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차창에 비춰지는 당신의 미소, 그 공포에 대하여
공포영화는 세상을 읽는 척도다. 공포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 그 표현 수위, 통용되는 방식, 관객의 수용 태도 등등은 그 사회가 지금 어떤 문제의 지점을 관통해 내고 있는 지를 가늠케 한다. 그래서 한때는 공포영화의 그런 진지한 태도가 싫다며 팝콘형 공포영화, 곧 그냥 즐기는 오락 형 공포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스크림’이나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등이 그랬다. 그러나 공포영화는 곧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 본래적 역할, 곧 사회의 메신저 역할을 해내곤 한다. 영화를 보면 세상이 보인다는 말을 조금 좁게 치환시키면 공포영화를 보면 세상이 잘 들여다보인다가 된다. 감독부터 나오는 배우 대다수가 거의 ‘듣보잡’인 미국 영화 ‘스마일’이 쥐도 새도 모르게 10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홀연히 극장에서 사라진 것은 마치 공포영화 자체가 그렇듯, 소름 끼치는 일이다. 게다가 절대적 비수기라 불리는 기간에 벌어졌던 일이다. 영화 ‘스마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걸 보는 우리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스마일’은 극도의 편집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주인공 앞에서 깨진 유리로 목을 그어 자살했는데 그 순간 얼굴엔 기이한 미소를 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