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춘 인천시장이 21일 시청 대접견실에서 코로나19 대응 관련 긴급 온라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광역단체장 오늘의 일정(12월22일) <인천시장> ▲ 오후 2시 소래포구 어시장 재개장식 ▲ 오후 3시 제3연륙교 건설공사 착공식 [ 경기신문 = 이인수 기자 ]
인천지역 기업 10곳 중 6곳이 산업용지 부족으로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상공회의소는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용지 수요 및 정책 관련 의견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업체의 61.3%가 ‘현재 산업용지가 부족하며 향후에도 부족이 우려된다’고 답했다고 21일 밝혔다. 조사 참여기업 중 ‘산업용지 추가매입이나 임대 계획이 있다’는 답변은 26.5%에 불과했고, 절반에 가까운 48.6%는 ‘산업용지 확장 계획을 세우지 못하며, 현재 위치에서 설비 등 공장 확장을 고려 중’이라고 응답, 많은 기업들이 산업용지 부족으로 업종전환과 생산활동 혁신을 통한 코로나 극복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역 기업이 선호하는 산업용지 형태로는 안정적인 생산 활동 및 확장이 가능한 ‘산업단지’가 48.6%로 가장 많았고 ‘일반공업지역’(18.8%), ‘항만배후단지’(7.6%) 순이었다. 또 업종 및 시설 제약이 많은 ‘지식산업센터’(16.7%)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산업용지 확장 및 이전의 경우 지역 기업들이 가장 가고 싶은 지역으로는 남동산단이 있는 남동구가 78.3점으로 우선순위별 가중치 점수에 따라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송도지식정보산업단지를
인천시는 ‘인천 문학산성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사업을 완료하고 문학산성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청사진 마련에 본격 돌입한다고 21일 밝혔다. 용역은 인천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문학산성의 체계적인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올해 3월 착수됐으며 10개월 동안 연구‧조사와 학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과 함께 중간보고회(자문회의),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반영, 마무리됐다. 용역사인 (재)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최종규)은 그간의 문학산성 관련 문헌조사와 지표조사, 시‧발굴조사 결과 등을 정리하는 한편 북쪽과 동쪽 성벽 유실구간 원지형 추정, 동문 및 수리봉 왜성지(倭城址), 우물, 봉수대, 안관당 등 산성 내 시설의 원형을 토대로 ‘인천 문학산성 종합정비계획’을 구체화했다. 산성 정비는 일괄적이고 무리한 복원보다는 구간별 성곽 현황 및 특성에 따라 성벽 유지관리, 잔존성벽 보존, 복원정비, 형상화, 가상복원 등의 방식을 적용해 보존(보수)․복원한 뒤 경관 식생 정비 및 전망대, 안내판, 방재시설 등의 내부 시설물을 정비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는 또 보존·복원을 위한 정비와 함께 역사적 가치를 살리며 시민공간으로
광역단체장 오늘의 일정(12월21일) <인천시장> ▲ 오전 10시30분 영상메시지 촬영 ▲ 오전 11시 인천시사회서비스원 개원 기념식 ▲ 오후 2시 2020 인천미래정책포럼 [ 경기신문 / 인천 = 이인수 기자 ]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외상전담 김민준 간호사와 윤용철 교수팀은 최근 개최된 ‘제7회 외상술기교육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윤 교수팀은 ‘골결손을 동반한 만성골수염에서 금속판을 이용한 골이동술의 치료효과’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난치성 골감염 치료 및 골결손 재건 결과를 향상시키는 새로운 방법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김 간호사는 미국응급간호사학회로부터 ‘TNCC’를 이수해 외상술기교육연구학회 강사, 119 구급대원 및 해양경찰을 대상으로 외상 환자 현장 처치 술기 교육 전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윤 교수는 정형외과 외상 및 골절 치료 전문의로서 대한정형외과학회지 심사위원, 대한외상학회 수련 위원, 질병관리본부 자문위원 및 보건의료연구원 연구기획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골절외상연구학회 학술재단 교수로서 진료 및 연구,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 경기신문 / 인천 = 이재민 기자 ]
