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이 시중에 떠돌고 있다. 어쩌면 꾸며낸 예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돋는다. 지금 우리의 실정에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인사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일본인의 시각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거리낌이 없다. 당당하기까지 하다. 이때다 싶은 모습이다. 그동안 숨겨뒀던 발톱을 드러내 맞서려는 태도다. 마치, 일본수상 아베와 보조를 맞추려 드는 모양새다. 요즘 ‘반일 종족주의’가 장안의 화제다. 우리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고 있다. 여섯 명의 저자들은 일제의 수탈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자본으로 근대화를 이뤘을 뿐 오히려 일본은 이득을 얻은 것이 없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다.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자료들을 동원해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대단한 연구 성과처럼 여긴다. 학문을 방패 삼아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지껄이고 있다. 무슨 자신감으로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그야말로 토착왜구(자발적 친일부역자)의 전형을 보는 것 같
‘갑오세(甲午勢) 가보세 / 을미(乙未)적 을미적거리다 / 병신(丙申)이 되면, 못 가리’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의 발발 전후로, 당시 농민들이 불렀던 민요이다. 또 지난달에 종영된 드라마 ‘녹두꽃’에서 일본군 총에 맞은 등장인물이 쓰러져 가며 애절하게 불러, 널리 알려지게 된 노래다. 여운이 많이 남아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는 노랫말이다. 당시 만연한 부패를 척결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하자는 다그침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시각이 있다. 일찌감치 실패를 예감한 좌절감의 표현이라는 해석이다. 드라마 ‘녹두꽃’은 48부작으로 방영됐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 근대사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대사건이며 근대화의 시원이다. 그런데도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 반갑고 의미 있는 드라마 방영이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백이현은 양반의 부당한 처사에 반발해 친일파로 돌아선다. 바로 그 스토리는 실상과 전혀 다르다. 자칫 친일행위의 면죄부로 작용될까 심히 염려돼 언급하는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군 앞잡이들은 자발적이었다. 일본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었다. 드라마의 백이현처럼 내몰린 자들이 결코 아니다. 오직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