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주민의 삶과 직결되는 중대한 결정이기에 주민 공감대 형성은 정책 정당성의 핵심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정책을 미리 결정한 뒤 주민 반발이 일어나면 뒤늦게 형식적인 주민 공청회를 열어 마치 참여 절차를 거친 것처럼 포장한다. 이는 사실상 사후약방문식 행정행위이며 1960~70년대 관료주의적 행정모형(관치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퇴행적 모습이다. 행정학적으로 이는 ‘관료적 엘리트주의’와 ‘Top-Down 정책 결정 모형’의 전형적인 한계이다. 위에서 정책을 정하고 아래로 하달하는 방식은 주민을 정책의 주체가 아닌 단순한 객체로 취급한다. 이는 현대 행정이 추구하는 ‘참여적 거버넌스(governance)’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주민이 정책 과정에서 단순히 불려와 설명만 듣는 구조는 토큰 주의(tokenism) 수준에 불과하다. 아른스타인(Arnstein)의 시민참여의 사다리에 따르면 이러한 공청회는 ‘시민 권한 위임’이 아니라 단순한 형식적 장식일 뿐이다. 진정한 참여는 정책 형성 단계에서부터 집행과 평가까지 실질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공유하는 것에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표적인 사례가 교도소 유치 갈등이다. 정부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리스 시대와 다른 시대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제네바 선언’을 통해 여러 번 수정돼 왔으며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 졸업생들이 하는 선서로 의료인 윤리강령이기도 하다. 이 윤리강령을 어길 경우 논리적으로 비논리적인 사람들이다. 필자는 의사가 파업을 할 경우 그들의 행위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명시된 여러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각각 논리적으로 지적해본다. 첫째,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의사의 파업은 환자의 이익보다는 의사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위로 인류에 대한 봉사에 반하는 것이다. 둘째, “나는 환자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다.” ▲의사의 파업은 환자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 서비스 제공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들의 건강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셋째, “나는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존중할 것이다.” ▲파업은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과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환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넷째, “나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최고의 존중을 유지할 것이다.” ▲파업으로 인해 환자들의 생명에 직간접적으로 위험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정치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필자는 정치적 통합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피력하고자 한다. 정치의 핵심은 “통합”에 있다. 통합은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를 하는 것이다. ‘더하기’는 유기체적이지 못하고 분절적이다. 정육점에 가서 돼지고기 600g을 샀으나 식구가 먹기에 부족하여 200g 더 달라고 하면 따로 떼어 ‘더해서’ 준다. 따라서 ‘더하기’ 정치는 언제든지 분리해서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누기)’와 비슷한 현상이다.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는 정치 형태가 된다. 비록 정치가 생물이라고 하나 그 생물은 자신이 뛰어노는 바다나 강물을 떠나서 살 수 없기에 정치는 “×(곱하기)” 즉, 유기체적이어야 한다. 유기체(有機體, organism)란 ‘생물에서 세포, 조직, 기관 등을 형성하고 각각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통합되어 체제(organization)를 성립하는 ’이다. 예를 들면 우리 인간은 유기체적이다. 인간이라는 통합된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간, 쓸개, 위가 더하기 처럼 따로 존재하면 바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각 세포가 조직을 이루고 그 조직이 기관이 되고 최종적으로 하나의 통합된 유기체를 형성한다. 각 요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