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은 신성불가침의 권리이므로, 법에서 규정한 공공의 필요성에 의해 명백히 요구되는 경우 이외에는 누구도 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다.”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려 목을 자르고 대혁명을 완수한 프랑스 시민들이 1789년 8월 26일 선포한 프랑스 인권선언 제17조다. 여기서 소유권의 핵심은 토지다. 대혁명 이전 프랑스 시민들은 토지에 종속되어 살아갔다. 땅에 종속된 인간은 땅을 가진 자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노예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을 타인의 땅에 종속되어 농사짓는 노예가 아닌 자신의 땅에서 농사짓는 농부로 만들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 소유권을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규정한 이유다. 이렇듯 농경사회에서 땅을 가질 수 있느냐 또는 그렇지 않으냐는 그의 신분을 규정했다. 땅을 가진 자는 귀족으로 그렇지 못한 자는 귀족의 땅에 속박되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 노예로 살았다. 그렇기에 농지를 농부가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민혁명의 핵심이었다. 중세의 모든 부조리는 농부가 아닌 자가 농지를 소유한 것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역시 농지는 농부가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제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시민(民)이 주인(主)인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공화국은 공화제로 운영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공화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입법과 집행이 분리된 통치형태가 핵심이다. 즉,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사법부의 분리가 더해지면 삼권분립이 된다. 정리하면 삼권분립을 채택한 국가는 형태상 공화국이다. 그러나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었다는 것만으로 공화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형태 또는 절차상으로는 공화제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공화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복종’이 필요하다. ‘복종’은 공화제가 아닌 독재와 어울리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재와 복종은 공존할 수 없다. 독재국가에서 시민들은 단지 억압되어있을 뿐 권력이 복종하지는 않는다. 복종은 시민들이 권력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에 따를 때 만들어진다. 다시 공화제로 돌아가 보자. 삼권분립 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룬다. 이 중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시민이 직접 선출함으로써 시민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행정부와 사법부는 행정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이 패전국이다. 전세계 특히 동아시아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국가다. 군국주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절실히 경험한 국가다. 이러한 일본의 경험은 몇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일본 헌법 제9조 제1항은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고 천명한다. 평화헌법이다. 일본 총리는 자위대를 사열할 때 중절모까지 갖춘 턱시도를 말끔히 차려입어 군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다. 그러나 절대로 거수경례는 하지 않는다. 단지 오른손으로 중절모를 벗어 왼쪽 가슴에 댈 뿐이다. 이는 민(民)에 의한 자위대의 통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어느 사회이든 군과 경찰은 모든 폭력을 독점한다. 폭력을 독점한 군과 경찰을 '민'이 통제하면 민주국가 그렇지 않으면 독재국가가 된다. 그런데 군대라는 절대적 폭력을 독점한 군을 민이 무력으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민은 민주적 정당성을 통해 군을 통제한다. 보통·평등·비밀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획득한 민주권력은 이를 기반으로 군을 통제한다. 그리고 쿠데타는 군이 시민의 자발적 복종을 획득한 민주권력의 통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검찰청법’이 검사의 직무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검창청법은 검사에게 ‘국민의 봉사자’, ‘인권의 수호자’ 그리고 ‘정치적 중립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형태는 세 가지이나 이들은 하나로 수렴한다. ‘정치적 중립’이다. 국민 전체에게 봉사하라는 것은 국민을 받들어 모시라는 뜻이 아니다. 국민의 뜻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선출직 공직자, 즉 정치인들의 의무다. 검사는 법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면 된다. 조금 무리하게 표현하면 검사가 판단하고 행동함에 있어 국민의 뜻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고려하는 순간 검사라는 신분 앞에 ‘정치’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다. 그럼에도 검찰청법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국민을 차별하지 말라는 의미다. 모든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에서 개개의 국민 한명, 한명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하라는 명령이다. 인권의 수호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수사권과 기소권에서 그치지 않고 영장청구권까지 독점한 검찰이 국민을
형사사건에 변호인으로 참여해 보면 때때로 한 없이 초라한 나의 모습을 보게 되고는 한다. 모든 증거는 검찰이 가지고 있고 검사는 유죄입증에 유리한 증거만 제출한다. 수사를 통해 무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했다고 해도 법정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변호인 입장에서는 그러한 증거가 검사에게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증거의 존재를 알게 된다고 해도 이를 검사로부터 얻어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지난 2010년 용산 사건에서 검찰은 재판부의 공개결정에도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버텼다. 결국 검찰 손에 있는 증거는 검찰이 제출하기 전에는 변호인 심지어 판사마저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형사법정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무죄 입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초라한 변호인이 되고는 한다. 압도적인 수사력을 통해 수집한 증거 중 유죄의 입증에 유리한 증거만 제출하고는 하는 검찰을 상대로 무죄를 받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이라 말하고 싶지만 “가깝다”는 수식어를 붙이 이유는 2019년 기준 무죄선고 비율이 0.82%이기 때문이다. 형사법정에 들어간 피고인 100명 중 고작 한 명 정도
