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도발이 경제독립의 기회”라는 이재명 도지사의 발언에 주목한다. 이 지사는 일본이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결정한 2일 이같이 선언했다. 또 “경기도는 장단기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와 함께 치밀하게 대응하겠다”고 ‘정부 공조론’을 강조했다. 이를위해 ▲긴급경영특별자금 지원 및 상환유예 확대 ▲산업피해 조사 ▲대체 물량 확보 및 국산화 등 지원 ▲경기도형 소재부품 분야 연구개발(R&D)과 생산 인프라 조성 등 장·단기 대책을 발표했다. 첨단산업의 중심지인 경기도가 일본의 경제도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 조기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또 아베의 도발에 이은 청와대의 대응책 발표 직후 대책을 발표, 이미 이번 도발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경기도가 이같은 일이 벌어질 경우 예상되는 도내 기업의 피해 규모와 대비책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는 점에서 짐작된다. 도는 지난달 초 이화순 행정2부지사를 단장으로 ‘일본 수출규제 대응 TF’를 구성,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을 방문해 현황을 파악했고 ‘관련 기관·단체·기업·전문가 합동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도발 이후’를 준비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어찌하오리 저 꽃을 /최재경 자고나면 너는 나처럼 누추한 행색으로 변두리를 떠돌다 시들어 바람으로 사라지고 나는 또 상심으로 밤을 맞으니 어이하랴 피려다 잠 든 영혼 가만히 만져본다 다시 피어날 수 있다면 함께 떠날 수 있다면 어찌하오리 저 꽃을. - 최재경 시집 ‘깨금발로 보는 풍경’ / 詩와 에세이·2018 어느 때 꽃이 아니었던 인생이 있으랴만 어느 목숨인들 질 때의 행색은 초라함을 피할 수 없으리라. 막상 곁에 두었던 꽃이거나 사람이거나 혹은 그 영혼이 곁을 떠나는 아픔의 풍경은 어찌하랴만, 시인의 마음처럼 가만히 만져본다면 부추하거나 변두리거나 시들어 바람으로 사라질지라도 늙고 낡고 마치 때를 다한 꽃처럼 사라질지라도 그와 함께 떠날 수 없어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우리의 심성, 심정을 시인이 대신 울어주고 있는 듯하다. 이 시를 가만히 노래내어 읽다보면 아, 시인은 아름다운은 언어의 기교에 집착하지 않고 세월 듦의 쓸쓸한 공감을 가만히 만져주고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김윤환 시인
일제강점기를 벗어나자 우리에게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소 냉전체제의 최전방에 내몰려 분단과 6·25로 이어진 것이다. 그 후유증이 바로 색깔론이다. 논리가 결여된 이 편가르기는 전쟁 때나 있을 법한 사고방식이다. 불행히도 이 유치한 사고는 계속 확대재생산됐다. 북한에 동조하면 빨갱이로 몰려 목숨이 위태로웠다. 북한은 무조건 틀렸다는 말인데 어떻게 100% 틀릴 수 있을까. 현 정부와 지난 우파 정부 때의 ‘단계적 평화통일’과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에는 공통점이 많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정부시절 진보당 사건(1957)에서의 기소이유는, 강령이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통일을 담고 있어서였다. 강령부분은 무죄였지만 빨갱이로 몰린 당수 조봉암은 처형됐다. 박정희 정부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포장되어 처벌됐고, 이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색깔론의 피해자였다. 이런 색깔론은 현 정부 들어 신색깔론으로 진화했다. 대북정책을 비판하면 곧바로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라고 공격하는 식이다. 결국 색깔론도, 색깔론이라는 공격도 모두 색깔론식이다. 흰색과 빨
대학시절 5층 강의실까지도 오르락내리락 걷는데 불편함이 없이 날아다녔다. 엘리베이터도 없던 시절이다. 목발을 짚으면서도 가방을 들고 뛰어다니고 날아다녔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강의가 끝나고 다음 강의가 시작되는 10분의 휴식시간 동안 강의실을 찾아가면서도 한 번도 늦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뛰다시피 했던 그 모습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지는 않았지만 그때 내 친구들은 나를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 때문에 내가 장애인 인권을 보호받지 못했다고 우스개로 이야기 한다. 대학 4학년 때였다. 일주일에 두 번만 학교에 가면 되었다. 대학시절 내내 자취를 한 나는 스스로 밥해 먹는 것이 싫어서 안산에서 대전을 통학하는 강행군을 선택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수원 역에서 7시 기차를 타야만 9시 첫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남들은 그 무슨 고생이냐 1년만 더 대전에서 자취를 하지.. 하지만 나는 혼자 사는게 싫었다. 그렇게 통학을 하면서 나는 행복했다. 세상사람과 소통하며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는 희열을 느꼈다. 그런 극성맞은 성격탓에 나도 모르게 팔방미인이 되어 있었다. 무슨 소리냐구요. 지역사회와 호
