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웃고 있는 조카의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얼마 전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찍은 것이었다. 사진을 보며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풍경을 떠올렸다. 학교 건물 벽에는 반과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벽보가 붙어있었다. 우리는 반이 표시된 운동장의 깃발 아래로 모였다. 나란히 줄을 맞추느라, 앞으로 뒤로 옆으로 몇 걸음씩 우르르 옮기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의 운동장에서, 코를 훌쩍이며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입학식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쓸 줄 아는 글자는 겨우 내 이름뿐이었다. 자음과 모음의 순서도 모르고 쓰는 글씨는, 그림에 가까운 상형문자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따라 읽고, 공책의 네모 칸을 한 글자씩 채우며,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받아쓰기경시대회’라는 것을 했고, 나는 백점을 맞았다. 선생님은 상 받을 몇 명의 아이를 호명하며 교탁 앞에 세웠다. 그리고 우리를 한 명씩 돌아가며 업어 주셨다. 이름밖에 쓰지 못했던 나를 보고는 더 기뻐하셨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 우리는 매일, 등 뒤에서 외치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지만, 그런 당부들을 중요하게 여기며 자랐다. 선생님은 학교라는 공간을 포함하는 장소였고, 부모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선생님은 온전하고, 학교는 안전한 곳이었다. 스쿨 존을 지날 때면, 속도를 더 잘 지키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시속 30킬로의 느린 속도는, 아이를 눈에서 떼어놓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생명이 눈에 들어오는 속도니까.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몇 년 전 인상 깊게 봤던 드라마 ‘도깨비’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빨간 정장을 차려입고, 주인공의 졸업식에 찾아간 삼신할미의 등장이었다. 삼신할미는 담임선생님에게 “아가, 더 좋은 선생일 수는 없었니?”라며, 주인공을 구박하던 선생님을 향해 부드러운 훈계를 했다. 우리 모두가 아이를 지켜보는 선생님이자 삼신할미였으면 좋겠다.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조카의 사진 속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따라 웃는다. 우리는 아이의 웃음으로 웃을 수 있는 어른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지혜가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뼈를, 단단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커지는 새 학기다.
오후가 되면 창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재잘재잘, 와글와글 아이가 자라는 소리가 회색의 아파트에 빛을 들인다. 이름 세 글자로 시작된 나의 여덟 살은, 선생님이 불러주는 말을 받아쓰며 부화를 시작했다. 어린 제자를 위해 쭈그려 앉아 등을 내밀던 나의 선생님! 그분의 불편하고 아름다웠던 자세를 잊지 못한다. 선생님의 따스했던 넓은 등이, 내게는 커다란 상장이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좋아요’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받침이 틀려도 천천히 쓰고 지우며, 자기 세계를 눈부시게 확장해 나갈 것이다. 올해도 1학년 교실에는 ‘참! 잘했어요’가 푸른 별처럼 반짝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