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겨울이니 있을 법한 매서운 추위와 폭설, 불어대는 바람이 엎친데 더해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쳐 그야말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하나 둘 두꺼운 옷을 벗고 봄 마중에 나설 때가 되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하지만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봄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겠지만 누구에게나 봄이 똑같이 찾아오진 않나보다. 이리저리 휘둘러보아도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데 괜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가하며 에둘러 봐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저 날씨나 코로나, 시끄러운 세상 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곧 다가올 것이 분명한 봄 마중과 꽃소식에도 마음 편치 않음은 무슨 까닭일까? 사계는 순리대로 지나치는 법이지만 그 따르는 몸과 마음이 곤해 있음을 여실히 느낀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교회력 절기인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다. 사순절은 돌아보는 시간이니, 그동안 내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로 어떤 마음으로 살아 왔는지를 비롯해 많은 것들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남양주 녹촌리 마석가구공단에서 30년의 시간을 한센인,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함께 살아오면서 온 몸으로
“앗쌀라무알라이쿰!” 이 말은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라는 뜻으로 흔히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즉 무슬림 간에 인사말로 사용된다. 간단히 "쌀람(salaam)"으로 줄여 말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최소 20만 명을 넘는 무슬림들이 한국에 있다지만, 한국인 무슬림도 포함된 이 수치는 아직은 한국 전체 인구의 0.4%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현재 이슬람교를 믿는 종교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하는 19억 명에 달하고, 2100년에는 세계 제1의 종교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으니, 급성장하고 있는 이슬람을 보면서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 이슬람에 대해 경계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산하 “종교간대화위원회”의 위원장 임기를 마쳤다. 부족한 사람이 무거운 직을 맡아 4년의 임기 동안 나름대로 종교 간에 서로 소통하고 상생하기 위한 노력의 첨병 역할을 하고자 했다.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이 함께 다른 종교에 찾아가 그 곳의 수행자들을 만나 듣고 보고 느끼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는 등 노력했지만 되돌아보니 아직 신통치 않았던 듯하다. 세계 3대 보편종교인 이슬람교는 유대교, 그리
2020년이 저물어간다. ‘저물다’라는 말의 뜻인 ‘다 지나서 끝나는 상태가 되다’라는 말 뜻 그대로, 우리를 아프고 곤하고 힘들게 했던 ‘코로나’를 비롯한 또 다른 불미스러운 일들도 저물었으면 좋겠다. 연초에는 그랬다. ‘한 해 동안 잘해야겠다!’고 힘주어 다짐했다. 연중 계획표를 펼쳐놓고 목표를 정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일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는 해에 되돌아보니 많이 못 미치고 덜한 것투성이라 신음소리가 절로 나온다. 못 미치고 덜한 건 대체 무슨 까닭이었을까?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대고 탓하면 당장은 속이 편할지 모르지만, 진짜 이런 일 때문에 한 해가 더디고 버벅대고, 문제였다면 백퍼센트 동의할 수 있을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첫째는 앞만 보고 달려갔기 때문이다. 뒤도 돌아보고 좌우사방도 살피고 잠시 쉬기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나는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우리는 왜 그럴까?’ 이렇게 듬성듬성이라도 되짚어봤다면 이렇게 후회가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그리 앞서지도 못했다. 둘째는 아닌 척 하면서 제 것을 많이 챙겼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뭐가 있는지도 다 알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성큼 겨울이 다시 다가왔다. 가까이는 산책길의 가로수부터 멀리로는 하늘에 닿을 듯 한 천마산 등성이 까지 여러 색깔로 물들어 계절을 알린다.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할 만큼 바람도 서늘하다. 이런 바람이 아직 남아 불던 지난겨울의 끄트머리에 ‘코로나‘라는 두려운 이름이 들려오기 시작했었다. 처음엔 온갖 질병이 난무하는 세상이라 그러려니 했다. 다른 전염병처럼 한바탕 거친 바람이 불면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마스크 잘 끼고 손 잘 씻고 빨리 병원에 가다보면 금세 끝날 거라 믿었지만 웬걸, 아니다. 어느새 10개월이 지나고 또 다시 3차 대 유행이 시작되려나보다. 코로나가 지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과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의 잘못인가?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인가? 고민하면서 마스크를 끼고 거리두기를 지키며 하고 싶은 일들을 참으면서 많은 시간을 지내왔다. 이러는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미국의 대통령이 확진자가 되고, 알만한 스포츠 스타들도 예외가 없다. 일터는 물론 학교와 병원, 극장 등 생활의 모든 곳이 다 변했다. 마스크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고, 커피한잔을 마시려고 해도 내가 다녀갔다는 행적을 꼭 남겨야 한다. 사람들
