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조상들이 가꿔 온 거룩한 전통이 현대 물결에 의해 사라지는 추세다. 장터마다 있었던 대장간이 없어지고, 농가에 꼭 있어야 했던 쟁기도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 값진 식기는 놋그릇이었다. 놋그릇은 한 번 구입하면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었으며, 품위가 있고 보온이 잘 된다. 그처럼 위엄이 있고 고풍스러워 임금님 상에는 반드시 올랐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28 대 22로 1천200도의 고온에서 섞은 후 만들고자 하는 판에 쇳물을 부어 식힌 다음, 망치질로 펴서 원하는 그릇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통일 신라의 유기 제품으로 보이는 청동숟가락, 청동용기, 청동제기 등이 이천 설봉산성에서 출토돼 그 기원을 말해준다. 방짜는 주석이 포함돼 있는데도 거듭되는 망치질과 반복적인 열처리가 방짜가 깨지지 않는 비밀이다. 군포시에는 방짜유기장이 있다. 방짜유기 기능보유자 김문익(78)은 1992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에 지정됐다. 김문익의 방짜 기술은 악기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악기의 음색은 청아하기 그지없다. 군포 방짜는 72 대 28로 주석의 함유량이 더 많다. 주석이 많을수록 깨지기 쉬우나 빛과 소리가 좋아서 고집한다. 1988년 서울 장
소설은 작가가 등장인물 뒤에 숨어 있어서 수필처럼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 잔 너머로 정 어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주지 않는다. 고운 수필에는 이슬 모은 시냇물이 돌돌 거리거나, 옅은 커피 향이 아늑하게 번지는 느낌이 있다. 오래 전의 외국 수필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하다. 단기 4292년에 성문각에서 발행한 600환짜리 영(英) 수필인 ‘시대와 인생’은 읽을수록 감미롭다. 부식이 진행되고 있는 60년 전의 수필집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이 수필집에는 프렌시스 베이건, 리처드 스틸, 제롬 K. 제롬 등 30명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수필의 시작은 프랑스의 몽테뉴로서 그의 수필이 영어로 번역돼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시대에 소개됐다. 베이컨은 영 수필의 시조로 인생의 많은 일을 쉽고 짜임새 있게 써서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후에 에디슨과 스틸은 자신들의 신문에 유창하고 아름다운 글로 런던 주변의 이야기를 유머를 곁들여 엮어서 수필을 하나의 장르로 굳게 세웠다. 독자는 감동스럽거나 재미있는 수필을 원한다. 특히 현재는 재미있는 글을 원하는 추세다. 그런데 130여 년 전에 제롬 K. 제롬은 그런 글을 썼으니 앞을 내다보았다 하겠다. ‘의심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시간이 흐른다는 것과 흐르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면 길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볼 것입니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그들을 게으르고 한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습니다. 자기가 주체로서 행동하지 않은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탄자니아 추장이 했다는 말이다. 그 뜻이 오묘하여 이해가 잘 안 되나 아프리카에서 잠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조금은 수긍할 것이다.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 변두리의 길옆 풀밭에는 원주민들이 할 일 없이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비스듬히 엎드려 자고 있다. 탄자니아 추장 말처럼 그들에게 시간은 과연 흐르지 않는 것일까? 나이로비는 적도 부근의 평원으로 해발 1천700여 미터라서 일 년 내내 우리나라의 9월 중순 같은 기온이다. 중고차 매연의 시내를 벗어나면, 맑은 공기에 각종 수목에는 예쁜 꽃이 피어 새들이 노래한다. 쟁반보다도 큰 달이 손에 잡힐 것 같고, 초롱초롱한 별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듯하여 ‘아, 참으로 좋구나!’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이로비는
