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폭력이란 무엇인가? 신체에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서나 감정 등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놀림, 욕설, 엄포, 협박 등 단순히 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이버댓글과 휴대폰 메시지도 포함된다. 성경 구절에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칼에 맞아 죽은 이 보다 많다’처럼 나나, 내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언어폭력이 남기는 고통은 신체폭력 못지않게 크며,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치유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몽골 속담에 ‘칼의 상처는 아물어도 말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언어폭력 피해자는 서서히 현실 판단을 잃고 혼란에 빠지게 되며, 수치심이 유발되거나 자발성을 상실하고, 압박감에 자아상실에 이르기도 한다. 미국의 목사인 로버트 풀검은 ‘회초리와 돌멩이는 살을 헤지게 하고 뼈를 뿌러뜨리지만 말은 심장을 찢어놓는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언어폭력 가해자의 입술은 예리한 면도날이며, 혀는 날카로운 송곳이고, 목구멍은 둔탁하나 날선 도끼가 되는 것이다. 특히 노년에 배우자에 대한 언어폭력은 상대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폭거이자 만행이다. 한 가정을 꾸려 가는데 서로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다
동행(同行)의 사전적 의미는 ‘둘 또는 여러 사람이 같이 길을 감, 같이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진정한 동행의 의미는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마음’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갈 길이 아무리 멀다 해도 갈 수 있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들판도 걸을 수 있으며, 위험한 강도 건널 수 있고, 높은 산도 넘을 수 있다.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라면 물에 빠진다 해도 손 내밀어 건져주고, 위험한 상황에서 몸으로 막아주며,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랑하면 나의 길 끝까지 잘 갈 수 있다. 이 세상은 홀로 살기에는 너무 힘든 곳이기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고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동행에는 기쁨이 있고 마음의 위로가 있다.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 누군가와 손잡고 걸어 가야하고 험난한 날들도 서로 손잡고 걸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손을 잡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동행, 급난지붕(急難之朋)이란 어렵고 급할 때 함께할 친구, 동행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부부가 노년에 금실 좋게 함께 동행, 화락(和樂)하게 해로(偕老)할 수 있다면 세상 어느 누구를 부러워하랴! 동행(同行)이
분노란 무엇인가? 분노란 분개하여 성을 냄, 노기(怒氣)라는 말이며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거나, 손해를 강요당하거나, 또는 위협을 당하거나 등 여러 불합리한 상황에서 생길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분노를 품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가톨릭에서는 7대 죄악중 하나로 7대 주 선(善)의 인내와 반대 개념으로 보고, 불가에서는 악행의 근본으로 제거해야 한다 하며, 유가에서는 칠정(七情)의 하나인 노(怒)로써 분노는 참아야 한다고 한다. 미국작가인 셰리 스콧은 ‘분노는 당신을 더 하찮게 만드는 반면, 용서는 당신을 예전보다 더 뛰어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분노는 어떻게 표출 되는가? 분노의 표출은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첫째, 책상이나 벽을 주먹으로 치거나, 온갖 집기들을 걷어차는 등 신체행위로 표출하며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 이어 지기도 한다. 둘째, 목소리가 커지고 흥분하는 등 감정이 격앙되기도 한다. 셋째, 두통, 화병, 과민성 대장증후군, 고혈압, 뇌졸중, 심장질환 등 신체의 고통으로 전이되기도 한다. 넷째, 어떤 사