인천교통공사는 17일 광고대행사 대표들로부터 ‘착한 임대료 운동’ 실시에 대한 감사패를 전달 받았다고 밝혔다. 감사패는 공사와 상생협력을 하고 있는 9개 광고대행사 대표들이 임대료 감면에 따른 코로나 위기 극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광고대행사 대표들은 쌀 130포대를 관내 취약계층에 전달했다. 공사는 올해 초 임대·광고 업체들을 위해 ‘착한 임대료 운동’을 실시, 임대료를 감면(상반기 35%, 하반기 50%)함으로써 상생협력의 가치를 실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 정희윤 공사 사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소상공인 모두가 어려운 상황임에도 따뜻한 마음을 전달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인천교통공사는 앞으로도 우리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상생활동을 적극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이인수 기자 ]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인 윤관석(민주·인천남동을) 의원이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으로부터 ‘2020 국정감사 국리민복상(우수위원장상)’ 수상의원으로 선정됐다. 17일 윤관석 의원실에 따르면 27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은 각 분야 전문가가 포함된 1000여 명의 모니터단이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를 평가, 상임위별 국정감사 우수의원을 선정한다. 윤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으로서 여야 간 긴장을 낳을 수 있는 예민한 주제들이 부딪치는 가운데 위원 간 상호존중으로 고성과 정회 없이 국감을 매끄럽게 이어가 ‘정쟁국감’ 대신 ‘정책국감’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상임위원장임에도 국정감사 진행에만 매몰되지 않고 국난극복 국감, 민생·평화 국감, 미래전환 국감을 위해 짧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핵심 의제에 대해 정부에 직접 언급하고 지적, 주문하거나 언론을 통해 문제점을 공공에 알렸다. 윤 의원은 특히 민생과 관련, ▲주택연금 아파트 편중 현상에 대한 지적 및 개선방안 철저 검토 ▲카드포인트가 연간 1000억 이상 대량 소멸되는 상황에 대한 지적 및 금융소비자 친화적 대책 필요성 검토 ▲중소기업은행에 담보력이나 재무상태가 미약한 중소
역사를 흔히 거울에 비유하는데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과거는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말이 있듯이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들추어 보며 미래를 조망하는 것이 역사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장봉도는 과거 장봉도의 역사적 사실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고, 그 본래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발전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봉도는 어떤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까? 지난 회에서 장봉도의 편리한 접근성과 힐링의 방법을 소개했으니 이번 회와 같이 보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체크 Point 1. 장봉1리 일명 옹암(甕岩, 독바위)의 말문고개와 마성(馬城) 장봉1리, 일명 옹암(독바위). 장봉선착장에서 하선해 장봉도를 관통하는 유일한 간선도로, 이 도로는 비스듬한 경사로인데 그 정점의 고개를 ‘말문고개’라 부른다. 즉 말의 목장 출입을 관리하던 문이 있었던 고개라는 뜻이며, 조선시대 당시 말을 기르던 장봉목장터의 출입구가 있던 곳이다. 안내문에 의하면 말목장은 “1454년쯤부터 1895년쯤까지 있었으며, 처음에는 소를 방목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말을 키웠다”고 한다. 이곳은 약 450년 간 조선이 운영하던 국영목장이 있었던 곳이며,
문학작품 속에서 청관을 묘사한 내용을 보면 하나같이 칙칙하고 밝은 면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중국인들의 전통 의식주에서 오는 소치가 많겠지만 눈으로 보는 사실만을 묘사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인적이 드물고, 한적하고 우중충한 청관, 거무튀튀한 거리’(청관, 학산문학사, 1982). 인천의 소설가 심창화의 단편집에 나오는 ‘청관’의 도입부 희곡의 지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중국인 거리는 연기가 서린 듯 눅눅한 어둠에 잠겨들고 있었다.’ 인천에 잠시 거주했던 소설가 오정희(1947~)의 ‘중국인 거리’에 묘사된 청관의 모습이다. ‘남자들은 돼지꼬리처럼 땋아 내린 변발(辮髮)을 했고, 부녀자는 걸을 때면 뒤뚱뒤뚱 거리는 졸여 붙인 전족을 하고 남녀 간에 칙칙하고 더러운 검정색 아니면 청색무명옷을 입고 있었으니 깔볼만한 몰골이기도 했다....(중략)...빈곤하니 불결한 살림...’ 의학자 겸 향토사학자 신태범 박사의 ‘개항 후의 인천 풍경’에 담긴 중국인의 모습이다. 개항 2년 후 전권대사 원세개를 따라 들어온 청국의 큰 상인들 점포가 즐비하게 들어섰을 당시의 우리는 그들을 대국(大國) 사람이라고 높여 부른 적도 있었지만 1887년을 기점으로 일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