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은 행복한가? 어떤 가족이든 크게 또는 작게나마 문제가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둘이 만나 결혼을 해서 아무런 의견차 없이 평탄하게 생활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가족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또 다른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서의 공동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최종욱 동물칼럼니스트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인간과 같이 가족이나 동료들과 서로 협력하는 동물들을 보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했다. 인간의 문화가 대개 전쟁 중심으로 발전해 온 단기적이라는 것에 비해 동물들의 문화는 주로 평화적이고 상호 협력적이며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해 왔다. 늑대는 동물에게는 흔치 않은 일부일처제를 평생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부가 무리를 이끌며 수컷은 사냥을, 암컷은 육아를 담당한다.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죽기 전에는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 쪽이 죽어서 재혼을 하더라도 기존 배우자의 자식을 끝까지 책임지고 키운다. 이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이런 행동들이 무리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라 해도, 이들을 통해
요즘 대한민국은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힘겨워 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폐업으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고, 중소상공인 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경영악화로 직원들은 회사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금융위기와 공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했지만, 전염병에 의한 경제위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떠들어대는 '아래로 부터의 경제위기'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코로나19에 의한 전 세계적 경제위기다. 현재의 펜데믹이 1년 이상 이어진다면 세계화로 압축되는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넘어 전세계적 국가시스템의 붕괴에 이를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중국은 종식선언을 코앞에 두고 있으며, 한중 기업인들에게는 일부 왕래를 허용해주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코로나19가 완화되는가 싶으면 앞다퉈 경제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코로나19의 피해는 어린이집과 복지관, 노인정, 양로원까지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서 피해를 발생시킨다. 기술 발전에 따른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국가와 인류의 삶은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있어 한 사회나 국가 차원의 대처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자유
4월 15일은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이다. 코로나19로 대면 선거운동이 불가한 현실이라 후보들도 힘들고 유권자도 SNS를 통한 선거정보가 다일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성공과 성취를 이야기 한다. 막노동꾼에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 다른 사회 계층으로 올라서게 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거듭되는 실패로 무일푼 노숙자가 된 이후 한 가지 사업 아이템으로 대박을 쳐서 성공한 것이 롤모델이 된다. 나의 경우는 어떤 성취감 때문에 일을 벌이는 걸까? 단체를 만드는 일을 꾸준히 솔솔찮게 벌여 왔다. 주제넘은 오지랖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을 작게나마 변화시키는 일은 혼자의 힘이 아니다. ‘왕자의 키스를 받고 깨어난 백설 공주는 결혼하여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현실에 없다. 소수자들이 힘을 갖추는 방법은 집단적인 투쟁, 바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내는 것이다. 개개인이 대등한 능력을 월등하게 갖추거나 집단적으로 투쟁하거나, 나처럼 몸도 머리도 부족한 사람들은 모여야 힘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내 힘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어린 시절 농촌 마을에서 자라고, 대학에서 배워왔던 법학은 민주주의의 기초공부인 셈
장애인인 경우 보통 사람들보다 몸이 급격히 쇠약해진다. 아무리 건강해도 보통 사람들보다 10년은 먼저 늙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지금 60세인데 신체 나이로는 70세쯤 생각해야 한다. 체력이 고갈될 때까지 휠체어를 안타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몇 년 전에 팔을 다쳐 정형외과를 찾았을 때 의사선생님은 이제 목발보다 휠체어를 타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조언해주신다. 그 이유는 양쪽 팔 인대가 모두 달아 지속적으로 목발을 짚고 다닐 경우 그나마 거동도 못하게 될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하여 요즘은 멀지 않은 거리도 휠체어를 자주 이용하게 되고 목발을 짚고 다녔던 예전에 비해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20대 중반에는 계룡산과 용봉산을 오를 만큼 체력이 강했다.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도 문제가 없었던 나였다. 쇠를 씹어 먹어도 될 정도로 힘이 넘치던 그때는 장애가 큰 벽이 되지 않았다. 이제 60대가 되고 보니 고관절, 무릎관절 등이 시원찮다. 고관절이 망가지면서 계단을 올라갈 때 힘들다. 고관절의 힘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관절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1~2계단만 올라가도 몸의 무리를 느낀다. 앞으로 남은 평생 전
보통시민은 사회적으로 더 큰 성공을 얻은 사람에 비해 보잘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신화를 이루고 사는 게 아닐까. 누가 뭐래도 나 스스로가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간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다. 방귀를 뀌면 냄새가 퍼진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현상이다. 냄새로 내 주변 사람들은 방귀의 진원지를 알게 된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을 ‘봉사방귀’라고 부르고 싶다. 방귀를 뀌면 독소가 배출되면서 몸은 건강해진다. 나는 봉사를 타인에게 나눔을 전하는 ‘마음방귀’라고 말하고 싶다. 봉사는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건강해지고, 상대방도 건강해지고, 사회가 건강해진다. 우리는 혼자 태어나 홀로 죽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고, 사회의 일부이기도 하다. 가족의 일원이 되어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 지식이 사람을 바꾸어 놓지 않는다. 앎과 지식은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과는 무관하다. 가슴과 머리가 조화로운 사람이 세상에서 더욱 쓸모 있다. 바로 세월이 흘러가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혜민스님의 책 중 『멈추면 비로소
배설과 똥을 주제로 만들어진 박물관이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냄새가 폴폴 난다. 배설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자 생존의 중요한 행위이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황금색 똥을 싸면 어른들은 기특하고, 잘했다고 칭찬을 한다. 아이들을 위한 똥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모든 아이들은 똥과 관련된 동화나 그림책을 좋아한다. ‘해우재’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화장실 박물관이다. 건물 자체가 수세식 변기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위에서 바라보면, 완벽한 변기모양을 볼 수 있지만 옆에서 보아도 화장실 박물관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디자인이다. 입구에 어린아이가 똥을 누는 조형물이 귀엽고 친근하다. 박물관 바깥의 야외 공원은 다양한 변기의 조형물과 우리나라 및 외국의 화장실 모형들을 만들어 놓았다. 임금님이 쓰던 ‘매화틀’이라는 변기도 볼 수 있었다. 제주도의 전통 화장실 ‘통시’부터 재래식 ‘뒷간’까지 다양한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다. 화장실을 주제로도 재미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발상이 인상적인 곳이다. 박물관 내부는 주로 1층에는 화장실의 역사 및 특징의 전시물을 만들어 놓았다. 고(故) 심재덕 수원시장은 재직 시절부터 화
한 겨울 꽃나무에게 ‘꽃을 피우라’고 주문을 외우고 간절히 염원해도 이뤄지지 않는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한다 한들 꽃을 피우는 것은 자연의 이치와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인간은 몸을 줄여서 작아지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도 꽃과 마찬가지로 활짝 피어나도록 만들어졌다. 더 뛰어나게, 그리고 더 비범하게! 과연 무엇이 나를 빛나고 훌륭하게 만드는가? 보통 자신을 뛰어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하는 일에서 전문성을 갖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만드는 일이 그러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뛰어난 기량을 뽐내고 메달을 따는 선수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내가 갈고 닦은 성과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고 세상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뛰어난 성과를 보면서 인정한다. 단순히 주식투자나 부동산 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여 “그 사람 참으로 훌륭하고 빛나는 삶을 살았지”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여 뛰어난 인생의 결과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뛰어난 삶을 살았다고 칭송받는 경우는 자신의 인생과 직업에서 거둔 발전과 연관될 때이다. 자신이 하는 일 에 뛰어난 면을 보이게 되면 인생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