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시상작의 표절시비에 관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올해 1월 양영희 감독이 자신이 연출한 일본 NHK 다큐멘터리 ‘흔들리는 마음’(1996)의 9분40초를 홍형숙 감독의 ‘본명선언’(1998)에서 무단 도용했다는 문제제기를 한지 6개월 만이다. 지난 7월 24일 부산영화제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입장문은 크게 네 가지 내용이다. 1998년 당시 ‘본명선언’이 부산영화제 운파상을 수상할 당시의 경과와 홍형숙 감독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인정, 수상 철회 여부, 양영희 감독에 대한 사과, 그리고 지난 2월 7일 열린 비교상영회(주최 김명화 양영희)에서 홍형숙 감독의 동의 없이 ‘본명선언’을 제공한 것에 대한 사과 등이다. ‘본명선언’ 논란은 지난 1998년, 부산영화제의 기록영화 부문인 운파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재일교포 다큐멘타리 감독 양영희가 ‘본명선언’은 주제가 자신이 만든 ‘흔들리는 마음’과 유사하며, 장면 중 일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하면서 불거진 문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용을 넘어 ‘표절’ 문제로 번졌다. 두 작품을 살펴 본 모 언론사에서도 ‘표절’로 결론짓고, 영화제 측의 시상
텔레비전 화면에서 송해를 볼 때마다 아련한 생각이 든다. 너무 오래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란 제목으로 1972년에 시작했다가 1977년 4월까지 진행했다. 1980년에 ‘전국노래자랑’으로 재탄생한 뒤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4월까지 5년 11개월 동안 맡다가 몇 개월 다른 사람이 맡던 것을 1994년 10월부터 다시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뒤에 맡은 기간 만도 26년, 그 전까지 합치면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얼마전 그만 둔 강석, 김혜영은 각각 36년, 33년 동안 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진행자의 재능 여부를 떠나서 특정인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는 ‘가요무대’가 있다. 1985년 11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사회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고 있다. 2대째인 1985년 11월부터 2003년 6월을 진행한 뒤 다시 2010년부터 4대째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4대만 본다면 10년, 2대 9년까지 더하면 19년을 같은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해당 프로그램의 상징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바뀌면서도 장수하는 경우도 있다. ‘밤을 잊은 그대에
5월은 신규 예술원 회원을 발표하는 달이다. 몇몇 사람은 환호하겠지만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은 한숨을 지을 것이다. 예술계 인사들의 예술원 회원을 향한 열망은 뜨거울 정도다. 평생을 헌신해온 자신의 활동에 대해 공인받는다는 자부심이 있고, 얼마간의 수당도 받는다. 국가가 인정하고 후원하는 국립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과 같다고 여길 정도다. 예술가 여정의 마지막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예술원회원 선정기준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이르면 대답은 복잡하다, ‘예술가’의 범위가 넓어 졌는데도 여전히 명가 중심으로 선발이 이루어지는데다 그나마도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54년에 설립된 예술원은 문학(정원 28명/현원 25명), 미술(정원 25명/현원 18명), 음악(정원 22명/현원 21명), 연극·영화·무용(정원 25명/현원 25명) 등 4개 분과로 구성하고 있으며 정원은 100명이다. 당초에는 25명 정원으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는 동안 분야별 활동 인원이 많아진 것을 반영하려는 듯 50명(1966), 65명(1981) 75명(1988), 100명(1996)으로 늘어났다. 6명의 회원을 배당받고 있는 영화
한국배우 심은경이 일본 아카데미영화상의 최우수 여배우 상을 받았다. ‘신문기자’라는 영화에서 정부 권력의 비리를 추적하는 기자 역할을 통해서다. ‘신문기자’는 일본영화다. 심은경이 한국인 배우지만, 일본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유력한 영화상 중의 하나에서 주연 여배우 상을 받은 것이다. 일본 영화계가 심은경에게 최우수 여배우 상을 수여한 것은 파격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일본인들에게 파격이 아니라 우리가 받는 충격이다. 일본영화계는 심은경을 ‘한국배우’라고 특별하게 대우한 것 같지도 않고, 한국배우라고 해서 일본영화에 출연한 것이 뭐가 어떠냐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저 일본 영화 한편에 출연한 배우이고, 탁월한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라고 평가한 것이 아니라면 특정 영화제의 주요 부문 상 수상자로 결정할 수 있었을까? 한국영화계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일본인 배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수상 후보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대종상이나 청룡영화상에서 일본인 배우에게 트로피를 안긴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관객은 무심하게 t아들일까? 지금 한일관계는 복잡하다. 세계 여러나라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적대적이거나 불편한 나라로 치면
북한은 코로나보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더 위험하다고 보는 건가? 대한민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는 중이지만 북한은 사정이 다른 듯 하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최근 북한을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극악무도한 도발 행위’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허위와 날조로 가득 찬 허황하고 불순하기 그지없는 반공화국 영화와 TV 극들을 내돌리며 모략 선전에 적극 매달리고 있다”고 속 뒤틀리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탈북자들이나 북한 내 사정을 지켜보고 있는 여러 단위들이 전하는 소식을 모아보면, 북한에서도 공개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나 노래, 영화를 어느 정도는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북한 체제에서 말하는 ‘예술’은 자유국가에서 지향하는 ‘개인의 자유로운 창의적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도와 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인민을 교양할 수 있는 선전 매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북한의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 모든 분야의 ‘예술’이 오락적 흥미보다 교양적 선전을 절대적 가치로 우선하는 이유다. ‘우리민족끼리’가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 ‘반공화국 영화와 TV극’이 무엇인지는 지적하지 않았지만,
