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영화가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1901년 9월 14일자 황성신문에는 ‘영화속 인물의 활동이 실제 사람들보다 낫다’ (寫眞活動勝於生人活動)라는 제목을 붙인 논설기사가 실려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적은 일종의 평론이다. 미국인 여행가 엘리어스 버튼 홈스(1870~1958) 일행이 같은 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고종황제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때 본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처가 명확한 자료로서는 국내 영화 상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첫 번째 평론이랄 수도 있다. 원문에는 영화를 사진(寫眞)이라고 표기했는데, 활동사진(活動寫眞)을 줄여서 부른 용어다. 요즘 표현으로 바꾼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사람들이 활동사진(영화)을 보고 신기함에 정신이 팔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참으로 묘하다고 찬탄하여 마지 않는다. 영화란 곧 촬영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것이 배열되어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 가히 살아 있는 그림(活畵)이라 할 만하다. 북청(北淸, 중국 베이징)에 전장(戰場)을 펼쳐놓고 군대가 나오는데 걷는 법(足法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 경쟁부문 대상인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한 것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이다. 당연히 봉준호 감독이나 영화 ‘기생충’은 화제의 대상이고, 더불어 칸 영화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칸 영화제는 재미있거나 친절한 영화제가 아니다. 관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들은 못본 척하고, 감독의 실험성이나 개성이 짙은 영화를 치켜 세우려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그러하지만 칸영화제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만큼 위상이 높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어벤저스’나 ‘스타워즈’류의 미국식 오락영화는 칸에 발을 들이기가 어렵다. 미국영화 중에서는 ‘택시드라이버’, ‘지옥의 묵시록’, ‘펄프픽션’, ‘화씨911’ 등 13편이 수상작 명단에 들어있지만, 사회비판적 사색이나 비주류적 엽기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경우들이다. 칸영화제가 미국식 오락영화를 가볍게 보며 예술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유지하려 하지만, 정작 미국영화에 대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가장 많고, 심사위원이나 영화제 기간 동안의 VIP급 게스트 중에도 미국영화계의 인물들이 많은 것은 현실적으로 미국영화계의 파워를 배제할
24번째 1천만 관객 흥행 영화가 나왔다. 미국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상영 첫날 130여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11일 만에 1천만 명을 넘어섰다. 6월 3일 현재 1천384만여 명을 기록해 역대 외국영화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있다. 1천761만여 명으로 흥행1위를 지키고 있는 ‘명량’(2014)의 기록을 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하루 평균 관객 수, 최단기간 내 1천만 명 관객 동원 등 흥행 여러 부문에서 이전의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이런 맛은 없었다.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흥행 선풍을 일으켰던 ‘극한직업’의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연이은 ‘1천만 관객’ 레이싱이다. 여기에다 한국영화 ’기생충‘은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기세를 몰아 흥행에 가세하고 있다. 상반기 영화시장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재미있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 재미라는 것도 각자의 기준에 따라 각양각색이어서 어떤 요소가 재미를 주는 지는 누구도 단언하기 어렵다. 한국영화계에서 처음으로 ‘1천만 관객’을 달성한 것은 ‘실미도’라는 영화였다. 2003년 연말 프로로 시작해 해
넷플릭스가 영화관(극장)을 사라지게 할까? 영화계가 주목하는 중요한 관심사다. 넷플릭스는 영화관 대신 온라인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판매하는 온라인 영상판매 회사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의 기기를 통해 일정 비용을 받고 콘텐츠를 무제한 보여준다. 영화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상영과는 달리 인터넷 환경이라면 어디든 서비스를 할 수 있다. 1997년 온라인을 통해 비디오 대여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주문자영상(VOD) 사업으로 확장한데 이어 지금은 스트리밍을 주력 사업으로 하고 있다. 비슷한 업체가 몇 개 있지만, 규모나 시장영향력 면에서 압도적이다. 2018년 4분기 기준 유료가입자 1억4천여만 명을 넘겼고 매출은 157억 달러(약 1조 9천억 원)에 이른다. 유통 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옥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드라마 ‘킹덤’을 제작했다. 해외에서는 ‘로마’란 영화가 관심을 모았다.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라는 문제는 관객들의 관심과 흥미 즉 흥행과 관련된 핵심이다. 또 다른 관심은 그 영화를 어디에서 보는가이다. 영화를 보는 곳은 당연히 극장(영화관)이
부산영화제를 비롯한 몇 곳에서 올해를 ‘한국영화 100년’으로 보고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한다고 한다, ‘한국영화’와 ‘100년’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 ‘한국영화’라는 말은 단순하지만 그 개념을 꼼꼼하게 따지자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일제강점기 36년은 국체(國體)를 규정하기가 어렵다. 조선 제26대 임금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것은 1897년 10월 12일. 그러나 한일협상조약(을사조약·1905)을 계기로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했다. 힘없는 새나라는 독립국가로서의 자주성을 상실한 것이다. 국권을 빼앗긴 고종 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1907)에 밀사를 파견하여 일본의 침탈이 부당한 행위이며 대한제국은 독립국가라는 사실을 밝히려 했지만, 그 뜻을 받아준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제는 한반도를 통치하기 위한 최고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했다. 대한제국 선포로 사라진 ‘조선’이란 국호를 다시 꺼낸 것이니, 대한제국은 국권을 빼앗긴 것에서 그치지 않고 존재마저 부정당한 셈이다. 확인 가능한 기록상 한반도에 영화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01년. 미국인 여행가 엘리어스 버튼 홈스는 대한제국 시절의 한국을
