 사랑한다.’ 고 했던 피천득의 문장도 생각난다. 얼마 전, 우연히 TV에서 MBC ‘PD 수첩’을 시청하게 되었다. 내용은 무슨 부장 검사인가를 하다 변호사로 있다는 사람의 아들이 어느 고등학교에서 동급생을 괴롭히고 왕따 시켜 피해 학생의 인생이 망가져 가는 사건 취재였다. 반면 가해 학생은 갑질 노릇하며 학교 폭력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제 아비의 힘으로 법 앞에 아무 문제없는 일로
대지마을 과수원에는 닭이 외출을 나와 외식을 즐기고 있다. 겨울 동안 갇혀 있다 나와서 그런지 닭들의 기분 좋은 모습을 보게 된다. 발톱으로 흙을 비집어 차내고 날개를 폈다 오므리기도 한다. 수탉은 암탉을 쫓아 따라가고 많은 닭이 새 풀을 쪼며 식도락에 취해 있다. 과수원의 해묵은 나무들은 겨울 모습 그대로 검은 빛이다. 나무들은 올해에는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을 것이며, 위하여 꽃을 피울 것을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이어서 큰 나무 곁에 세대교체를 위해 심어 놓은 어린나무에는 되도록 그늘 지지 않도록 하여 빠른 성장을 돕겠다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오늘 아침, 이 과수원 길에서 새봄을 발견하고 있다. 새봄에 생각나는 유머가 있다. 생전의 한승헌 변호사가 두 번째 평양 방문 때의 일이다. 숙소인 양강도 호텔 안 책방에서 『세계의 유모아』라는 책을 샀다고 한다. 그 안에 있는 유머 중 하나이다. 아버지 : 네가 좋아하는 과목은 무어냐? 딸 :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이에요. 아버지 : 정말이냐? 그렇다면 이 아버지도 기쁘다. 딸 : 예, 우리 수학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늘 외출을 하거든요. … 누가 뭐라 하든 3월은 졸업과 입학의 시즌이다.
훗날,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으로써 ‘챗지피티(chatGPT)를 내 주거 공간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 나는 외출하고 돌아와 챗(chat) 로봇(robot)에게 ’봄날은 간다‘는 옛 가요를 불러줘’ 라고 말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곧바로 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를 불러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곡이 흘러 들어가게 할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 리 – 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서낭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 – 날 – 은 - -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면 자연스럽게 속치마가 보일 것이고 속치마 속으로는?… 이 얼마나 고상하고 섹시한 표현인가. 세계적인 배우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센 바람에 위로 치솟아 허벅지가 다 드러나는 장면보다 훨씬 은근하고 점잖으며, 동양적인 멋과 맛이 절묘하지 않는가. 더욱 연분홍 치마는 봄바람의 동작이지만 마릴린 먼로는 광고 효과를 얻기 위한 돈벌이의 장난 같은 아이디어가 아니던가. 나는 이 ‘봄날은 간다.’ 는 노래와 ‘물레방아 도는 내력’의 대중가요를 듣고 부르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둘째 누나가 시집가서 처음으로
구정 새해를 함께 보내고자 서울에서 밤새워 달려온 아들과 손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손자와 손녀가 차에서 내려 ‘할머니!’ 하고 품으로 달려들면 아내는 힘껏 껴안으면서 아이들 등을 두드려주며 ‘어서 와’ 하고 반겼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해도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어서 오라’면서 손 벌려 환영해 주던 기억이 새롭다.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나면 언제 누구에게 이렇듯 따뜻하고 정감어린 어투로 환영 받던 일이 있었는가?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 정감어린 언어를 언제 듣고 못 들었던가. 구정 새해를 함께 보내고 아이들이 서울로 돌아간 다음 날 허전한 마음으로 도서관 주변 산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는 건장한 아들과 얼굴 빛 고운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믿음직스럽고 다정한 부자의 새벽길 같았다. ‘나는 저렇듯 살아오지 못했는데-’ 갑자기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으로 가슴이 건조해지는 순간이었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일까? 열심히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의 길일까? 행복한 가정은! 새삼스럽게 자문하게 되었다. 내 욕망만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며 동양 문학과 한국인의 문화와 멋도
