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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 산책] 그만큼

                                                                                               /문정영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돌멩이 생김새만 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누가 나를 순하다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
후박나무 잎은 후박나무 잎만큼 젖고
양귀비꽃은 양귀비꽃만큼 젖어서 후생이 생겨난다.
여름비는 풍성하여 다 적실 것 같은데
누운 자리를 남긴다.
그것이 살아가는 자리이고
다시 살아도 꼭 그만큼은 빈다.
그 크기가 무덤보다 작아서 비에 젖어 파랗다.
더 크게 걸어도
더 많이 걸어도
꼭 그만큼이라는데
앞서 빠르게 걸어온 자리가
그대에게 먼저 젖는다.

                     -포엠포엠 2013·가을 Vol, 59

 

 

사람은 꼭 자기 그릇만큼의 삶을 산다고 한다. “저 녀석은 그릇이 그것밖에 안 돼.” 흔히 모든 사물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비가 적시지 못한 돌멩이의 자리, 내가 서 있는 발자국만큼의 공간, 후박나무 젖은 잎은 돌멩이라는, 나라는, 후박나무라는 본체의 극히 일부분이다.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작고 보잘 것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일의 결과는 꼭 그만큼의 자국으로 남겨진다. 가능성을 무시한 채 그 흔적으로 평가 받는다. 시인은 ‘여름비가 풍성해 다 적실 것 같아도 누운 자리를 남긴다’는 말로 반대의 경우도 제시한다. 다른 시선의 방향이 있음을 암시한다. 결과만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우를 지적하고 싶은 맘일 거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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