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에 들렀다. 생선전을 지나 떡집 그리고 순댓국집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초입부터 반기는 것은 돼지머리다. 고무 다라이에 몇 개의 목 잘린 돼지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표정이 제각각이다. 어떤 놈은 잘생겼고 어떤 놈은 코가 들려있고 어떤 놈은 목이 짧았으며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놈도 있다. 고사용 돼지를 삶을 땐 웃는 돼지를 만들기 위해 입에 나무토막을 물리고 삶은 후 귀가 쫑긋하게 설 수 있도록 찬물로 헹군다. 물론 삶는 시간을 제대로 잘 맞춰야 모양이 보기 좋게 된다고 했다. 고사에 돼지머리를 쓰는 이유를 살펴보니 여러 설이 등장한다. 무속신화에 배경을 두고 있지만 옥황상제 밑에 복장군와 업장군이 있었고 서로 아옹다옹하는 사이로 옥황상제는 그들이 시기다툼 하는 것이 싫어서 두 사람에게 탑을 쌓게 하니 업장군이 잔꾀를 부려 복장군을 이겼으나 그것이 탄로 나서 옥황상제는 복장군을 돼지로 환생시켜 사람들이 옥황상제께 소원을 빌 때 중개역할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이때부터 돼지가 쓰였다는 설이 있다. 원래 돼지는 멧돼지처럼 야생에서 살던 것을 길들여 가축으로 기르게 된 것이며 한국에 개량종이 들어온 것도 100여년이 넘는다고
커피 한 잔 들고 창가에 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생기를 되찾은 꽃들이 싱그럽다. 공원을 환하게 밝힌 철쭉이 으뜸이다. 흰색, 붉은 색 함께 어우러져 푸른 것들 속에서 눈부시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잡아놓은 무논에는 송홧가루 누렇게 떠다니고 개구리 울음이 찰름찰름 수위를 조절한다. 높은 곳 새의 둥지며 낮은 곳 애기똥풀, 민들레 등 저마다의 자리에서 생기가 넘친다. 벌써 꽃 진자리 씨앗을 매달기 시작한 풀도 있다. 저마다의 생명력으로 계절을 키우기에 분주하다. 식물들만 바쁜 것은 아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을 비롯한 여러 행사들이 줄지어 있어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며 함께하는 기쁨을 누린다. 한동안 주춤했던 코로나19로 거리에는 활력이 넘치고 관광지나 식당에는 사람이 넘쳐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으로, 학원으로 등원을 시작했고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골목상권도 서서히 움직인다. 마스크를 쓰고 1m 생활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실외 활동을 시작했다. 긴급재난 지원금을 지급 받아 가계와 소상공인 등 골목상권을 살리는데 큰 힘이 되고 이젠 어깨 좀 펼 수 있나 했는데 다시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큰
꽃비가 쏟아진다. 한 몫에 쏟아진 꽃잎이 거리를 질주한다. 바람의 향방을 따라 거리곳곳을 누비는 벚꽃 잎들, 꽃비 구르는 거리를 타박타박 걷는 나는 이 계절의 이방인 같다. 사람이 꽃을 맞이하지 못하니 이젠 꽃이 사람의 거리로 내려와 함께 하고 있다. 봄꽃들이 피었다 지는 동안 우리는 문을 걸어 잠그기에 바빴다. 꽃을 갈아엎기도 하고 꽃들의 입구에 빗장을 치면서 출입을 막았다. 바이러스처럼 번지는 꽃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저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봄을 보내고 있다. 마음은 답답하지만 들녘에 나서보면 활기차다. 못자리를 만들고 논을 갈아엎고 밭에 비닐을 깔아 밭작물을 심는 등 농경이 시작된 들녘은 생기가 돈다. 배꽃이 활짝 핀 과수원은 꽃의 초례청을 차려주느라 왁자하고 주말농장 또한 서툰 손길들이 모여 정성을 심느라 하루해가 짧다. 우리도 사과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산에 심었는데 관리가 어렵다보니 칡넝쿨이며 풀에 뒤덮여 식재한지 5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밭으로 옮겨왔다. 가지는 약한데 뿌리는 제법 실하다. 척박한 환경에서 버텨내느라 뿌리에 힘을 썼나 보다. 구덩이를 깊게 파고 물을 듬뿍 준 후 식재했다. 올해는 어렵겠