1994년은 7월, 장마가 끝난 후 이상고온 현상으로 무더위가 계속됐다. 광주 38.5℃, 전주 38.2℃를 기록하면서 55년 만에, 서울도 최고 38.4℃를 기록하면서 51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당시 기상청 관측결과 전국의 58.4%에서 일 최고기온이 경신되었을 정도로 폭염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로인해 무려 3천384명이 사망했다. 2013년 여름도 폭염으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산업피해도 많이 발생했다. 경기, 인천, 충남, 전북, 경북 등 705 농가에 가축 1천985천수(닭 1천664천수, 오리 242천수, 돼지 2천133두 등)가 폐사되었다. 낙동강 하천 구간에 녹조가 발생하면서 피해를 키웠고 아열대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침입 외래종 ‘등검은말벌’ 등이 확산, 생태계도 교란 시켰다. 그런가 하면 1995년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시카고는 가마솥 무더위를 보였다. 최고 온도가 40.0℃에 달하는 폭염이었다. 7월 11일부터 27일 사이에 465명이 고온 때문에 사망했다. 그 중 반 이상이 75세 이상의 노약자였다. 1994년 여름, 일본은 75일간 연속 30℃를 넘는 고온을 기록했다. 최고 기온은 39.1℃에 달했다. 당시 고온으
허공 /이덕규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어느 한쪽으로 가만히 기운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지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 이덕규 시집 ‘놈이었습니다’ 그렇다, 나무가 기댈 곳은 허공밖에 없다. 기댈 곳이 허공뿐이라서, 글자 그대로 텅 비어 있어서, 정말 아무 것도 없어서, 마침내 나무는 위로 자랄 수 있다. 그러니까 허공은 나무의 유일한 기댈 곳이다. 허공에 기대지 않고서는 나무는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다. 사람에게도 허공 같은 존재들이 있다. 어느 한쪽으로 쿵, 쓰러지기 전에 기억해내야 할 허공 같은 사람들이 있다. 허공처럼 늘 있으나 없는 듯 나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 허공을 숨 쉬는 것처럼 늘 함께 하여서 바람 불고 눈비가 오는 날에나 그 든든한 어깨를 알게 하는 사람들. 이제는 내가 기댈 곳이 되어 주어야 하는 사람들./김명철 시인
돈은 그 사회의 가치 척도라고 할 정도로 현대사회의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고 에너지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어디에 사용할 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옛 속담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는 말이 있다. 돈이 귀중해도 사람보다 더 귀중할 수 없다는 뜻으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다. 어떤 이들은 ‘돈은 사회생활의 전부다’ 또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돈이 신(神)의 자리를 대신할 정도로 무겁고 중요하다.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사버리는 사람들이 믿는 가상의 ‘지름신’이 바로 그 신(神)이다. 돈을 신으로 표현할 정도로 돈의 마력은 엄청나다. 인생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빌리기도 하며 살아간다. 돈이 필요할 때 누구나 선뜻 시원스럽게 빌려주지 않는다. 돈을 빌려 줘도 좋은 사람인지?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에 몇 가지 인상학적 특징을 얼굴에서 살펴보면 이런 고민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돈을
저녁 아홉 시. 나는 늘 이맘때면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다. 빈집이다.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들어온 뒤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귀가를 한다. 나는 불 꺼진 빈집에 홀로 들어서기가 때로는 무섭다. 지친 몸으로 겨우 키보드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늘따라 나를 반기며 쫓아 나올 강아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나는 얼른 거실의 불을 켠다. 푸드덕푸드덕 몸부림을 치던 형광등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환하게 밝아온다. 거실 안에 누군가 서 있다. 주방 창문 가까이 돌아선 자세로…. 나는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다. 뚫어지게 그를 바라본다. 그는 내가 들어왔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오싹하니 곤두선다. 나는 기다린다. 그가 돌아서기를.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는 돌아선 자세에서 집안을 한 바퀴 쭉 둘러보는 모양이다. 내 눈엔 아침에 미처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고 빠져나간 집안의 어지러운 모습이 어수선하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못 박힌 듯 출입문 앞에 그대로 서 있다. 이윽고 그 검은
▲이종경(전 고양시 자치행정실장)씨 모친상= 31일 오후 10시, 양평장례식장 3호실, 발인 2일(금) 오전 8시, 장지 양평군립납골당 ☎010-9291-0681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