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뜨는 해 /이복순 머리에 뽀얀 먼지는 켜켜이 쌓이고 무릎은 빈 수레 소리로 울기 시작이다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도 모른다 종료 나팔 불어줄 심판은 불쑥 초침을 잴 것이다 급정지 그림자가 내 키를 훌쩍 넘은 지금은 하루 중 가장 좋은 저녁이다 서쪽으로 뜨는 해도 아름답다. - 시가 있는 고요아침 시집, ‘서쪽으로 뜨는 해도 아름답다’ 중에서 시인은 익숙한 작은 거인이다. 그것은 남다른 방식으로 길을 모색한 여정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정신의 그믐에 앉아서 아주 오래된 문밖으로 외출한 심연을 끌어올린 작의적인 진술들이 파노라마처럼 읽혀진다. 삶이란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갔고, 시인의 길에서는 이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안 미로의 길을 접어선듯하다. 그 미로는 생명에 대한 예지일 수도 있고, 현재 진행형인 만학의 길에 머무는 과제로 남는 여행이기도 할 것이다. 하루 중 긴 여정을 넘긴 저녁 날, 서쪽으로 뜨고 지는 해의 달관이 부처님의 가르침의 성찰이 아니겠는가?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 그냥 입을 다물어 버린 사람들의 무기력한 침묵의 언어들이 인간 본성의 어둠을 집요하게 묻고, 또 물어도 해는 지고 달은 뜬다. 시인의
차가운 보름달이 떠 있는 하늘의 빛깔은 신비롭기만 하다. 달빛이 드리운 가지런한 땅 위로 한 집시 여인이 잠을 자고 있다. 미처 내려놓지 못한 지팡이는 그의 손에 꼭 쥐어져 있고, 꿈속에서도 먼 길을 헤매고 있는 듯 자면서도 살짝 뜬 두 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 모양이다. 피부가 까만 그의 얼굴은 피로로 일그러져 있는 것 같다가도 살며시 미소 짓는 것도 같다. 자그마한 악기도 그의 곁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가 입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의 줄무늬 드레스가 지친 그의 모습과 대비되어 인상적이다. 그의 곁에는 사자 한 마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이 짐승은 집시의 뒤편에서 먼 곳을 응시하며 그렇게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앙리 루소가 1897년 완성한 ‘잠자는 집시 여인’이라는 그림이다. 작품은 공상의 세계를 담고 있으며 신비롭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지금은 뉴욕 현대미술관에 자랑스럽게 걸려 있지만, 루소가 살아있던 당시에는 냉대를 받았던 작품이다. 루소는 이 작품을 자신의 고향인 라발 시에 팔고 싶었지만, 작품은 가차 없이 거절당했다. 위대했지만 불운했던 화가들의 다수가 그러했듯, 루소 역
어릴 적의 기억은 자라면서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도 자신의 경험을 저장하는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잊힌 어릴 적 기억 또한 회상하지 못할 뿐이고 신경세포 어딘가에 저장돼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아기들도 경험을 저장할 수 있지만 기억은 빠르게 사라졌다. 생후 3개월 아기는 1주일 정도 밖에 모빌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지 못했다. 돌이 지난 아기는 두 달 이상 기억을 유지할 수 있었고, 나이가 들수록 점차 기억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졌다. 오래 전에 들은 얘기 중에는 아기 때는 전생의 기억과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어 자주 운다고 했다. 고생할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면 근심 때문에 울고 영화롭게 살 사람은 그들을 음해하는 안티세력 때문에 운다고 한다. 그러나 아기가 점차 자라면서 밥을 먹게 되는데 밥을 먹으면서 같이 먹게 되는 국이나 반찬에 들어 있는 염분이 전생의 기억을 지운다고 한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지능력도 점점 약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근거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과학적으로 입증 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해도 그 당시에는 꽤 그럴 듯하게 들렸다. 기억은 신경세포에 일대일로 저장되는 것이
정부가 지난 23일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체벌하지 못하게 한 대목이다. 유교적인 전통이 강해 체벌에 관대한 우리 사회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사회의 진전에 비춰 아동 인권 강화를 위해서는 매우 진전된 내용이다. 관련 민법 915조는 1960년 제정된 이래 개정이 전혀 없었고 아동복지법상 체벌금지 조항과도 상충해 그동안 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이밖에 이번 아동정책에는 민법이 규정한 ‘친권자의 징계권’에서 체벌을 제외키로 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도 갖추기로 했다. 민간에 의존하는 입양체계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편한다. 건강지원을 강화하고, 창의성과 사회성을 위한 놀이혁신 정책도 추진키로 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아동학대 예방사업이 시작된 2001년부터 최근까지 단 한 번의 감소 없이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1년 2천105건에서 2017년 2만2천367건으로 10배 이상이나 늘었다. 더욱 놀라운 통계는 학대 행위자가 부모인 경우가 매년 70% 이상을 차지해 왔
26일 일요일 아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다. 인터넷 기사에는 “와! 경쟁작들 대단하던데 그 속에서 황금종려상이라니… 봉감독 영화들은 대중성과 함께 메시지가 있어서 좋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의 경사입니다” “허허 기가 막히다. 내 생애에 황금종려상 한국영화를 보다니” 등 봉감독의 경사를 내 일처럼 좋아하는 국민들의 댓글들이 경쟁적으로 달리고 있다. 가운데 “우리나라는 정치만 빼면 정말 최고다”라는 댓글이 유독 눈에 띈다. 그 누리꾼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한 케이팝 스타, 손흥민, 류현진 등 스포츠 스타들이 국위를 선양시키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등이 출연한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 한국영화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유독 정치 쪽만 구태를 벗지 못하고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봉준호 감독은 세계 영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뿐 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 역
