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간은 멀게 느껴지다가도 때로는 바로 눈앞의 장면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30년 전 한의과대학에 합격했던 순간도 그렇다. 향우회 선배의 소개로 고향에서 개원 중이던 대선배를 찾아뵙고 식사를 함께한 자리에서 선배는 한의학 책을 건네주셨다. “내 동기가 쓴 책이야.”라며 건넨 책 가운데 한 권의 제목은 ‘음양이 뭐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은 설명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서양 과학과 논리에 익숙했던 나에게 음양이라는 개념은 낯설고 막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공부를 이어가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점차 생생한 개념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설명하려 하면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의 낯섦이 떠올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음양이라는 말은 해가 비치는 언덕의 밝은 쪽을 양, 그늘진 반대편을 음이라 부른 데서 시작되었다. 밝은 쪽이 생기면 자연히 그늘이 생기듯 이 개념에는 상대성이 담겨 있다. 낮과 밤이 교대로 오고 계절이 순환하듯 자연은 늘 두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주역(周易)’에서는 이를 두고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했다.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그 끊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오후 12·3 내란 중요임무에 종사하고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한 혐의 등을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판결 직후 이상민은 변호사와 주변 사람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징역7년에 웃음을 보인 그는 이번 재판의 승리자였다. 그의 미소가 증거하듯 지금 대한민국의 내란재판은 표류하고 있다. 같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우인성 부장판사는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자본시장법 위반) 및 무상 여론조사 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창원지법 형사4부 김인택 부장판사는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세비 반띵'(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마찬가지로 무죄를 때렸다. 내란재판은 아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오세용 부장판사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뇌물 50억원 은닉(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및 아들 곽병채 씨의 '퇴직금' 명목 50억 원 수수(특가법상 뇌물) 혐의에 대해 각각 공소기각과 무죄 판결을 내렸다. 곽상도 역시 활짝 웃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재판이 바야흐로 뽑기가 되어가고 있다. 같은 내란주요임무종
국가 경제는 제조업 성과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제조업은 국가경쟁력의 핵심 기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처럼 제조업은 국가 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다. 하지만 최근 제조업은 저성장·노동력 부족·기술 경쟁 심화 등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제조업의 근원은 뿌리산업이다. 한데 중국 뿌리산업의 높은 경쟁력 및 젊은 층의 기피 등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 ‘뿌리 기술’이란 주조(鑄造),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제조업의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공정 기술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술을 말한다. "뿌리산업은 이 같은 뿌리 기술을 활용해 사업을 영위하는 업종이거나 뿌리 기술에 활용되는 장비 제조업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종을 말한다. 기초적인 제조업을 의미한다. KPIC(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서 정의된 뿌리산업으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동차, 조선, 정보통신(IT) 등 국가기간산업인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초산업으로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 분야는 제조업이다. 모두가 잘 아는…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주택 화재는 대부분 가정에서 발생하며, 특히 단독 주택이나 오래된 주택에서는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겨울철에는 난방기기 사용 증가, 전기 사용량 증가 등으로 화재 발생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무엇보다 문제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초기 대응이 늦어질 경우 피해가 급격히 커진다는 점이다. 소화기는 화재 초기 대응의 핵심이다. 작은 불씨라도 초기에 진압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소화기 1대만 제대로 사용해도 소방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또한 단독경보형감지기는 연기를 감지해 큰 경보음으로 위험을 알림으로써, 잠든 시간이나 혼자 계신 상황에서도 빠른 대피를 가능하게 한다. 주택용 소방시설은 설치가 간단하고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별도의 공사 없이 누구나 쉽게 설치할 수 있으며, 몇 만 원의 비용으로 부모님의 안전을 상시 지켜줄 수 있는 효과적인 안전장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많은 주택에서 소화기나 감지기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설 명절에 고향 집을 방문했다면 한 번쯤 집 안을 둘러보자. 소화기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비치되어 있는지, 단독경보형감지기는 정상 작동하는지 점검해 보는 것만으로도 큰
