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벌어지는 성희롱은 관공서나 기업,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예방 지침의 사례와 현저히 다르다.
성희롱 문제 해결의 어려움은 대부분의 성희롱이 성희롱인지 아닌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데 있다. 왜 여자는 분명하게 싫다고 말하지 않고, 남자는 성희롱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는 걸까.
성희롱 문제 전문가인 무타 카즈에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해 지금까지 없었던 친절하고도 실용적인 성희롱 관련서를 집필했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시된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는 남자가 빠지기 쉬운 착각의 구도를 가려낸다. 성희롱의 의미, 연애관계의 성희롱, 남녀의 심리, 직장 내에서 취해야 할 태도, 소송 관련 대응법 등을 현실감 있게 다루고 있다.
남자 입장에서 ‘아닌 밤중에 날벼락’처럼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되는 경우가 있다. 교제하던, 혹은 상호 합의 하에 관계를 갖고 있던 여성으로부터라면 상대가 변심했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음해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연인 관계였다고 남성 쪽이 주장하는 경우 여성 쪽은 전혀 그런 마음이 없는데 남성 혼자 굳게 믿는 사례를 ‘망상계’로 분류해 착각을 바로잡는다.
직장 상사에 대한 존중, 대학 교수를 향한 존경을 이성이 보내는 신호로 받아들여 일방적인 접근을 시도한다면 이는 성희롱 적신호라는 것.
그런데 여성 쪽에서도 남성에게 호감이 있었거나 실제 교제를 했던 사이에서도 성희롱 사건은 종종 발생한다. 책에서는 이를 ‘리얼계’로 칭하면서 원인과 배경을 자세히 살핀다.
회식 자리에서 옆에 앉아 술을 권해도 잘 받고,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해도 거절하지 않았고, 휴대폰 메시지도 다정하게 주고받았다, 심지어 출장지 숙소에서 내 방으로 오라는 말에도 잘 따랐다. 그런데 ‘교제를 강요당했다’거나 ‘강제로 덮쳤다’는 말을 들으면 남자는 억울하기 마련이다.
단호하게 거절의 말을 하지 않은 여성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책에서 여자가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불쾌한 성적 권유나 행동을 거스르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만으로 거부의 메시지를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애매한 답변이나 화제 전환으로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거절했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에게는 이런 마음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직장 내 권력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인 여성은 인사 보복도 두렵지만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거나 함께 일하기 불편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또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당황스러운 상황을 애써 무시하거나 없었던 일로 삼아 갈등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남성이 둔감함을 내장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여성에게 내재된 반응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시대는 변화하고 여성의 말과 행동도 바뀌고 있다. 여자가 불쾌한 성희롱에 단호한 거절의 말을 할 수 있는 사회 구조와 환경이 되기까지 남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당부다./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