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문화비평가이자 작가인 탕누어가 한자의 태동과 역사에 대한 치밀한 추적으로 인류 사유의 시원(始原)과 진화 과정을 밝힌 책.
저자는 문학, 역사, 고고학, 사회학 등을 한자의 탄생과정과 연결해 인류의 사유와 상상력을 추론하고, 아름답고 기이한 갑골문 도상을 유머러스한 문체로 풀어내 한자에 담긴 인문학적 진실과 중국 문화의 흐름을 해석한다.
책은 3천년 전 상나라 시대의 갑골문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돌아보면서 시작한다.
저자는 갑골문에 잔인한 글자들이 특히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젓갈을 의미하는 해의 갑골문을 살펴보면 큰 절구 안에서 절망적인 표정을 한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있다. 갑골문의 윗부분에는 두 손으로 절굿공이를 잡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는 산 채로 사람을 내리쳐 육장(肉醬)을 만들고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데, 갑골문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 채로 죽임을 당하는 형벌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버릴 기(棄)의 갑골문에는 갓 태어나 아직 피가 묻어 있는 아기를 삼태기 속에 넣어 아무렇게나 내다버리는 모습이 담겨 있고, 또 다른 조형자는 갓난아기를 교살하는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갑골문 속에는 생활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데다 의술도 발달하지 않았던 초기 인류의 생존 세계에서 일종의 변형된 가족 계획에 따라 낙태를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은 갑골문 시대의 흔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초기 갑골문부터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한자로의 진화과정을 추적해 인류사회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야생의 포악한 동물로 묘사했던 돼지의 초기 갑골문은 거세당한 주거형 돼지를 뜻하는 축(畜)자의 원형이 됐다. 이는 다시 가축을 기르는 가정의 모습으로 진화해 집을 의미하는 가(家)가 탄생했다. 저자는 이처럼 한자의 형성과정을 통해 문명의 변천을 흥미롭게 해석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문자가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겨나기도 하는 ‘유한한 문자의 모습’을 말하며,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은 문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녹아 든 문화와 사회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