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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58. 세조임금의 만리장성 구치관

정직·청렴한 성품으로 청탁을 배격한 청백리의 본보기
세조 "문무(文武)의 재주를 겸비하였으니, 내가 어찌 나라에 큰 인재가 없음을 근심하랴"

 

경기도 광주 곤지암읍 열미리에는 세조 임금이 매우 신뢰하고 든든히 여긴 구치관(具致寬)의 묘가 있다. 구치관(1406~1470)의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이율(而栗)·경률(景栗), 시호 충렬(忠烈)이다. 세조는 구치관을 "구능성(具綾城)은 나의 만리장성이야"라고 하였다.
 
공은 성격이 정직하고 아첨하기를 싫어해 과거에 급제하고 10년이 지나도록 항상 낮은 벼슬에 있었다. 단종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해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1455) 공신에 책록됐다. 요직을 두루 거쳐 세조 12년 영의정이 됐다. 관직에 있을 때 산업을 장려했고, 정직·청렴한 성품으로 청탁을 배격한 청백리의 본보기가 됐다.
 
지조가 굳고 확실하였으며 식견이 고매하여,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때는 대범하고 엄격하며 언행이 바르고 곧았다. 또 위풍 있는 모습을 보여 존경심을 일으키게 하였다. 세조가 국정을 이끌면서 공을 불러 함께 의논 함에 있어 깊이 능력을 인정하여 말하기를, "경을 늦게 안 것이 한스럽다" 하였고, "능성은 문무(文武)의 재주를 겸비하였으니, 내가 어찌 나라에 큰 인재가 없음을 근심하랴" 하였다.

 


 
세조는 평안도를 북문(北門)의 자물쇠로 생각하여 이곳을 진정시키는 것을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다고 여겨 공을 절도사로 임명하였다. 공이 부임하고부터 지휘명령이 대범하고 엄숙하였으며, 은혜를 베푸는 동시에 위엄을 아울러 나타내어서 조용히 담소(談笑)하는 가운데 군정(軍政)을 모두 훌륭하게 닦을 수 있었다.
 
공은 자기 스스로 생활함이 마치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 또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싫어하였고 도서(圖書)로 가득찬 한 방에서 담백하게 지낼 뿐이었다. 죽은 후 집이 가난하여 장례를 치르기 어려웠는데, 임금이 쌀과 콩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신숙주가 영의정이 됐을 때 구치관이 새로 우의정이 됐다. 세조가 두 정승을 급히 내전으로 불러 이르기를 "오늘 내가 경들에게 물음이 있을테니, 능히 대답한다면 괜찮지만 대답하지 못하면 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하매, 둘이 모두 절하며 사례했다.

 

 

세조가 "신정승(申政丞)"하고 부르니, 신(申)숙주가 대답하니 세조가 이르기를, "나는 새로 임명된 신정승을 불렀다. 경이 대답을 잘못했도다"하고는 커다란 잔으로 벌주를 내렸다. 또 "구정승(具政丞)"하고 부르니 구(具)치관이 곧 대답하니, 세조가 이르기를 "난 옛(舊) 정승을 불렀으니 경이 대답을 잘못했네"하고는 커다란 잔으로 벌주를 내렸다. 또 "구정승"하고 불렀더니 숙주가 곧 대답하니, 세조가 이르기를, "난 성(姓)을 불렀는데 경이 잘못 대답했소"하고는 벌주를 주었다

 

또, "신정승"하고 불러도 신숙주와 구치관 모두 대답하지 않고 "구정승"하고 불러도 구치관과 신숙주가 모두 대답하지 않으니 세조가 이르기를, "임금이 불러도 신하가 대답하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니라"하고는 역시 벌을 주었다. 이렇게 종일토록 벌주를 마셔서 심히 취하니, 세조가 크게 웃었다.

 

구치관이 군사에 관한 일을 잘 알았으므로 세조가 공에게 명해 진서대장군을 삼아 방비케 하고는 좌우에게 이르기를, "구능성(具綾城)은 나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이야"라고 했다. 공은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되었으니, 이처럼 세조가 더욱 신임하여 중책을 맡겼던 것이다. 그 후 이조판서를 맡았을 때는 고관이나 귀인들이 좋은 벼슬을 청탁하는 경우가 있으면 모두 먼저 이들을 도태시켰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