지금까지 나이 먹도록 잘 알지도 못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것 때문에 뼈저리게 아파하고 느끼며 살아온 것이 있으니, 바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것이다. 정말 사람 속을 아는 일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고, 바닷가의 모래알 수를 세어내는 일과도 같다. 좀 서로 알고 통하고 하나 되고 이런 것도 많이 있을 법 한데 아무리봐도 거칠고 낯설기만하다. 매일 아침 신문이나 TV뉴스를 보면 복잡하고 황당한 일들에 넌덜머리가 난다. 인간이 서로를 진정으로 알고 꾸밈없이 소통하는 일은 “꿈”일거다. 여태껏 이주자들을 돕는 일을 해오면서 수많은 ‘다름’을 만났다. 기본적으로 나라와 언어, 피부색 같은 외적인 요소들이 다르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단순한 문화를 넘어 생각이나 삶에 대한 표현과 자세들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래서 ‘다문화’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본래 상호 존중의 뜻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다른 문화도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표현이지만, 상호 존중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익히지 못한 채 쓰이면, 부정적 의미를 띄기도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모르거나 낯선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두
예수 믿는 공동체인 성공회에서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다 보니, 헛갈리고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남들은 성직자라고 하면 별 걱정없이 기도만 하는 사람인 줄 알지 모르지만, 실은 오지랖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성직자인지라 ‘천국소망’을 으뜸 목표로 살아왔는데 요사이는 아무래도 천국 못갈 것 같아, 이래저래 걱정이 더 늘어 간다. 큰일이다. 천국 못갈 것 같은 첫 번째 이유는 요사이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일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다. 하느님이 주신 말씀에 따라 원수를 사랑의 대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미워하고 멀리하려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참 신통치 않은 모습이다. 천국 못갈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3년 째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산하에 있는 ‘이웃종교간대화위원회’와 관련이 깊다. 그동안 나름 종교 간에 서로 소통하고 상생하기 위한 노력의 첨병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엔 아직 신통치 않은 듯하다. 따지고 보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우리는 다 자기가 최고이고 잘난 맛에 떠들며 어지간하면 소통하지 않는, 그야말로 ‘불통의 지병’을 갖고 있다. 세계 역사를 돌이켜봐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찾을 수 없다. 걱정스럽고 힘든 부분이다. 참 재미있고 견딜 수 없는 가벼움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가 그립다. 아마도 정겨움이, 인간답게 사는 일정한 모습들이 그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아프고, 힘들게 했고, 우리의 귀한 일상을 앗아가 버렸다. 이것에 아주 무겁게 동의한다. 이전, 이후를 따져야 하는 것 중에 시급하고 꼭 필요한 것은 이 땅의 이주자들 문제이다. 잘 먹고 잘 살게 된 우리 사회에 가난하고 힘겨운 이주민들이 꿈을 안고 찾아든지 수십년이 지났다. 지금은 250만 명 시대라고들 한다. 이전에 한국사회는 이주민들을 ‘막’ 대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코리안 드림은 그야말로 대유행했고, 이주자들은 건강과 젊음을 담보로 한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산업연수생 제도, 고용허가제 등이 편제되고 대응했지만, 거의 모두 기만적 임시방편의 허점이 많은 제도들이었다. 그리고 미등록노동자들의 갖가지 고충들이 한국사회에 부각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람을 중요시 한다는 이 정부가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내 놓은 정책은 ‘방치’였다. 코로나에 위기에서도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언론이나 SNS에 넘치는 수많은 글들을 보면 경이롭다. 좀 더 신중하게 집필여부를 결정했어야 하는데, 이제 와서 이런 저런 통밥을 굴리느라 어지럽다. 아무튼 몇 번이라도 조심스럽게, 가능하면 모두를 행복하게 해볼 요량이다. 맹자, 순자의 성선설 성악설을 운운할 실력은 안 된다. 다만 인생 60이 넘으니, 앞만 보고 착하게 사는 게 답이라는 생각을 요사이 더 많이, 엄청나게 하고 산다. 그저 사람들끼리 만나고 부대끼며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 이걸 피하고 혼자 살수는 없지 않은가? 자초지종을 떠나서 많이 화도 나고 분노와 불쾌감까지 일지만, 그럴 때마다 어깃장을 놓고 성질을 부리면 인생이 좀 초라해 질 것이다. 작년에 새 자동차를 출고해서 애지중지 모시고 다니며 떨어지는 낙엽에도 신경을 썼는데, 얼마가지 못해 접촉사고를 냈다. 사고경위가 애매모호한 반면, 사고처리는 깨끗하고 만족스러웠다. 가해·피해자 입장을 떠나서 제3자가 “신부님, 힘내세요!” 하면서 차량수리를 모두 거저 해주었다. 그 후 얼마동안은 신바람이 났다. ‘그래, 인생 이런 거구나. 잘 살아야해, 착하게 살아야 해. 베푸는 사람, 기버(Giver)가 되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