1월 30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계획’의 핵심은 ‘학생들이 헌법 가치와 원리를 이해하고 삶과 연계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의 헌법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우리 교육과정에서 헌법교육을 도외시해왔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내 경우를 봐도 초·중·고는 물론 대학 시절에도 헌법을 제대로 본 적 없이 사회에 진출했다. 특별히 대학에서 헌법을 전공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헌법의 한 줄도 볼 기회가 없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2월 10일 <MBC PD수첩 – 통일교와 공모자들> 편에 드러난 가평군의 전·현직 군수, 정치인들의 모습은 그런 탈헌법적 현실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헌법과는 무관한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헌법의 빈틈으로 사이비가 파고들었다. 가평군민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통일교의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군민들의 생업, 여가, 교육 등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물이 스며들 듯 침투한다. 가정, 사랑, 평화 등 보편적이고 희망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건강하고 상식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 와중에 주민들에게 표를 받아야 하는
6·3 지방선거가 불과 110일 남았다. 과거 이 시기에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인재도 발굴하고 국민친화적 정책도 발표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었다. 그러나 제1야당 국민의 힘의 최근 모습을 보면 많이 낯설다. 설 연휴를 앞두고 민생은 나아지지 않고 있고 대외 경제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는데, 국힘은 오로지 ‘누가 누구를 징계하고, 누가 공천권을 쥐느냐’는 권력 투쟁에만 매몰되어 있는 탓이다. 현재 국힘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정치적 내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갈등의 핵심은 당 지도부와 이른바 ‘친한계’ 사이의 전면전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제명 사태 이후 당내 분열은 봉합되기는커녕 중앙당과 서울시당 간의 ‘징계 전쟁’으로 번졌다. 지난 1월 말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의 ‘전두환 존영 게시’ 발언으로 촉발된 설화(舌禍)는 친한계의 징계 요구로 이어졌고, 이에 맞서 당권파는 배현진 의원의 성명 발표 과정을 문제 삼아 중앙당 윤리위 제소라는 맞불을 놨다. 결국 서울시당은 고 씨에게 ‘탈당 권유’를, 중앙당 윤리위는 배 의원을 소환 조사하는 이른바 ‘징계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당의 윤
우연찮은 기회에 다카이치가 이끄는 자민당이 중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단독으로 과반 233석을 훨씬 뛰어넘는 압도적인 의석수(316석)를 차지하며 압승을 거둘 때 도쿄에 체류했다. 날이 많이 흐렸고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폭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상은 고요했다. 에노시마 기차역 슬램 덩크 관광지에는 푸릇한 한국 청춘들이 몰려들었다. 다카이치든 자민당이든, 중도당이든, 공명당이든 일본 사람들은 정치에 무심해 보였다. 하루 이틀 머물다 스쳐 가는 사람처럼 일본 국민은 정치는 정치, 민생은 민생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사카에 있는 방송국 TBS 앞에는 공산당 깃발을 꽂은 유세차 위에서 초로의 여성 당원이 목소리를 높여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빌보드 팻말에는 부자증세라 쓰여있었다. 도쿄를 안내했던 영화 관계자 지인이 말했다. “들어 보면 일본 공산당 친구들이 가장 정확한 얘기를 해요. 똑똑한 애들은 역시 좌파이긴 해요.” 다카이치가 이겼으니 센카쿠 분쟁 문제니, 쿠릴 열도 반환 문제를 둘러싼 정책이 바뀔 것이다. 성향이 공격적이니만큼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군사력을 강화할 것이다. 자위대 설치와 운용범위에 관한 법률을 바꾸고 무엇보다 평화헌법이란 미명으로…
경기도는 11일부터 오는 3월 10일까지 도내 8개 시,군을 대상으로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공개모집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공모는 단순한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감내해 온 안보 부담과 구조적 제약에 대해서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책적 분기점인 만큼, 이 질문에 앞서 포천은 더 이상 뒤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포천은 법적으로 수도권에 속해 있으며.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각종 규제는 예외 없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산업 인프라, 인구 유입, 재정 여건, 도시 기능 어느 하나 수도권다운 혜택을 온전히 누려본 적은 없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사격장과 훈련장, 반복되는 소음과 진동, 출입 통제와 토지 이용 제한은 포천 시민의 일상이었다. 국가는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해 왔고, 포천은 그 제약을 오랜 시간 감내해 왔다. 이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안보를 위해 희생이 요구되었다면, 그에 대한 보상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같은 접경지역으로 분류되고,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양,파주,김포,양주와 포천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 도시는 이미 자족 기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