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하면 여러분은 누굴 연상하는가? 성웅 이순신, 아님 안중근 의사? 아마도 역사 속 거창한 인물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도 영웅은 있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을 구하거나 생명을 바쳐 타인의 목숨을 건진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들을 좀처럼 영웅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참으로 인색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프랑스의 경우는 좀 다른 듯하다. 생존해 있는 사람들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아낌없이 붙여 준다. 시장에게 영웅 훈장을 달아주는 예도 많다. 전편에서 소개한 생피에르드프뤼지의 길베르 샤보 시장의 경우가 그러하다. 프랑스 2TV는 지자체 살리기에 헌신한 시장들을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를 편성했다. 그 제목은 ‘나의 시장, 나의 영웅(Mon maire, ce héros)’. 왜 이런 거창한 단어를 사용해 시장들의 공로를 치하한 것일까? 작고 외딴 마을의 프랑스 시장들은 절망에 빠져 있다. 상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우체국도, 그리고 학교까지도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2017년부터 프랑스 정부의 예산 삭감까지 겹치면서 마을의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고된 투쟁을 벌임으로써 지자체를 살린 시장들이 있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명 건축물 알함브라 궁전에 갔을 때 들은 슬픈 이야기가 있다. 이 궁전에 살았던 나스르 왕조의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정치적 위기를 맞아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그의 정적들인 귀족과 장군들을 제거하려 했다. 왕은 음모를 꾸몄다. 왕비가 정적들과 부정한 관계로 내통했다는 죄를 조작했다. 왕비와 함께 누명을 쓴 귀족과 장군들은 알함브라궁 내의 ‘사자의 궁전(Court of the Lions)’에서 처형되었다. ‘없는 사실’을 ‘있는 사실’로 만든 정치적 공작이었다. 모든 다툼의 근원에는 ‘있다’와 ‘없다’의 대립이 있다. ‘있다’와 ‘없다’의 대립은 ‘이다’와 ‘아니다’의 대립이 될 수 있다. 영어의 ‘Be’ 동사는 ‘있다’의 뜻도 되고, ‘이다’의 뜻도 된다. ‘있다’와 ‘이다’는 같은 범주에 있다. ‘있다’는 무엇이 존재함을 나타내고, ‘이다’는 무언가를 지정(규정)할 때 동원된다. 있지 않는 것을 지정(규정)할 수 없고, 지정(규정)할 수 없는 것을 두고 그것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있다(이다)’와 ‘없다(아니다)’의 문제는 과학의 세계에서는 사실과 진리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의 대극점을 차지한다. 그만큼 과학은 ‘있다(이다)’와…
크루즈 관광을 ‘움직이는 복합 여행’이라고 한다. 단순히 배를 타고 이동하는 교통수단이 아니다. 그야말로 ‘올인원 상품’이다. 숙박, 이동, 식사, 쇼핑, 엔터테인먼트, 레저가 결합돼 있다. 크루즈선을 타고 온 수천 명의 관광객들로 인해 기항지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창출된다. 크루즈선 1회 기항 시 직접효과 2.7억 원, 간접효과 11억 원 등 총 13.7억 원의 경제효과가 나타난다고 세계크루즈협회 통계(2024)는 밝히고 있다. 인천과 부산, 제주 등 국제항을 보유한 도시들이 크루즈 유치에 적극적인 이유다. 지난 3월에 인천항 크루즈 터미널에 입항한 로얄캐리비안의 16만9379t급 초대형 크루즈선 ‘스펙트럼 오브 더 시즈’호의 경우 승객 4029명과 승무원 1600명 등 총 5600여 명이 승선했다. 배에서 내린 승객과 승무원들은 인천 일대에서 쇼핑과 관광을 즐겼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5년 크루즈 입항 관광객은 90만 5479명으로 2024년보다 23.8%나 늘었다. 국제 크루즈선의 한국 기항이 확대되면서 플라이앤크루즈(Fly & Cruise, 크루즈 승객이 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크루즈선에 승선하는 방식)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벼·쌀을 구매해 경기지역 특산물인 것처럼 판매하는 행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이른바 경기미(京畿米)라는 이름으로 각인된 경기도 지역의 쌀은 예로부터 높은 품질을 자랑해왔다. 옛날 임금에게 진상했던 쌀이라고 하여 유명세를 탔고, 한때 이를 노린 ‘가짜 경기미’ 소동도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생산량이 달린다고 하여 외지에서 생산되는 벼·쌀을 경기지역에서 도정해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은 강력히 통제돼야 한다. 경기신문 취재에 의하면 다른 지역의 벼·쌀을 구매해 경기지역 특산물인 것처럼 포장 판매하는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수원시의 한 대형마트에는 경기도 외 다른 시도에서 생산된 쌀 중에 특정 지역명을 제품명으로 사용한 두 제품이 발견됐다. 원산지 표시는 ‘국내산’과 ‘경기도’로 표시돼 있었다. 쌀의 원산지는 국내산과 시도, 시군구로 나눠 표시할 수 있다. 단지 경기도 내 유명 미곡처리장에서 처리됐다는 이유로 경기미 유명세를 이용한 쌀 제품이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는 셈이다. 특정 지역명을 제품명으로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섞어 유통하는 방식이라는 얘기인데, 현행 법령이 명확하지 않아 이러
세상사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정적 선거’라는 말이 있다. 기존의 정치적 쟁점과 지역적 권력 기반·정당의 전통적 이념 토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물갈이를 통해 승기를 잡는 선거를 말한다. 미국 정치학자 월터 버넘이 “미국에서는 가끔 선거 혁명이 일어나 정치와 사회의 기본 체질을 결정적으로 쇄신한다”며 도입한 용어다. 1960년 존 F 케네디·1980년 로널드 레이건·2008년 버락 오바마·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 좋은 예다. 이런 점은 6·3 지방선거 공천에서 여야 주요 광역단체장 대진표를 보면 새 인물 중심의 더불어민주당 후보 면면이 두드러진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축으로 외연 확장과 조직 결집을 동시에 추진하는 모습인 반면, 국민의힘은 장동혁 대표의 방미 행보를 둘러싼 ‘미스터리’ 속에서 지지층 결집 전략에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16곳의 시·도 광역단체장 후보를 모두 확정했다. 민주당은 조기 후보 확정을 통해 ‘컨벤션 효과’와 조직 정비를 동시에 노리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20일 11곳의 공천을 확정했지만 대부분 현직이다. ‘새 얼굴’이 적다 보니 쇄신과 거리가 멀다. 지방선거에서는…
