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
(기고문) 11월 ‘불조심 강조의 달’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한 달 동안 각 지역 소방서에서는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홍보와 캠페인을 펼쳐 왔으며, 시민 여러분도 여러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러나 소방은 강조하고 싶다. 화재 예방은 11월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겨울철 전체를 관통해 지속돼야 하는 ‘생활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본격적인 겨울철로 접어드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난방기구 사용량이 급증하고 기온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화재 위험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다. 실제로 매년 통계에서도 겨울철 화재는 11월보다 12월 이후에 더욱 많이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전기난로·전기장판·히터·보일러 등 전열기구 사용이 늘면서 과열·과부하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여러 화재를 살펴보면, 평소 거창한 부주의가 아닌 작고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센트에 여러 기기를 동시에 꽂아주거나, 난방기 주변의 가연물을 치우지 않은 채 사용하거나, 전기장판을 접어서 보관한 뒤 그대로 사용하는 등 사소한 습관이 큰 화재로 이어지곤 한다. 소방은 “전기·난방기구는 안전한 사용법을 숙지하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난 1년 동안 벌여온 사이버도박 범죄 특별단속에 무려 5000명이 넘는 범법자가 검거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박 풍토를 여실히 입증했다. 검거된 위법자 중에는 20·30이 절반 이상을 차지해 놀라움을 주고 있고, 특히 70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도박행위로 적발된 사실은 더 충격이다. 국수본이 앞으로 1년간 특별단속을 연장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도박 풍토가 완전히 일소되도록 속도·범위, 깊이를 더욱 확대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진행된 국수본의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에는 모두 3544건이 적발됐고 도박 사범 5195명이 검거됐다. 이 중 314명은 구속되면서 환수한 도박 수익금은 1235억 원에 이른다. 이 통계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검거 인원은 0.6%, 구속된 인원은 7.9% 증가한 수치다. 피의자의 연령대는 20대가 25.3%(1514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24.9%(1489명), 40대 22.8%(1366명)로 뒤를 이었다. 20·30대만 합쳐도 무려 50.2%에 달하는 수치다. 이어서 50대는 13.4%(800명), 10대 7.0%(417명), 60대 이상 1.7%(306명) 순이었다. 도박
2025년 11월 13일 목요일,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 속에서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약 55만 명의 수험생이 시험장으로 향하는 동안, 도심 곳곳에서는 출근 시간을 늦추고 버스 노선을 조정하는 등 수능에 맞춘 여러 조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수능 시험과 무관하게 하루의 노동과 생활을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문득, 시험장 밖에서 각자의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수능을 보지 않는 19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는 이른바 ‘정상적’인 생애 경로에 대한 강한 압력이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인식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살이면 당연히 수능을 본다는 전제가 사회 전반에 널리 작동한다. 그러나 2024년 대학 진학률은 74.9%이다. 이 숫자는 “대부분이 대학에 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자주 활용되지만, 반대로 보면 4명 중 1명은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대학 진학’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다수가 선택한 경로를 곧 ‘정상 경로’로 간주해 이를 기준으로 정책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질문이 필요한…
지난주에 일상에 지친 아내의 간절한 요청으로 괌을 여행했다. 그곳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마주한 황홀한 석양을 보고, 어느새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보랏빛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사진만 찍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문득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록하기 위해 소비하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을 사진에 연연하여 절묘한 감동을 놓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살아가는 일’보다 ‘기록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폰은 늘 손에 있고 SNS는 우리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소환한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절친을 만나는 때조차도 우리는 먼저 카메라 앱을 켠다. 이른바 기록 강박이 조용히 우리를 지배하는 것이다. 물론 기록은 나쁘지 않다. 사진은 기억을 더 선명하게 살려주고, 잊혀가는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는 힘이 있다. 문제는 그것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순간이다. 즐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남기기 위해 순간을 연출할 때, 우리의 삶의 방향은 아주 오묘하게 전도된다. 살아가는 주체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강력 성범죄자들이 이웃에 살고 있는데도 현실적으로 이를 알지 못하고 사는 주민들이 불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조두순·박병화처럼 전국적으로 유명한 전과자들을 제외한 다수 위험군에 대한 정보가 쉽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미지의 지뢰를 껴안고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런 모순을 해소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무명이지만 위태로운 성범죄 전과자들이 주는 불안을 해소할 효과적 방안이 시급하다. 성범죄자 신상등록 사이트인 ‘성범죄자 알림e’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는 정보공개 성범죄자는 모두 699명이다. 전국 공개 성범죄자 2949명 중 23.7%를 차지한다. 도내 공개 성범죄자 중 상당수는 범행을 저질렀던 장소 인근을 포함해 해당 지자체에 살고 있다.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과 ‘수원 발발이’ 박병화 등 언론에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들은 24시간 철통 감시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다른 대부분 성폭행범은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는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조두순과 박병화와 비슷한 수준의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는 만큼 인근 거주자들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조두순의 자택 근처에는…
돌이켜 보니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4·19 혁명 56주년이 되던 2016년 4월 19일, 그 역사적인 날에 그야말로 역사적인 한 인물이 유명을 달리했다. 초당(草堂) 신봉승(辛奉承) 선생. 83세의 일기였다. 선생은 ‘국민 사극 작가’로 불린 극작가요, 시·소설·평론·시나리오에 두루 걸쳐 130여 권의 저술을 남긴 광폭(廣幅)의 문인이었다. 그중에 많은 사람이 오래 기억하는 작품은 8년간 지속한 TV 드라마 '조선왕조 5백 년'이었다. 그 가운데는 세조 조의 한명회나 구한말 흥선 대원군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볼거리가 즐비했고 화제도 만발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성격이 확정된 역사에 대한 관점의 ‘반란’은 작위적인 의지만으로 가능할 리 없다. 오랜 사료의 검토와 연구, 그리고 역사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선생은 이 곤고한 역사 학습의 과정을 초인적인 인내와 근면으로 넘겼다. 그는 언필칭 ‘재야의 역사학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이 국문으로 번역되기 전에 9년에 걸쳐 통독하고 그 500년 역사를 통시적으로 관통하는 눈을 길렀다. 여러 곳의 말과 글에서 확인되는 선생의 문
원행을묘 백리길의 행차가 지나간 서울의 남북 간선도로는 숭례문-종각의 남대문로다. 그러면 이 도로의 너비는 얼마였을까? 궁금할 수 있다. 그래서 문헌 기록을 살펴보려 하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만드는 유적이 있다. 청계천 위의 광통교를 가보면 된다. 지금은 남대문로의 엄청난 교통량을 피해 서쪽으로 150m 정도 옮겨 놓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1410년 8월 8일, 큰비가 내려 청계천이 넘치고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죽은 백성이 있었다. 이에 의정부가 임금에게 보고를 올렸다. "광통교(廣通橋)의 흙다리가 비만 오면 곧 무너지니, 청컨대 정릉(貞陵) 옛터의 돌로 돌다리를 만드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여기서 임금은 태종 이방원(1367~1422)이고, 정릉은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1356~1396)의 무덤이다.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일곱째 아들인 이방번(1381~1398)과 여덟째 아들인 이방석(1382~1398)을 낳았고, 태종의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1337~1391)가 조선의 개국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조선의 1대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정도전 등과 힘을 합해 자신의 둘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
[ 경기신문 = 황기홍 화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