‘졸혼’이란 ‘혼인 관계를 졸업하다’는 의미로 이혼하지 않고 법적으로 부부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는 공간과 각자의 생활, 취미 등을 간섭하지 않는 형태이다. 졸혼이라는 말은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彬山 由美子)가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신조어(新造語)이다. 졸혼을 결정한 부부들은 한집에 함께 살면서 서로 간섭만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따로 살면서 가족 행사 등에서 만난다. 문학평론가 김성수는 졸혼에 대해 ‘가정이 깨어진대도 법적 정리를 못해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졸혼의 실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졸혼의 형태는 원만한 사이의 부부라도 ‘자기 주도적 삶’을 영위하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위기의 부부들이 이혼의 대안으로 졸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졸혼: 결혼관계의 재해석’의 저자인 강희남은 ‘졸혼이 황혼이혼의 신드롬을 진정 시켜주는 대안이 될 것이며 혼인과 이혼사이 졸혼이 존재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낡은 결혼을 졸업할 시간, 졸혼 시대야 말로 나와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관계혁명이 될 수도 있다. ‘졸혼’은 100세 수명시대 삶 중에서 생애 후반기, 즉 평생의 본업에서 손을 놓거나 정년퇴직하고 난
베풂이란 ‘남에게 돈을 주거나 일을 도와줘서 혜택을 받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베풂’은 ‘배려와 용서’도 포함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레바논의 대표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당신이 가진 것을 주는 것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베풂이다’라고 말했고, 미국의 실존 인물인 ‘우체부 프레드’의 저자인 마크 샌번은 ‘베풂은 기술이다. 그러므로 연습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는다면 당신이 가진 물질적·정신적 소유물은 아무 소용없다’고 말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는 돈과 덕(德)의 두 가지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그것은 부윤옥 덕윤신(富潤屋 德潤身)인데 부윤옥이란 ‘돈을 많이 벌면 집안을 윤택하게 한다’는 말이며, 덕윤신이란 ‘덕을 많이 베풀면 인생이 윤택하다’는 말이다. 명리학자 조용헌 교수는 팔자(八字)고치는 방법 다섯 가지 ‘첫째 적선(積善: 남을 돕는 것), 둘째 명상, 셋째 명당 잡는 일, 넷째 독서, 다섯째는 지명(知名: 운명을 아는 일)’ 중 적선, 즉 베풂을 으뜸으로 꼽았다. 불가(佛家)에서도 ‘베풂’이나 ‘나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나 존재를 아끼기 위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정의한다. 사랑은 긍정적 감정뿐만 아니라 그리움이나 안타까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까지도 포함한다. 우정의 요소에 열정과 돌봄이 포함될 때 사랑이 된다. 사랑이 우정으로 바뀌는 경우는 드물어도 우정이 사랑으로 바뀔 수는 있다. 신뢰에 바탕을 둔 안정적 애착이 사랑의 근간이 된다. 사랑의 삼각형 이론에서 친밀감, 열정 및 개입이 충만하게 균형을 이룬 상태가 완전한 사랑이다. 사랑의 종류에는 어떤 것 들이 있는가?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이성간의 사랑만을 생각하지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주로 이성간의 사랑을 뜻하며 보통명사로 열정적인‘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eros)가 있다. 둘째, 종교적인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이나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실현되는 이타적(利他的)사랑 아가페(agape)가 있다. 셋째,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친구나 동료의 사랑 필리아(philia)가 있다. 넷째, 오랜 우정과 같은 사랑이나 부모자식 간, 혈육 간의 사랑인 스트로게(storge)가 있다. 다섯째, 카사노바처럼 유희하듯 즐기는 사랑, 단
우정이란 무엇인가? 친구, 벗은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하게 사귄 사람, 뜻을 같이하는 사람,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로 수용, 신뢰, 존중의 바탕위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도움을 교환하는 동반자이며, 우정이란 친구사이의 가깝고 친한 정(情)이란 의미로 건전한 사랑(가족적 의미)의 일종 이다. 문학평론가 고미숙은 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가 사랑을 너무 강조해서 우정이 폄하 되고 있다. 사랑의 기본은 독점과 배타적 소유로 집착을 낳기 쉽고 금전과 긴밀히 연결된다. 이런 관계에만 몰입하면 존재가 작아진다. 또한 가족관계는 애증과 부채감이 기본이라 수평적 대화가 어렵다. 사랑과 가족을 초월해 우리를 가장 성장 시키는 것은 도반(道伴 : 함께 도를 닦는 벗) 즉, 우정이다.’ 사랑과 우정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랑은 느낌이고, 우정은 이해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만, 우정은 주고 받는 것이다. 사랑은 술을 찾게 하는 것이고, 우정은 같이 마셔 주는 것이다. 사랑은 같이 걸어가는 것을 꿈꾸는 것이지만, 우정은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사랑은 오직 한사람과 같이 만들어 가는 것이고, 우정은 여러 사람과도 같이 할 수 있다. 사랑은 오랜 기
