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구건기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적어 놓은 문서’라는 뜻으로, 이번에 전시되는 행구건기는 지난 2011년 용인이씨 문중으로부터 기증받은 유물이다.
표지에 적힌 ‘경진 6월 일(庚辰六月 日)’이라는 글귀로 미뤄 고종 17년(1880년)에 작성해 이돈상(1815~1882)과 그의 아들 이필영(1861~1928)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서에 적어 놓은 당시의 여행 준비물 중에는 혹시 모를 야영(캠핑)에 대비한 돗자리, 모기장, 벌레 막는 도구와 요·베개·대야 등 세면도구, 침구가 있다.
여행지에서 보고 겪은 일을 적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위한 벼루, 붓, 종이, 편지지, 먹 등이 적혀 있으며, 타구와 요강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가마를 타고 떠난 여행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구는 침이나 가래를 뱉던 그릇을 말하며, 요강은 30~4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흔히 사용하던 생활용품으로 주로 밤에 방안에 두고 소변을 보았던 실내용 변기다. 여성들이 가마로 이동할 때에도 사용했는데, 사대부들이 여행 갈 때에도 챙겼던 것으로 보인다.
도박물관 관계자는 “요즘의 여행준비물과는 차이가 많지만,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캠핑가방을 몰래 들여다 본 듯 한 재미가 쏠쏠하다”며 “한겨울 묵혀둔 캠핑 장비를 챙겨서 훌쩍 떠나는 길, 박물관에 잠시 들러 행구건기를 보며 깜박 잊은 장비는 없는지 챙겨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고 말했다.(문의: 031-288-5400)/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