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산15번지
/양진기
꼭대기의 교회 첨탑이 하늘의 말씀을 수신한다
북적대던 도깨비시장은 인적이 끊겼다
버려진 좌판은 먼지가 더께를 이루고
파라솔에 덧댄 비닐들이 펄럭인다
계단 아래 골목 그 아래 계단
쪼그려 앉아 별높 별낮*
둥근 딱지를 뒤집으며 세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방구를 외치며 술래를 피해 달음질치던
꼬마들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계간 ‘애지’ 여름호에서
개발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개발을 꿈꾸다가 잠시 머뭇거리는 산동네의 풍경이다. 개발하지 않아도 하늘의 말씀은 늘 있었고, 도깨비시장은 북적거렸고, 온갖 좌판과 파라솔이 넘실거렸다. 골목과 골목, 계단과 계단들에는 항상 별들의 아름답고 신명나는 꿈들이 달음질쳤다. 못살아도 그냥 살만했던 산동네였지만 이제 조만간에 새로운 세계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세계는 대부분 이들의 몫이 아니기 마련이다. 고향과 추억과 꿈을 어쩔 수 없이 빼앗긴 착한 별들은 이제 흔적마저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