‘특수(特殊)’의 사전적 정의는 “특별히 다름”이다. 다름의 대상은 ‘일반’일 것이다. ‘일반’의 사전적 정의는 “특별하지 아니하고 평범한 수준”이다. ‘다름’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점”이다. 흔히 사용되는 ‘특수’, ‘일반’, ‘다름’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본 것은 근래에 들어 이들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는 ‘일반’과 ‘구별’되는 무엇이다. 구별된다는 것은 기본 속성은 동일하다는 것을 뜻한다. 근본은 같으나 몇몇 특징에서 그분이 되는 것을 우리는 ‘일반’과 ‘특수’로 나눈다. 아예 다른 종류라면 어느 것이 ‘일반’이고 어느 것은 ‘특수’가 될 수 없다. 그저 전혀 다른, 상관없는 개개의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에 ‘특수’ 역시 ‘일반’이 가지고 있는 기본 속성 또는 원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몇몇 부분에서 특별히 다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요즘 국회는 법무부 특수활동비로 시끌벅적하다. 법무부가 대검찰청 특수활동비 사용이 적절했는지 감찰을 하겠다고 하자 야당은 법무부 특수활동비도 검증하고 나섰다. 법무부에서 특수활동비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자 야당은 다시 정부부처 전반에 걸
2017년 1월 25일 국정농단의 주역이었던 최순실은 수의를 입고 특검조사를 받으러 가던 중 취재진을 향해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의 특검이 아닙니다”고 소리쳤다. 취재진을 향해 ‘민주주의’를 외치던 그녀의 모습은 자못 장엄하게까지 보였다. 그러나 이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국민들 중 많은 이는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한 그녀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생방송 카메라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 통쾌한 한 마디가 있었다. 특검이 위치한 건물의 청소부로 일하던 한 여성이 최순실을 향해 “염병하네”라고 소리친 것이다. 이는 국정농단 사건에 분노하고 답답해하던 많은 국민들에게 사이다와 같은 외침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최순실을 향해 외쳤던 ‘염병(染病)’은 원래 장티푸스를 일컫는 단어였다. 장티푸스는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전염병으로 발열과 복통이 주요 증상이다. 현대 의학이 도입되기 전 사람들은 많은 이들이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것을 전염병이라 생각하고는 했다. 때문에 ‘염병’은 물들 염(染)자와 질병 병(病)자의 조합에서 알 수 있듯 차츰 전염병 그 자체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치사율
현대 물리학의 거장 아인슈타인의 대표 업적은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구성된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지 100년이 넘었다. 이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 이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씩은 들어봤음직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성 이론은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이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성 이론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일반 상대성 이론’ 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이 더 발전 된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1905년 발표한데 반해 일반 상대성 이론은 10년이 지난 1915년에 발표했다. 보다 더 발전된 이론은 10년이나 일찍 발표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속도가 통제되는 특수한 상태에 적용되는 이론이다. 반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속도가 서로 다른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일반이론이다. 때문에 특수 상대성 이론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발전된 이론인 것이다. 이는 물리학에 국한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 역시 우리가 디디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학문이다. 일반과 특수의 관계 역시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제3항 제4호는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하도록 한다. 공소권 없음은 형사법이 피의자의 죽음을 규정하는 방식이다. 공소권이란 검사가 법원에 공소(公訴)를 제기할 수 있는 권(權)리다. 공소를 제기함으로써 비로소 검사는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함을 입증하여 처벌을 구할 수 있게 된다. 공소권 없음은 이처럼 검사가 피고인을 법정에서 세워 유죄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다는 뜻이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 있다고 판단될 때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범죄사실은 범인의 행위다. 증거는 행위가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요소다. 결국 수사의 핵심은 범인이다. 그렇기에 범인이 없으면 수사 또한 불가능하다. 범인이 사망하면 수사의 대상이 사라지고 공소권은 없어지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전인 8일에는 전 비서에 의해 강제추행 등 혐의로 경찰에 피소되었다고 한다. 그가 사망하자 경찰은 곧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하였다고 발표했다. 피혐의자가 사망하여 존재하지 않으니 당연한 조치다. 서울시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서울특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우리의 소원’은 몇 차례의 개사를 겪었는데, 여기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제 강점기 삽화가, 만화가, 문학가, 영화 각본가 겸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안석영(본명 안석주)이 그의 아들인 작곡가 안병원의 곡에 글을 써준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우리의 소원’은 1947년 3월 1일 한국방송의 삼일절 특집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 1948년이고 한국전쟁의 휴전으로 분단체제가 시작된 것이 1953년이니 노래가 발표될 시점에는 ‘통일’을 부르짖을 이유가 없었다. 분단되지 않은 조국에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라는 것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리의 소원’에도 ‘통일’은 없었다. 원래 노랫말은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출신이었던 안석영이 좌우익 세력 사이의 충돌이 극심했던 미·소 군정기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꿈꾸며 써내려간 가사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에서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란 대목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