동서지간이란 동서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동서란 시아주버니나 시동생의 아내, 처형이나 처제의 남편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에서 여성은 남편의 남자 동기(同氣) 배우자들, 남성은 아내의 여자 동기 배우자들을 부르는 친족관계의 호칭이다. 동서는 다른 성(姓)의 남남이면서도 배우자들의 형제자매 관계로 맺어진 사이이다. 무슨 일을 자기가 하고 싶어 하면서도 은근히 남에게 먼저 권하는 경우 ‘동서보고 춤추란다.’는 속담이 있다. 더러는 동서 간에 시새움이나 불화가 따르기도 한다. 동서지간인 사람들은 한 가족 안으로 외부에서 들어온 동성(同姓)의 낮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가족들에 대한 같은 이질감과 함께 서로에 대해 끈끈한 동질감을 가질 이유와 조건이 충분하다. 한 가족에 들어온 같은 외부인 으로서 그 가족의 일원으로 녹아져야 하는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뜻을 같이하고 생각을 함께하는 동지(同志)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동서지간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의 처지에 대해 깊이 공감해 줄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일원인 혈족간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과 처지가 저절로 이해될 것 같음에도 동서간의 문제
음악 감상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소리의 높낮이·장단·강약 등의 특성을 소재로 하여 목소리나 악기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예술이며, 감상이란 음악작품의 형식이나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하는 주체적이고 능동적 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감상이란 음악을 지적(知的)으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물론 인간은 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감응할 수 있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음악 감상에는 두뇌가 필요 없다.’라는 말을 했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 없이, 또는 참된 감상 없이 음악을 즐기거나 기쁨을 얻는 다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최대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음악을 알아야 하는데, 이런 지적 태도가 극도의 즐거움을 가져온다.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 장소를 파고든다.’라고 철학자 플라톤은 말했고,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음악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위대한 가능성을 인간에게 보이는 것이다.’라고 예찬 했다. 음악 감상이 우리에게 주는 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뇌가 좋아하는 음악은 도파민이라는 ‘기분 좋음’신경물질을 방출하여 심리적으로 스트레스가 낮아지거나 불안을 해소하여 기분을 좋게 해 더욱 행복감을 느끼게 하며 면역체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의 음과 소음(騷音 : 진동수나 그 변화가 불규칙한 음)을 소재로 하여 박자, 선율, 화성(和聲 : 일정한 법칙에 따른 화음의 연결), 음색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해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음악은 선사시대부터 인간의 주변에 있어 왔으며 감사, 생각, 감정 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음악이 오랫동안 인류역사와 함께 해온 이유는 음악을 듣거나,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어떤 느낌이나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 부르기의 이점은 무엇인가? 노래 부르기는 음악 감상, 악기 연주, 음악적 동작과 함께 음악치료에서 일어나는 음악활동 중 한 부분으로 음악치료에서의 자발적인 음악적 표현 중 가장 우선적으로 사용되는 기법이다. 성악이나 발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노래 부르기 활동과 그에 수반되는 음악적 발성을 경험하는 것은 에너지 활성화, 개인 혹은 집단에서의 느낌 창조 등에서 유효한 수단이 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연구팀의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노래를 부르면 신체의 저항력이 증대되고 명상과 걷기 운동과 같이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가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