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지방 도시에 있어서 도심 활성화에 대한 화두로 도시재생에 대한 논의들이 지속이 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도시 활성화에 대한 화두로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을 지방정부에서 시도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창조도시로서 이미지를 발신하고 도시의 침체를 탈피하면서 그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조화 속에 도시를 성장시켰던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장 우선 목표였기에 도시의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지면서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그래서 도시의 균형을 통한 발전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혜택을 받는 곳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으로 양극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최근 들어 도시 발전에 중심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도심에 대한 재생사업의 일환으로서 토목, 건축과 같은 물적 정비에서 벗어나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한 구도심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을 지속해왔다. 그동안 공간 콘텐츠 프로듀서로서 주목했던 문화 콘텐츠를 통한 도심 재생에 주력했던 곳으로는 순천시와 대구광역시 중구를 뽑을 수 있다. 순천시는 천혜의 순천만 갈대와 갯벌로 이루어
프랑스 경제사회학자 ‘기 소르망’은 “문화 없인 훌륭한 국가도 발전도 불가하다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문화가 국가 경제에 기여 하는 효과가 지대하다는 뜻이다. 국가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이제는 대량생산을 통한 무역의 경쟁이 아니라 영화인, 가수, 작가 미술가들과 같은 예술창작가들이며 이들은 그 어떤 국가의 지도자보다 훌륭하게 한 국가의 대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2004년부터 ‘겨울연가’로 일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는 물론 심지어 대형서점에 한류스타 코너가 별도로 운영될 정도로 상상 이상의 열풍을 가져 왔다. 지금 동남아를 비롯한 유럽, 미주 등에 있어서 한류 문화 콘텐츠 산업의 수출은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 문화 콘텐츠의 경영 과목 수업을 하면서 중국 7명, 우즈베키스탄 1명 등 8명 유학생에게 설문지를 받아본 결과 거의 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만큼 한류의 국가 이미지는 실로 지대함을 피부로 느꼈다. 콘텐츠 기획서 발표를 통해 본 그들의 한류 문화 콘텐츠에 대한 교양과 지식은 놀라울 정도였다. 이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전주의 거리를 걷다보면, 이런 시 홍보 문구가 눈에 띤다. “파리가 유럽의 문화심장터라면, 전주는 아시아 문화심장터입니다.” 한옥마을 인근에는 산동네인 자만동 ‘벽화마을’이 있고, 서학동 예술마을인 갤러리 거리가 있다. 이러한 문화 예술과 연계해서 한옥마을과 더불어 원도심 활성화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원도심 지역 재생 이미지는 전주가 문화예술 콘텐츠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속발전 가능한 ‘선택과 집중’이 중요할 것이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은 소비구조의 변화와 시장 유동인구의 감소 등 여러 요인들로 시장 침체화가 가속화되자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문전성시)’에 선정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 곳에서 여러 가지 신나는 골목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창의적인 공간에서 청년들은 발랄한 청년 상인들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또한 남부시장부터 객리단길(객사, 전주 웨리단길, 웨딩거리, 영화의 거리)까지 그 활성화가 이어진다면 전주시의 도시재생에 있어서 그 활성화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옥마을에서
추운 겨울에는 짬뽕 한 그릇이면 몸도 마음도 풀린다. 지금은 동네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중국음식점이지만, 한때 동네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말 그대로의 ‘중화요리점’이 많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왜 동시에 사라졌는지를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재산권을 비롯해 외국인으로서의 정주조건들이 까다로워지면서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중국음식점에 관한 기억 하나가 있다. 중학생 시절 매년 여름방학 때가 되면 큰 아버지 댁에 머물렀다. 오일장이 서면 십리 먼 길을 걸어서 오일장 구경을 가곤했다. 재래시장과 같이 운영되던 오일장 근처에는 그곳에 유일한 화교가 운영하던 중화요리점이 있었다. 그곳은 탕수육이 유명했고 지금도 전국에서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당시 근처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큰 집 형님 덕분에 방학에 내려온 사촌동생이 이곳에서 중화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대부분이 자장면, 우동, 짬뽕이 다였지만 가끔 야키 만두나 탕수육도 사 주셨는데 중년이 된 지금도 그 특별한 맛을 잊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어 그 중화요리점 찾았다. 당시 주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