영화포스터 구경하기가 어렵다. 해마다 영화는 만들어지고, 그 영화보다 더 많은 포스터가 나온다. 그런데도 점점 모습을 감춘다. 영화를 광고하는 방식이 포스터 중심에서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여러 지면을 가득 채우다시피 했던 신문의 영화광고도 요즘은 만나 본 지 오래다. 휴대 전화나 컴퓨터만 들여다보면 온갖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길거리에 붙이는 포스터나 신문에 싣는 광고 방식은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멀티플렉스영화관이 일반화하면서 영화 상영 방식도 전국 동시상영 체제가 당연한 것처럼 되다보니 영화 광고도 어디를 가나 똑같다. 요즘은 길거리에 붙이는 포스터보다 영화관 안에서 진열하는 A4 크기의 전단이 더 흔하다. 전단 조차도 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의 이름을 넣지 않는다. 그 영화관에서만 상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27년에 제작한 ‘메트로폴리스’라는 영화의 포스터 한 장은 2005년의 릴 갤러리 경매에서 69만 달러에 팔렸다. 달러당 환율을 1100원 정도로 보면 7억6천만 원 정도에 이른다. 지금까지 공개 거래된 영화 포스터 가격 중에서 가장 높다. 독일의 미술가 하인츠 슐츠-노이담(1899-1969
‘국제영화제’가 세계적으로 몇 개나 열리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영화제마다 규모도 다르고 주최자들의 구성도 다양해서 정기적으로 행사를 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두 번 행사를 치르고는 흐지부지 사라지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다양해지면서 ‘영화’라는 형태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각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를 다 합치면 적어도 수백 개에서 많게는 수천 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만도 80여 개쯤에 이른다. 경기도에서만도 부천시에서 열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파주 휴전선 일대에서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안산의 상록수다문화국제단편영화제가 ‘국제영화제’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고양의 스마트영화제, 부천의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동두천의 동두천카툰애니메이션페스티벌도 ‘국제적’이다. 통상 영화계에서는 3개국 이상에서 영화나 영화인이 참가하면 ‘국제영화제’의 최소한 면모를 갖추었다고 본다. 그래도 비중 있는 영화제라면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이 공인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FIAPF가 공인하는 국제영화제는 경쟁극영화 영화제(14), 경쟁특성화영화제(28), 비경쟁 극영화(4), 다큐멘터리·단편(5) 등 4
8월말 현재 전국의 영화관 수는 514곳, 스크린 수는 2천960개이고 좌석 수는 46만4천187개다. 그중 필름으로 상영하는 스크린은 205개에 지나지 않고 2천569개는 디지털 상영(2D)을 한다. 3D 상영을 하는 곳은 961개, 4D는 38개, 아이맥스 상영관은 16개다. 상영방식에 따른 스크린 수가 전체 스크린보다 많은 것은 같은 스크린에서 2D, 3D를 복합적으로 상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D는 보통의 화면, 3D는 입체, 4D는 입체에다 좌석까지 움직이는 것이고, 아이맥스는 보통의 화면보다 10배 쯤 큰 화면을 가리킨다. 경기도의 경우 영화관 수는 112개, 스크린 수는 678개다. 한국에 극장이 생긴 것은 1902년, 개화기 무렵이다. 협률사(協律社)는 판소리, 탈춤 등을 공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생긴 실내 공연장 역할을 했다. 그 이전에는 고정된 시설의 공연장이 없었다. 남사당이 주로했던 줄타기, 탈춤 같은 전통 놀이는 동네 빈터나 강변 모래밭 등 적당한 자리를 잡아 한판을 벌이다가 공연이 끝나면 걷어치우면 그만이었다. 무대시설이나 조명, 음향장치 등을 갖추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든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공연장이었고, 걷으면
영화는 대중문화의 대표적 매체다. 일상에서 영화만큼 쉽고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경우가 있을까. 여러 사람이 동시에 특정한 영화를 감상하며 정서적 공감을 나누기에는 영화만한 것이 없다. 영화 탄생 100여 년을 훌쩍 넘기고, 텔레비전이나 게임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사람들의 흥미를 분산시켜도 영화의 위상은 굳건하다.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일은 제목을 정하는 일이다. 지금은 마케팅 작업이 여론조사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통계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강하지만, 조금만 되돌아보아도 ‘감’에 따라 움직인 시절이 있었다. 제작자나 기획자, 시나리오 작가 등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제안(추천)하면 그것을 영화 소재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야기이든 결국 제목을 정해야 하는데, 간결하면서도 영화의 인상을 결정지을 만한 호소력 있는 경우를 최고로 친다. 한국영화의 경우는 당연히 우리 식대로 짓는다. 소설이나 그 밖의 원작이 있는 경우라면, 그것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이 확보하고 있는 지명도를 활용하자는 것이 처음부터의 계산이었으니까. ‘춘향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같은 고전에서부터, ‘별들의 고향’
한국은 영화천국이다. 2005년 1억명, 2013년 관객 2억 명 관객을 돌파한 이래 5년 연속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연간 관람회수는 평균 4.1회. 5천만 명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한 사람당 해마다 4편 이상을 관람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 사람이 1년에 영화 4편 정도를 보는데 그것이 뭐 많은 것이냐 싶지만, 너무 어려서 정상적인 관람이 어려운 영·유아들 빼고,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노년층,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영화 구경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겠다는 사람, 연애시절에는 영화관에 여러 번 갔지만 결혼하고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 나는 원래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 병원이나 기타의 수용시설에 격리돼 있는 경우 등등 어떤 이유로던 영화보기가 어려운 경우를 빼고, 언제든 영화 볼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만한 경우로 한정한다면, 1천500만 명, 최대로 잡아도 2천만 명 정도가 아닐까 추정한다. 1년에 4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는 관객 평균은 바로 이들이 기록한 숫자다. 이른 바 ‘구매력을 갖춘 잠재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라고 만사 제치고 영화만을 보는 것은 아닐터이다. 그들 중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