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다. 넓은 열차 칸에 덩그러니 혼자라면 어떠할까. 덜컹거리는 철로의 마찰음이 예전보다 크게 들리고, 지나가는 들과 건물과 나무들이 외로움으로 다가서서 부르르 몸서리치지 않을지. 아니, 반대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곳에서 오페라 가수처럼 무게를 잡고 노래 부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느 정치 후보자처럼 허세부리며 큰 소리로 연설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허가된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기에. A.G 가드너는 런던에서 미들랜드로 가는 마지막 열차인 완행열차를 탔다. 출발할 때는 손님들이 찼었지만, 교외 정거장에서 열차가 멈출 때는 하나씩 둘씩 내렸으며, 런던의 외곽을 등 뒤로 돌렸을 때쯤 해서는 혼자였다. 그래서 일종의 자유의 향연으로 창문을 계속 열거나, 반항의 자극 없이 그것을 계속 닫거나 할 수 있고, 찻간 어느 구석도 차지할 수 있는 즐거운 마음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 중 누가 먼저 열차를 탔는지 나는 모른다. 나는 담뱃불을 붙여 다시 주저앉아 독서를 시작하였다. 내가 동료 여행자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다가와서 내 코 위에 앉았다. 그는 우리가 모기라고 부르는 날개가 달리고, 거만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곤충 중의
유럽 사람들은 뜰이 없는 집일지라도 여러 가지 꽃을 심은 화분을 창밖에 걸어 놓는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둔 작은 집에도 정성 들여 걸어 놓는다. 본인이 좋아서 취미로 기르기도 하지만, 남을 위한 배려로 그리한다. 그들은 행동 또한 느긋하여 여유롭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부러울 정도로 품위 있는 생활을 한다. 외국 여행하는 그룹 중에 중국과 일본, 한국 여행객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몹시 시끄러우면 중국 여행객이고, 질서를 잘 지키고 조용히 안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일본 여행객이다. 그런데 한국 여행객은 멀리서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 여행객은 유럽의 번화한 거리에서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여행객의 옷차림에 의아해한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국 여행객은 도시와 산을 구별하여 복장을 착용한다. 도시나 평지를 여행할 때는 평상복 차람이지만, 산을 등산할 때는 등산복 차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파리나 로마의 유명 명소나 박물관에서도 등산복 차림이니 그럴 만 하다. 유럽 사람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는 정장 차림이 관례다. 따라서 여행 중이라도 만찬은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런 풍
지난 6월 12일은 세계가 놀라운 이변이었다. 연일 전파의 시선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경이로운 시간이었다. 싱가포르의 카페리 호텔에서 북미 정상 회담이 열리던 날,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도 갈망하던 남북 화해의 빛이 68년 만에 비치는 첫걸음을 내딛는 날이었기에 가슴을 졸였다. 얼마나 갈망하던 회담이던가. 우리는 그동안 한민족끼리 적대시로 고통스러웠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 고위급 회담이 처음 열려 남북한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군사적 침략을 하지 않으며, 상호 교류를 통해 민족의 공동 발전과 단계적 통일을 실현하자고 공식적으로 서명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여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면서 이 합의서의 이행이 다시 추진되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이 역시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다가 획기적으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발표되었다. 북미 관계는 상호 적대 감정이 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