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소리 없이 닫힌 문을 열고 들어와 어느 틈엔가 곁을 파고든다. 밤손님, 불면이다. 다음 날 오전 약속이라도 있는 날에는 더욱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 어둠의 볼륨을 키우며 “오늘도 나와 함께 아침을 맞아야지”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이것은 나만의 괴로움이 아니다. 수면장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다. 단순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일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 배경엔 스트레스와 불안, 트라우마 같은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원인들이 숨어 있다. 이야기 속에서 겪는 사건들은 특별하지만, 그 근원은 우리가 겪는 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겪는 갱년기 증상, 병의 통증, 교대 근무나 야간 노동처럼 직업적 요인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외에도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수많은 경우들이 존재한다. 그에 따른 다양한 치료법도 나와 있다. 잠들기 전에 마시는 따뜻한 우유 한 잔, 멜라토닌 처방, 햇볕 쬐기, 가벼운 운동,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권장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웃고 있는 조카의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진을 보며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을 떠올렸다. 학교 건물 벽에는 반과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벽보가 붙어있었다. 우리는 반이 표시된 운동장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나란히 줄을 맞추느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몇 걸음씩 우르르 옮기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운동장에서, 코를 훌쩍이며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입학식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쓸 줄 아는 글자는 겨우 내 이름뿐이었다. 자음과 모음의 순서도 모르고 쓰는 글씨는, 그림에 가까운 상형문자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따라 읽고, 공책의 네모 칸을 한 글자씩 채우며,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받아쓰기경시대회’라는 것을 했고, 나는 백점을 맞았다. 선생님은 상 받을 몇 명의 아이를 호명하며 교탁 앞에 세웠다. 그리고 우리를 한 명씩 돌아가며 업어 주셨다. 이름밖에 쓰지 못했던 나를 보고는 더 기뻐하셨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는 매일
분류가 잘 된 것은 아름답지요. 이를테면, 계절을 나누고 때와 장소에 맞게 차려입을 수 있도록 정리가 된 드레스룸 말입니다. 엄마의 옷장은 그야말로 옷 무덤이었어요. 나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 옷장에서 꺼낸 옷들을 방바닥에 쌓았습니다. 옷이 든 바구니와 서랍까지 쏟자, 방 한가운데가 봉분처럼 우뚝 솟았습니다. 온갖 색이 뒤섞여 한쪽은 푸르고, 한쪽은 검고 붉어 고르게 자라지 못한 뗏장 같았어요. 헤집어 놓은 옷에서 취향 같은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의 옷에는 비싼 값을 자랑하는 라벨 대신 고단했던 삶이 붙어있습니다. 쌓인 옷가지는 헌옷 수거함에서 나온 것 같아, 다 갖다 버려도 아깝지 않아 보였는데요. 신기하게도 엄마의 눈에는 버릴 것이 없는지, 자꾸만 내 주변을 서성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며, 나는 버릴 것을 더 많이 골라냈습니다. 옷은 날개가 아니었습니다. 무릎이 나오고 보풀이 인, 수많은 계절이 한꺼번에 걸어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이 나오고 포장지가 붙어버린 사탕도 나왔습니다. 다른 옷에 짓눌린 스웨터의 한쪽 팔이 축 늘어져 있고, 치마는 마치 보자기 같았어요. 세탁을 잘못해서 줄어버린 니트와, 늘어진 티셔츠를 다 입을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