어디로 눈을 돌려도 꽃 천지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뒤질세라 노랗게 핀 개나리 그리고 진달래와 유채꽃까지 합세하여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땅을 딛고 올라선 푸른 것들과 낮은 곳을 밝히는 민들레까지 노란 신호를 보내며 꽃소식을 북쪽으로 밀어주고 있다. 주말 나들이 약속을 취소하고 밭으로 가는 길이다. 밭을 갈아엎어 감자도 심고 상추며 아욱 등 채소를 심기 위해 가는 길에 황색 중앙선에 서 있는 흰 개를 보았다. 황색과 황색 줄 사이에서 꼬리를 뒤꽁무니에 바짝 붙이고 큰 눈을 두리번대며 서 있다. 양 방향으로 차들은 빠르게 달리고 흰 개가 검둥이가 된 녀석은 애완견 같았다. 집을 잃었거나 버려졌거나 한 모양이다. 온전히 길을 건넜을지 아니면 아직도 공포에 떨고 있을지 가출한 소녀가 떠올랐다. 세상 한 복판에 홀로 놓인 소녀도 저런 모습일거다. 막상 집은 뛰쳐나왔지만 오갈 데는 없고 세상 복판에 서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공포와 굶주림과 외로움에 떠는 모습,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그 일탈 또한 정해진 규칙과 틀 안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연을 날려 보라. 연은 높이 오를수록 연줄이 팽팽해지고 그 팽팽함 가운데 비로소 제 몸을 맘껏 날리며 뽐
볕 좋은 창가에 앉아 밖을 본다. 노랗게 망울을 터트린 산수유와 매화사이를 노랑나비가 날고 제철을 용케도 아는 파리도 유리문에 붙어 껄떡대고 있다. 분명 봄은 왔는데 현실은 춥기만 하다. 이맘때면 놀이터엔 아이들 재잘거림이 끊이질 않았고 산책 나온 발길들로 분주했는데 가끔 지나치는 행인 말고는 한적하기만 하다. 황사와 미세먼지 없는 청명한 날이지만 주말 나들이는커녕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한 시간씩 줄을 서다 돌아서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운동을 하고 누구도 믿지 못해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 옆에 사람이 가까이 서는 것이 두렵고 음식점에서도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게 되고 가급적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움직이거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한다. 이렇게 사람을 접하는 일이 두려우니 생계에 관련된 꼭 필요한 소비 말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람 하나 들지 않는 매장을 종일 지키고, 허탕치고 돌아오지만 그래도 날이 밝으면 다시 매장으로 향하며 개점휴업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꽃을 봐도 반갑지 않고 나비를 봐도 예쁘지가 않다. 봄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어
냉장고 파먹기 중이다. 꽉 찬 냉동고에 검은 봉지, 흰 봉지 언제 넣었는지 물기가 말라 푸석해진 생선까지 수북하다. 세일할 때 사다 놓은 것들이다. 많이 먹지도 못하면서 싼 생선이나 육류를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사게 된다. 한두 번 먹고 냉동고에 들어간 것은 쉬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먹고 남은 음식을 버리지 못하고 쟁여놓기 때문에 이런 저런 것들로 냉동고가 빼곡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꺼내 먹다보니 안쪽 깊숙이 들어간 재료는 유통기한을 넘기게 되고 결국엔 버리게 된다. 살 때 돈 들이고 버릴 때 돈 들이고 살림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자신을 타박하며 반성하지만 얼마간 지나면 또 가득 찬다. 밥을 버리면 죽어서 버린 만큼의 밥을 먹게 된다며 밥이나 음식 버리는 것을 엄하게 꾸짖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버릴 것도 없었고 또한 가축들 먹이로 사용하다보니 밥풀하나 과일 껍질 하나 버려지지 않던 살림이었다. 지금은 먹거리가 풍족해졌고 생활수준도 예전에 비할 바 없이 좋아졌으니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게 되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세상이 됐지만 불과 수십 전만 해도 조반석죽하는 이웃이 있었다. 아침에 밥 먹고 점심은 굶고 저녁엔 죽을 먹는다는 것처럼
어느 댁에 방문했다. 현관에 코뚜레가 걸려 있다. 코뚜레를 보니 반갑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코뚜레를 문 앞에 걸면 집안이 편안하고 사업이 잘 된다고 부모님이 걸어놓았다고 했다. 코뚜레는 소의 코에나 거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예전에 아버지는 일소가 송아지를 낳고 그 송아지가 뿔이 날쯤 되면 코뚜레를 걸어주었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노간주나무를 물에 불리고 불에 달구어 둥글고 갸름하게 모양을 만들었다. 소 콧구멍을 뾰족한 나무로 찔러 뚫은 다음 코뚜레를 끼우고 단단하게 묶었다. 송아지는 뒷발질을 하며 펄펄 뛰었지만 아버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코뚜레를 끼우고는 소잔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뛰쳐나가 논과 밭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송아지도 코뚜레를 해서 외양간 기둥에 묶는 순간 온순해졌다. 코뚜레를 하고 나면 워낭을 매달았다. 힘이 세고 난폭한 황소도 코뚜레를 움켜쥐면 이내 한풀 꺾였다. 소의 여린 살에 구멍을 뚫어 나무를 끼워 넣었으니 버틸수록 고통은 컸을 테고 순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코뚜레나 멍에나 소를 통제하고 압박하는 수단이다. 코를 뚫은 상처가 아물면 소를 끌고 들로 나갔다. 고삐를 단
