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 구장에는 서로 잇대어 설치한 천막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잔칫날의 풍경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스피커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조금 늦게 도착한 바람에 점심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보다 막걸리 냄새가 먼저 다가와 코를 비틀어 놓았다. 김치와 여러 가지 음식들이 뒤섞인 냄새에 허기가 밀려왔다. 나를 초대한 지인은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삼십여 개가 넘는 마을이 모여 면민의 날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남자들은 막걸리 몇 잔으로 벌써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에는 흥이 넘쳤다. 바람에 현수막이 펄럭이고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였다. 옛날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났다.
내 앞에 앉은 할머니는 안부를 묻는 이장님을 향해 갑자기 옷을 들치더니 허리에 두른 복대를 보여 주었다. 아마도 허리 수술을 하신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드러난 복대는 할머니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지만, 내 마음 한 곳을 조이고 있던 무언가는 잠시 헐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방식이 살가웠다. 천막 앞에서 여자들의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마을 주민 중에서도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이 경기에 참여했는데, 아무리 힘껏 차도 공은 생각만큼 굴러가지 않았다. 그마저도 바람이 거들어야 겨우 움직였다. 마을별로 경기 참가자들을 불러 모으느라 마이크가 쉴 새 없이 삑삑거리는데, 그 소리를 귀담아듣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풍선 터트리기가 시작되었다. 2인 1조로 구성된 마을 대표들이 참가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출발하는 팀이 속출했고, 사회자는 반칙하면 탈락시키겠다는 경고를 했다. 다시 호루라기가 울리자, 이번에는 반환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중간에서 풍선을 터트리는 팀들이 나왔다. 반칙을 말리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보는 이들은 여기저기서 폭소를 터트렸다. 둘이 부둥켜안고 터트려야 할 풍선을 손으로 꼬집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따라 웃다가 저렇게 즐거운 반칙이 어디에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모이니 더 이상 규칙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 번도 울어보지 않은 사람들처럼 모두 크게 웃었다.
노래자랑을 곧 시작할 거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참가자는 무대 앞으로 빨리 나오라는 사회자의 재촉이 계속되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점차 흐려지던 하늘에서는 당장이라고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노래자랑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나는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바람이 거세지고 있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보지 못한 채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쉬웠다. 참가자들의 선곡에는 어떤 삶이 녹아 있을까. 누군가는 몇 소절도 채 넘기지 못하고 ‘땡’ 소리에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그 웃음들이 궁금해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픈데도 복대를 두르고 지팡이를 짚고 나온 어르신들의 봄나들이가 보기에 좋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웃고,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애써 피운 꽃잎들 이제 곧 비에 질텐데 아까웠다. 조금만 더 오래 피어 있기를 바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