국가가 성립되려면 국민과 영토와 주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본인 3요소를 무시하고 자기들 임의로 국가라고 주장하는 곳이 지구상에 4백여 곳이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가칭 국가들의 국민은 수십 명이 대부분이고, 시설은 영토로 삼을 수 없게 빈약해 어디서도 국가로 공인받지 못한다. 그 터무니없는 곳은 카리브 해의 레돈다 왕국, 영국 남쪽 바다의 시랜드 공국, 미국 플로리다주의 콘치 공화국, 미국 네바다주 사막 지역의 몰로시아 공화국,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 외곽의 우주피스 공화국,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벨기에 사람이 남극에 세운 플란드렌시스 대공국, 호주 서부의 농장주가 세운 헛리버 공국,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주에 속한 섬 끝에 세운 아우터발도니아 공국, 영국의 코미디언이 자기 아파트에 세운 러블리 왕국이다. 또 인구 7명의 오스티네시아와 46명의 투체어스 왕국, 인구가 238명이나 되는 아에리카 제국, 370명의 세보르가 공국, 그런가하면 2명뿐인 아틀란티움 제국, 4명의 몰로시아 공화국 등도 있다. 이들은 주장만 하지 이목을 끌만한 특징은 없다. 그러나 국가로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지역이 있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는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다. 넓은 열차 칸에 덩그러니 혼자라면 어떠할까. 덜컹거리는 철로의 마찰음이 예전보다 크게 들리고, 지나가는 들과 건물과 나무들이 외로움으로 다가서서 부르르 몸서리치지 않을지. 아니,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오페라 가수처럼 무게를 잡고 노래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느 정치 후보자처럼 허세부리며 큰 소리로 연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가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에. A. G 가드너는 런던에서 미들랜드로 가는 마지막 열차인 완행열차를 탔다. 출발할 때는 손님들이 찼었지만, 교외 정거장에서 열차가 멈출 때는 하나씩 둘씩 내렸으며, 런던의 외곽을 등 뒤로 돌렸을 때쯤 해서는 혼자였다. 그래서 일종의 자유의 향연으로 창문을 계속 열거나, 반항의 자극 없이 그것을 계속 닫거나 할 수 있고, 찻간 어느 구석도 차지할 수 있는 즐거운 마음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모기를 발견하고 그와 쫓고 쫓기는 모습을 마치 사람 대 사람과의 행위처럼 묘사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열차를 탔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담뱃불을 붙여 다시 주저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내가 동료 여행자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다가와서 내 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이탈리아의 로마에 있는 바티칸시국으로 면적 0,44㎢에 인구는 약 900명이다. 천지창조를 비롯한 신비로운 그림과 조각상을 보기 위해 바티칸 박물관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의 입장료로 풍부하게 생활하지만, 공개하지 않아서 소득은 모른다. 공식적인 1인당 국민소득 1위는 17만 달러인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있는 리히텐슈타인으로 160㎢의 면적에 3만7천800여 명이 살고 있다. 2위는 모나코, 3위 룩셈부르크로 8위 안에 노르웨이와 호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작은 나라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에 3만1천349달러로 31위를 달성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한 나라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인 국민총소득을 인구수로 나눈 지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선진국 진입 지표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한국이다. 국내 총생산 또한 세계 11위로 우리나라가 선진 대열에 들어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기에 행복도 따라와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국민에게 ‘귀하는 행복하십니까?’라는 설문을 했을 때 과연
세월이 흐르는데 경계가 있던가, 나이를 먹는데 티가 나던가. 가을인가 하였더니 겨울이 깊어가고, 청년 시절인가 하였더니 어느새 중년으로 들어선 것을 느낄 때 사람들은 세월이 무상타 한탄한다. 자연은 입도 벙긋 안 했건만, 인위적으로 해가 떠서 지는 것에 숫자를 매겨 하루라 칭하고, 하루하루를 묶어서 달이라 해 놓고는 날과 달이 빨리 간다며 가슴 태우고 있다. 12개월 중 2월은 애련한 느낌이다. 1월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에 마음이 들뜬다. 새 희망에 부풀어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각오가 대단하다. 하지만 2월은 있는 둥 마는 둥 갈잎 스치는 바람 같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른 달에는 다 있는 30일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해 왜소하고 허약하게 느껴져서 가련하기 그지없다. 2월은 끝자리 새끼돼지 꼴로 다른 달에 밀려있는 기분으로 왔는가 하는 사이에 벌써 지나가서 징검다리 넘는 격이다. 그에 비해 3월은 어떠한가? 천상에 오르는 아지랑이를 떠올리며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2월이 떠나기 무섭게 도사리고 있던 봄이 우렁차게 북을 울리며 등장하지 않던가. 3월은 개선장군인 듯 온갖 환영을 받으며 찬란하게 나타난다. 3월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의 환호를