미국의 이란 공습을 일컬어 혹자는 ‘최초의 AI 전쟁’이라 부른다. 정보 평가부터 목표물 식별, 전장 시뮬레이션까지 킬체인을 실시간에 가깝게 단축하는 AI가 그 어느 때보다 전면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서도 AI는 쓰였고, 그 이전에도 크고 작은 AI 솔루션이 전쟁에 동원되었으니 ‘최초’라는 타이틀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번 전쟁에서 AI가 유독 주목받는 데는 지난 1월 있었던 미국 정부의 AI 가속화 전략 발표 그리고 전쟁 발발 후 드러난 워싱턴과 실리콘밸리 사이의 서늘한 긴장감이 자리한다. 그 긴장감의 중심에 앤트로픽이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앤트로픽은 미국 전쟁부와 밀월 관계를 누렸다. AI 모델 클로드는 전쟁에 적극 동원되었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 체포 작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 규모만 2억 달러, 약 2800억 원에 달했다. AI 기술 경쟁력을 국가 주권으로 이해하는 '소버린 AI' 시대, 기업과 국가는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다. 이들 간 관계가 공고해 보였던 만큼, 균열의 충격은 컸다. 예기치 않았던 균열은 앤트로픽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여야 기업 발전과 고용 창출 등을 통해 국익 신장이 가능하다. 오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규제 혁파가 시급하다. 노동·조세·규제 분야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주요 국제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 유연성과 채용·해고 관련 제도는 해외에 비해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주요 경쟁국인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측 가능성이 낮은 조세제도와 과도한 데이터 산업 규제 개선 필요성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통상 국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국제 경쟁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첨단산업 분야 등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 전환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를 정리하고, 규제 시스템을 국제 표준에 맞춰가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 방식은 금지해야 하는 사항들만 법이나 규정에 명시하고 나머지를 전부 허용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규제가 경제 주체들로부터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거나 비효율을 초래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지금의 규제는 현장의 필요보다는 규제 당국의 필요에 의한 측면이 많은 게 사실이다. 과거 산업 발전 단계가 낮을 때에는 그 사회에서 가장 똑똑한 집
4월이 되면 어떤 날짜를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이름은 여전히 또렷하다. 우리는 그날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인간은 각자 다른 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에 닿는 깊이가 다르다. 상상력과 공감의 범위 역시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작은 고통에는 민감하면서도, 타인의 거대한 고통 앞에서는 쉽게 감각을 잃는다. 특히 규모가 큰 참사일수록 그렇다. 숫자가 커질수록, 그 안에 담긴 개별의 얼굴과 목소리는 오히려 흐릿해지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어떤 비슷한 지점에서 생각을 멈춘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없다. 뉴스로 접하고, 기록을 통해 알고, 여러 해를 지나며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당사자의 감정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이 일을 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낼 자
한국과 일본 재계가 ‘저출산 해법’을 찾고자 머리를 맞댄다고 한다. 양국은 지난 13일 ‘한일 저출산 대책 교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저출산 정책 및 연구를 공유한다고 밝혔다. 한국 측 위원장은 SK그룹 회장인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일본 측은 고바야시 캔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인구가 현 수준을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1명이 되어야 하며, 이보다 낮으면 저출산이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명에 그쳤다. 일본은 1.15명이지만 9년 연속 하락세였다. 저출산은 결국 노동력 부족, 경제 규모 축소,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에 산업계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저출산이 유럽과 북미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였으나 점차 세계 여러 나라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저출산으로 한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나라마다 다양한 정책과 지원책들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저출산 위기를 겪었던 일본은 지난 30여 년간 다양한 정책들을 추진해 왔다. 육아휴직제도 도입, 보육 서비스 확대, 일 가정 양립을 위한 노동환경 개선에 이어 아동수당 확
잔디 구장에는 서로 잇대어 설치한 천막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잔칫날의 풍경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스피커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조금 늦게 도착한 바람에 점심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보다 막걸리 냄새가 먼저 다가와 코를 비틀어 놓았다. 김치와 여러 가지 음식들이 뒤섞인 냄새에 허기가 밀려왔다. 나를 초대한 지인은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삼십여 개가 넘는 마을이 모여 면민의 날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남자들은 막걸리 몇 잔으로 벌써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에는 흥이 넘쳤다. 바람에 현수막이 펄럭이고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였다. 옛날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났다. 내 앞에 앉은 할머니는 안부를 묻는 이장님을 향해 갑자기 옷을 들치더니 허리에 두른 복대를 보여 주었다. 아마도 허리 수술을 하신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드러난 복대는 할머니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지만, 내 마음 한 곳을 조이고 있던 무언가는 잠시 헐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방식이 살가웠다. 천막 앞에서 여자들의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마을 주민 중에서도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이 경기에 참여했는데, 아무리 힘껏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