한국영화는 봉준호 감독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 이미 영화계에서는 ‘봉준호만 신난다’는 말이 돌고 있었지만, 이번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은 불붙는 유전에 화염방사기를 들이대는 모양새다. 그의 영화를 본 관객들은 물론 영화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놀랄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카데미 주최 측이나 세계의 영화 관계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던 듯 하다. 세계 유수의 각 언론들은 주요 뉴스로 소식을 전했고, SNS에서도 감탄과 축하의 메시지로 넘친다.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향해 발걸음을 뗀 것은 오래지만, 수상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저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1962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가 출품되었지만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한국영화의 아카데미 영화상 참가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위원회를 열어 참가후보작을 선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매년 참가작을 정하기는 했지만 본선 후보에 선정된 경우는 없었다. ‘기생충’은 그런 과정을 모두 뛰어 넘은 채 본선 6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고, 6개 중 4 부문을 수상했으니 놀랍다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다. 1929년부터 시작한 아
상이 영화의 작품성을 얼마나 보증할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탓이다. 그의 기세를 뒷받침하는 표시는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이어지는 수상 소식이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대상 수상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전부터 쌓아온 평판이나 영화 작업의 결과에 대한 신뢰가 있는 데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출력 좋은 수퍼카에 또 다른 터보엔진을 달아주는 셈이었다. 영화제와 영화상은 시상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영화제는 여러 지역(나라)에서 참가한 영화들 중에서 심사를 통해 작품이나 인물을 선정하는 것이고, 영화상은 일정한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일정한 기간 내(일반적으로 시상식 전 1년 간에 상영한 영화)에 소개된 영화를 대상으로 부문별 수상자(작)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의 대상을 받은 데 이어 미국의 골든글로브 상 최우수영화 외국어부문 상을 받았다. 조지아 영화비평가협회가 수여한 작품, 감독, 각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바로 이어 북미 ‘평론가상’(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한 사람이 얼만큼 영화를 보아야지 ‘중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지의 기준은 따로 없다. ‘영화보기가 취미’라거나 ‘영화보기를 좋아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 가끔 ‘얼마만큼 좋아하느냐’고 되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몇 편이라고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여튼 좋아한다’고 하는 정도다. ‘24번째 1천만 관객 영화’가 나왔다는 컬럼을 쓴 것이 지난 6월이다. 2019년이 끝나가는 12월, ‘27번 째 1천만 관객’ 영화가 나왔다. 그 사이 4편의 ‘천만 영화’가 등장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2’는 2014년에 천만 대열에 든 ‘겨울왕국’의 속편이다. 올해에만 ‘극한 직업’, ‘어벤저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 ‘겨울왕국2’ 등 5편의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한국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가을에 은행나무 가로수에서 은행 떨어지는 수준이다. 다섯 편의 결과를 합치면 대략 6400여 만 명에 이른다. 아직도 흥행을 계속 중인 경우도 있으니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올해의 전체 관객이 2억2천만 명 안팎으로 예상하는데, 다섯 편의 흥행이 전체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한국영화가 첫 1천만 관객을 달성한 것은 2003
‘한국영화 100년’ 기념 세미나, 음악회, 상영회, 전시회 등이 10월 곳곳을 채웠다. 한국영화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겠다는 취지는 시비할 바가 아니지만, 왜 ‘100년’이라고 하는지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한국영화’ 대상과 범위를 무엇으로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정리하지 못한 점, 중요 쟁점에 대한 미확인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남겨둔 채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항일정신을 표현한 명작, 영화인 나운규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든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무성영화 ‘아리랑’(1926)을 한국영화로 볼 수 있는지, 나운규가 그 영화를 감독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지나간 것은 ‘100년’ 잔치가 실속 없이 풍악만 요란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리랑’은 여전히 논란 대상이다. 감독이 나운규인가, 항일의식을 표현한 저항영화인가라는 두 가지 점이 핵심이다. 1926년, 일본인이 세운 영화사 조선키네마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아리랑’은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지금은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영화의 정확한 내용이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태다. 당시 신문, 잡지 등에 소개된 기
역사 속의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의 승리로 기록하고 있지만 영화 ‘봉오동전투’의 흥행은 실패로 끝났다. 지난 8월 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최종 478만여 명을 기록했는데, 개봉전 예상은 ‘1천만’을 넘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럴 수준이었는지, 홍보를 앞세운 바람잡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500만 명을 넘겨야 제작비를 회수하는 수준을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제작자나 감독은 관객을 설득하는 흥행이 일본군을 상대하는 전투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터이다. 큰 기대를 걸었다가 모래 씹은 표정을 지은 경우는 또 있다. 한글 창제 과정을 소재로 다룬 ‘나랏말싸미’도 스타급 배우를 앞세우고, 연기력 좋다는 배우들을 좌우로 배치했지만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을 일으켰을 뿐 흥행에서는 처참한 결과로 마쳤을 뿐이다. 100만 관객에도 미치지 못했다. 영화는,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학술작업이 아니어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작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왕이 갑작스런 변고로 정상적 정무를 살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몰래 가짜 왕을 세운다는 ‘광해-왕이 된 남자’나 관상을 기막히게 잘 본다는 소문 덕에 궁에 들어갔다가 권력 싸움에 휘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