산책을 나섰다. 쌉싸롬하게 매운바람 속에 봄이 들어있다. 환해지기 시작한 나무는 가지마다 새움을 만들고 냉이가 땅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 물풀과 녹조로 힘겹던 저수지도 말끔하게 단장된 채 물 주름을 폈다 접으며 봄을 마중한다. 아직은 추워 공원을 찾는 발길이 뜸하지만 새싹이 돋고 봄꽃들이 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더러는 운동기구를 이용하고 더러는 수변 산책로를 걸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머물다가곤 한다. 자작나무를 올려다보니 나뭇가지에 검은 비닐이 펄럭이고 있다. 비밀 조각이 넓어 나뭇가지를 거의 덮다시피 한 채 바람에 찢겨 펄럭인다. 보기에도 흉할 뿐 아니라 나무 또한 힘들 것 같아 안쓰럽다. 아마도 인근 농경지에서 날아왔을까 짐작해본다. 공원 가까이에 과수원이 있다. 배꽃이 환하게 피고 배에 화접을 하고나면 구슬만한 열매가 맺고 봉지를 씌우고 그 봉지 속에 알이 차오르는 것을 보면 내 과수원은 아니지만 경이롭고 뿌듯하다. 헐렁했던 봉지가 가을이 되면 터질 듯 빵빵하게 배가 자라고 수확을 한다. 이런 과정을 공원을 산책하면서 보는 일은 즐겁다. 이렇듯 우리는 자연 속에서 공존하고 자연을 즐기며 살게 된다. 하지만 들녘에 나서보면
재래시장에 갔다. 시장을 들어서자 명절 분위기가 확 풍긴다. 대목 특수를 위해 준비된 상품들로 점포가 꽉 찼다. 선물용 과일 상자가 수북이 쌓인 과일전과 수산물 코너, 야채가게 등 물건도 많지만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시장 가운데 통로에 자리 잡은 분식코너에 삼삼오오 모여 떡볶이와 공갈빵 도넛 등을 먹고 포장해가는 사람들로 바쁘다. 떡볶이집 주인은 근 삼십여 년 전부터 단골이다. 첫 아이 어릴 때 손잡고 와서 지금까지 가끔 들르는 곳이다. 닳을 대로 닳아 윤기 나는 전대로 수없이 드나들던 꿈과 희망 그리고 하루치의 노역이 그녀의 뻑뻑해진 관절과 입담에 녹아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자신을 잘 지켜준 육신과 시장골목에 고맙다며 쉼 없이 호떡을 굽고 떡볶이를 담아내는 손길이 거침없다. 이렇게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있는 곳이지만 주차공간이 협소하고 상품의 진열상태며 열악한 환경이 재래시장을 찾는 발길을 줄어들게 하는 원인이었는데 지금은 단장을 하여 깔끔하고 청결해졌다. 시장 통로에 지붕을 만들었고 간판을 규격화했으며 노상에 제품을 쌓아 통행에 불편을 주던 것도 많이 개선되었다. 명절 때는 전통시장 주변에 임시주차를 허용하는 구간이 정해졌고 지역화폐를 10퍼센
신년 벽두에 행복한 꿈을 꿨다. 새벽녘 어느 도인이 나타나 로또 당첨번호 여섯 개 숫자를 일러주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 숫자를 암기하다 눈을 떴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대충 기억나는 대로 숫자를 메모하여 똑 같은 번호의 복권을 두 장 구입했다. 주초라서 주말까지는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많은 상상을 했다. 수십억이 내 손에 들어온다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나. 우선 대출금을 청산하고 자식들 얼마간 떼어주고 동기간도 좀 나눠주기로 했다. 덜컹대는 남편 차도 외제차로 바꿔주고 여행에 동참할 수 있는 형제들 다 불러서 해외여행도 멋지게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고 남는 돈으로 가격에 맞는 상가건물 장만해서 임대료 받으면 남은 삶은 편안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설렘으로 하루가 여삼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래성을 쌓고 또 쌓다보니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복권당첨 되면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하나. 남편에게 먼저 알릴까 아니면 혼자 조용히 은행에 가서 당첨금 받고 통장을 보여줄까. 정말이지 별의별 상상으로 일주일을 보내다 드디어 토요일, 차마 당첨번호 확인을 못하고 안절부절 하다가 복권 당첨 추첨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