조선 말기 시대는 혼란스러웠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영국인 비숍(Bishop) 여사가 저술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을 번역한 책은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가슴이 뭉클하다. 비숍은 1894년부터 우리나라를 네 차례 방문하여 11개월에 걸쳐 현지답사와 최상층의 왕실로부터 최하층의 빈민들까지 만나보고 1897년 11월에 이 책을 썼다. 그녀가 본 조선 말의 기록으로 하여 당시 상황을 들여다본다. 조선은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자원은 고갈되지 않은 채로 미개발되어 있다. 성공적인 농업을 위한 능력도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기후는 최상이며, 강우량도 풍부하고 토질도 생산적이다. 구릉과 계곡에는 철, 구리, 납, 금이 있다. 2800㎞의 해안선을 따라 있는 어장은 밝혀지지 않은 부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가난에 견딜 줄 아는 강인하고 공손한 민족이 살고 있고, 거지같은 극빈 계층도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선 국민의 잠재된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중산층에게 그들의 에너지를 쏟을 숙련된 직업이 없다. 충분한 이유로 인해 하층 계급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굶어죽지 않는 것이 더 절실하다. 모든 것이 낮고 가난하고 비천한 수준에 있다. 조선은 특권계급의 착
‘2300년에 코리아가 사라진다.’ 나라가 없어지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옥스퍼드대학교의 데이비드 콜먼 인구문제 교수는 코리아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키면서 한국이 저출산으로 사라지는 나라 1호라고 했다. 2018 세계인구 현황 보고서에 의하면 총인구는 76억3천30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8천300만 명이 증가했으며, 행정자치부는 올해 8월 현재 한국의 인구가 51,812,153명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전 세계 국가 중 뒤에서 세 번째다. 경제협력 개발기구는 1950년 6·25 전쟁 이후 증가세를 보이던 우리나라 인구가 1970년에는 2.21%에 달했다가 1990년은 0.99%, 2005년은 0.21%로 둔화해왔으며, 2017년에는 0.13%에 그쳤는데 2030년에는 -0.25%가 된 후 감소율이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수학적 데이터에 의했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예측이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빈말이라도 282년 후에 나라가 없어진다는 말에는 섬뜩하다 못해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연말연시에는 카드나 연하장을 주고받는 이가 많아 우체국 직원들은 밤샘했다. 그러던 것이 핸드폰과 인터넷으로 인해 지금은 손편지와 우
달이 바뀜은 세월이 흐르는 이치인 줄 알면서도 다음달은 더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구월은 그다운 향기가 가득했다. 더운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오는 달이기에 식물은 결실을 위해 몹시 바빴다. 사람도 생각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수확하려고 잠재된 생체 리듬이 움직였으리라. 단풍이 무르익는 시월은 사색에 잠겨 시간을 빼앗기지만, 구월은 그럴 여념이 없이 바쁘다. 한참 무더위에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 가로수에 나뭇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이 지고’라는 구월이 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벌써 가고 있다. 고추잠자리가 마당을 배회하면 가을은 한껏 깊어가고, 한가위 보름달은 온 누리를 평화롭게 비추어 줄 터이다. 구월이 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전해온다. 곤충의 소리는 종류에 따라 다르다. 한여름, 왕매미 소리는 멀리까지 귀를 따갑게 울려 더위를 안겨준다. 함석지붕에 자갈 구르는 듯하거나,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매미 소리는 삼복더위에 바람도 멈추게 했다. 하지만 여치 소리는 청량감이 있다. 약하면서도 길지 않은 노래는 산소처럼 맑고 시원하다. 여치의 노래는 구월이 왔음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구월 중순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귀뚜라미가 화답한다. 귀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