작달막한 체격에 허리 굽은 할머니가 날씬한 손녀의 손을 잡고 힘겹게 걷고 있다. 이른 아침 풍경이 한 폭 그림 같다. 그림 속에는 생명의 아침 빛이 저녁의 어둠과 함께 세월의 흐름까지 내포되어 있다. 인생이 이렇듯 흐르고 흘러서 죽음의 마지막 페이지로 향하는가? 그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생각났다.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2천 년 전, 로마 공화정의 개선식에서부터 비롯된 이 말은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죽는다. 겸손하게 행동하라. 는 오묘한 진리를 승리에 도취된 장군에게 하늘이 들려주는 소리로 여기도록 했다고 한다. 오늘날도 어느 탈옥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여전히 개연성을 갖는 사회다. 법은 선(善)을 떠나버린 세계에서 선의 대리자나 된 양 눈을 부릅뜨고 있다. 법(法) 좋아 하는 사람들, 금배지 패용한 분들부터 국군통수권자 어른까지 ‘죽음을 기억하시죠’라고 새해 덕담으로 들려주고 싶다. 새해가 시작된 지도 2주가 지났다. 캘린더 숫자의 시간은 흘러가는데 나는 어제와 같은 인간이고 일상은 지난해나 올해나 비슷하다. 청소년 시절에는 작가가 되겠다고 등용문을 두드리는 일부
유년시절은 홀로 서러웠고 혼자라서 두려웠다. 나이 든 지금 나는 다시 그 마음과 두려움으로 살고 있다. 인내와 성실과 용기만으로는 안 통하는 사회의 현실 앞에서 이제는 조금 서러워도 괜찮을 것이요. 내 운명의 주어는 ‘슬픔과 그 에너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 아침 깨끗하고 따스한 바람이 불면 어머니가 보내준 바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정월의 따스한 햇살이 악수하듯 손목으로 내리면 먼저 간 여인의 체온 같다는 생각도 했다. 2015년 일이다. 8월 『사람과 수필 이야기』라는 수필집을 엮으면서 표지화 또한 내 필력으로 그렸다. 문인화로서 커다란 나무 아래 갓 쓰고 수염이 긴 초췌한 노인이 거목을 우러러보는 이미지의 그림이었다. 문학과 예술을 거목으로, 노인을 나 자신으로 비유한 의미화였다. 이 그림을 산뜻한 우편엽서로 만들었다. 출간한 책을 보내온 작가들에게 축하엽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 어느 날 임(林) 선생이란 분이 책 표지 그림과 엽서를 보고 느낌을 보내왔다. ‘방금 보내준 귀한 선물 잘 받았습니다. 친필 엽서의 그림은 꼭 김정희 선생 ‘세한도’를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어쩌면 추사보다 더 깊은 마음의 깊이로 다가왔습니다.’라고. 자본주
이천이십이 년, 한 해의 시간이 노루꼬리만큼 남았다. 누가 세월의 백지에 365개의 선을 그어 하루, 한 주, 한 달, 한 해의 캘린더를 만들어 365일 읽어가며 살도록 하였는가. 어느 의사가 사람의 열을 재면서 36.5 ℃의 체온을 유지해야 정상이라고 하였는가, 따라서 365와 36.5라는 숫자의 의미에는 어떤 깊은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 밤은 너무 밝다>>의 저자인 아테네 ‘크롭베네슈’는 무수한 인공조명 때문에 식물도, 그 식물의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도, 밤에 이동하는 철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혼란에 빠져 본래의 생체리듬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빛 공해 노출 면적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다고 한다. 늦게 잠자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현상에 빛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일은 각박한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일처럼 생각해 왔다. 먼 조상 때부터 밤을 낮 삼아 일한 덕분에 밥 먹고 살게 되었고, 밤잠 안 자고 공부하는 학생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밤은 밤다워야 하고 낮은 낮다워야 함을 생각 못하고 살았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금년이라는 세월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가을은 진홍빛 와인 색깔로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가을도 깊어지면 첫눈을 기다리게 된다. 첫눈은 첫사랑의 가슴 같은 설렘과 그리움의 해갈 같은 기쁨을 안고 온다. 산중에 살다 간 법정은 1 미터 가까이 쌓인 눈을 헤치고 나가기에 엄두가 나지 않고 들짐승들도 얼씬하지 않을 때는 ‘글은 곧 사람이란 말이 있지만 글씨 또한 그 사람을 드러낸다.’는 마음으로 다산(茶山) 선생의 복사된 글씨를 압핀으로 빈 벽에 붙여 놓고 보면 방안이 한결 고풍스런 품격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흰 눈이 펄펄 내리면 종남산 아래 눈 덮인 들길을 걸어 산속 어느 집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요즘 우리들 삶의 주변과 국가의 역사적 참사를 보면 한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시인이란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 앓아 주는 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평소에 말해왔듯 ‘문학은 종교나 정치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근래의 역사적 큰 참사요 불행한 사건을 생각해본다면 정말 이래도 되는가 싶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은 버스와 승용차가 다리 아래로 추락하여 그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