5월 31일은 미국의 국민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이 탄생한 지 200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휘트먼이 재학했던 버지니아대학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방향을 잃고 유랑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의 예언적 선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855년 휘트먼이 자비로 출판한 ‘풀잎’은 미국 문단과 문화계에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왔다. 당시의 전통적인 시 형식을 파괴한 자유시를 시도했을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인간정신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20세기 미국시인 랭스턴 휴즈(Langston Hughes)는 “휘트먼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으며 ‘풀잎’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위대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초판 발간 이후 작고할 때까지 거듭 개정 증보판을 낼 정도로 공을 들인 ‘풀잎’은 휘트먼의 시정신의 집약체이다. ‘풀잎’은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 1)’로 시작한다. 나는 나 자신을 찬미하고 나 자신을
각루(角樓)는 보통 방형(方形)의 왕궁이나 성곽의 담장 모퉁이에 설치돼야 한다. 그런데 수원화성의 배치형태는 방형이 아닌 원형(圓形)에 가깝다. 원형 성곽에 각루를 설치하게 된 것은 수원화성의 위계를 높이기 위한 정조의 의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각루 건립 계획은 처음에는 없었고 을묘년(1795) 행차가 끝나고 진행한 2차 공사에서 도입됐다. 서남각루는 팔달산 남쪽에 있는 용도(甬道, 성안에 무기나 양곡을 운반하며 양쪽에 담으로 쌓은 좁은 길) 끝에 있다. 서남각루를 제외한 3개 각루는 그나마 성곽 모퉁이에 있지만, 이 각루는 성곽에서 튀어나온 용도의 끝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모퉁이와의 상관관계가 없다. 만약 용도가 없었다면 남성(南城)과 서성(西城)이 만나는 현재 서남암문의 자리에 각루를 설치했을 것이다. 그렇게 설치했다면 용도로 인해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위계를 위해서 만든 각루의 의미가 퇴색됐을 것이다. 건물의 방향을 살펴보자. 서남각루의 건물 방향은 동서를 하고 있지만, 나머지 3개 각루는 남북을 정면으로 하고 있다. 수원화성 행궁은 동향을 하지만 수원화성의 주요방향은 남북방향이다. 십자각인 동북각루과 서북각루의 건물은 북향하고
A는 2016년에 임대 중인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기로 계약했는데, 잔금일이 다가오는데도 임차인이 건물을 비워주지 않고 있었다. 매매계약서에 건물을 비어 있는 상태로 넘긴다는 조건을 달아뒀으므로, 계약조건 미이행으로 계약이 해지될 것을 걱정한 A는 어쩔 수 없이 임차인에게 명도비를 주어 건물에서 나가게 했다. A는 양도소득세를 신고하면서, 기존 임차인에게 지급한 명도비용을 필요경비로 공제해 양도소득세를 신고했다. 몇 년 후, A는 담당 세무서로부터 과세통지서를 받았는데, 2016년 양도소득세 조사결과 명도비용은 필요경비로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양도소득세를 추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과세당국은 부동산을 양도하는 거주자가 부동산매매계약서 상 임차인을 퇴거시키기로 하는 계약조건을 이행하기 위하여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명도비용은 법에서 열거하고 있는 필요경비도 아니고, 양도인에게 지급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양도소득의 필요경비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계속 해 왔으므로, 이 건에 대해서도 필요경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A는 억울한 마음에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는데, 조세심판원은 A의 손을 들어주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건물의 상태가 공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이재웅 쏘카 대표가 설전을 벌여 주목을 받고 있다. 최 위원장은 ‘타다’ 서비스로 택시업계와 갈등을 빚는 이 대표를 향해 “무례하고 이기적이다”라고 대놓고 비판했고, 이 대표는 “이 분은 왜 이러시는 걸까요, 출마하시려나?” 하며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로 받아쳤다. 정부의 장관급 인사와 기업 대표가 이렇게 맞붙는 모습은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다. 각종 권한을 가진 정부가 ‘갑’이라면 그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인은 ‘을’이었다. 따라서 기업인이 정부 관료, 특히 힘 있는 장관급 인사를 들이받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만일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기업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규제에 묶이거나 국세청의 세무조사 등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인이 이처럼 정부 관료와 ‘맞짱’을 뜨는 모습을 보이는 건 정부의 대(對)기업 정책이 그만큼 투명해지고 공정해졌다는 의미도 된다. ‘괘씸죄’나, ‘기업 손보기’가 더는 용납되는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이 설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누가 됐든 ‘싸움’의 모습을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민은 정치권의 막말 싸움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관료와 기업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