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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희망의 봄을 맞을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말자”

수원시·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노숙인 구호~자활 지원
거리노숙인 A씨, 특화자활사업 참여하며 탈노숙·자활 성공 ‘결실’
임시거처 제공, 치유 프로그램, 긴급·의료비·주거·일자리 지원 등
“솔직하게 어려움 얘기하면 도움받을 수 있는 이 지역의 시민 자부심”

설렘을 주는 봄, 특히 올해 봄은 더 그렇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송두리째 사라진 봄을 2년 만에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에게는 올해 봄을 더욱 따뜻하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수원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가 수원시와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자활하게 된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수원시 장안구 한 동 행정복지센터가 주민들을 맞이하기 전에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A(59)씨는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누구나 저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힘들 텐데도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청소하는 그는 2년 전까지 거리를 전전하던 ‘노숙인이었다.

 

A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화물차를 운전하며 생활했지만 2015년 연쇄 부도가 발생하면서 불어난 빚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다시 일어서 보겠다는 의지마저 잃은 그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살전 집과 차량을 처분하고 머물 곳 없이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그는 2019년 3월 수원역으로 왔다.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가끔 일하러 가서 번 돈으로 담배를 사서 피웠다. 다행히 술은 마시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잠을 청하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 나타나 “찬 데 있지 말고 임시숙소에서 지내시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

 

길거리 생활은 ‘생각’마저 멈추게 했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 수원역에서 지낸 지 6개월여 만에 다리를 비롯해 몸에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불편해 보이는 그의 움직임에 주변 지인이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에게 알려 병원에 입원했다. 진단 결과 뇌경색이었다.

 

다시서기센터의 도움으로 입원 치료가 끝나고 퇴원 후에도 그는 또 수원역을 찾았다. 그러다 한 달여가 지나면서 문득 ‘더 이상 추락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치료를 도와준 센터가 제안했던 ‘특화자활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같은 해 11월부터 특화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다시 활력을 찾았다. 거리 생활 7개월여 만이었다.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쇼핑백 제작, 거리 청소도 도맡아 했다. 고시원 방을 임시 주거로 지원받아 입실한 첫 날, 그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두꺼운 옷을 벗고 편안하게 발을 뻗고 따뜻한 곳에 누우니 평온했다”라며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함을 느꼈다고 한다.

 

A씨가 자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수원시와 다시서기센터가 연계해 초기노숙인 긴급지원, 건강에 이상이 있으면 센터에서 병원 치료 등의 도움을 줬다.

 

활기찬 생활도 잠시, 지난해 봄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특화자활사업도 중단됐다. 그래도 매일 마스크를 쓰고 산책을 다녔다. 건강해야 활기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서기센터는 신용불량자 신분이어서 통장을 개설하지 못해 일자리를 찾으려 해도 늘 걸림돌이 됐던 A씨의 신용 문제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자격증 취득을 지원받아 다시 자동차운전면허를 땄고, 자활 의지도 강해지면서 금연도 성공했다. 벌써 6개월째다.

 

지난해 9월에는 매입임대주택으로 입주했다. 방 한 칸 고시원에서 방, 주방, 화장실이 있는 새집으로 이사했다. 특화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받은 수당의 절반을 모아뒀다가 필요한 살림살이도 장만했다. TV, 냉장고, 밥솥 등 가전제품은 중고로 구해 집에 들여놓으며 자활에 대한 자부심도 커졌다.

 

올해 초부터는 공공근로사업 참여자로 선정돼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때 소박한 밥상을 차려 먹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하기만 하다.

 

A씨는 생활이 안정되면서 주변인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함께 자활사업에 참여했던 동료의 안부를 확인하고 가끔 수원역을 찾아가 노숙인들에게 자활사업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이제 A씨 목표는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하는 것이다.

 

A씨는 “일할 수 있고, 거리 생활을 극복했다는 자부심으로 맞는 봄이 무척 즐겁다”며 “내가 극복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극복할 수 있길 바란다. 희망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이 지역 시민이 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수원시와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추위와 위험에 노출된 노숙인 구호부터 상황, 특성 및 욕구에 따른 지원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거리 노숙인들의 초기 상담을 통해 일시보호시설이나 자활시설로 연계하고,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적응 기간을 거쳐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심리상담 치유, 자격증 취득, 신용회복 등의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뤄진다. 노숙인만을 대상으로 한 특화자활사업은 일자리와 주거지원이 병행된다.

 

자활 기반을 마련한 경우 노숙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지역 사회에 복귀하는 사례도 많다. 지난해 노숙인 31명이 임대주택에 입주해 주거 안정을 얻었고, 20명은 상용직으로 취업했다. 노숙인 9명은 개인 회생과 파산 신청 등의 절차를 통해 신용회복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특화자활사업 참여자 50여 명이 제작한 쇼핑백 수익금(157여만 원)은 지난 10일 미혼모시설 고운뜰에 기부금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및 경기침체로 사회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노숙인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줄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활에 성공한 사례가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섭 수원시 복지정책과장은 “지속적으로 노숙인 보호 및 지원에 최선을 다해 노숙인들이 희망을 품고 따스한 봄을 맞아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이주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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