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鄙劣도
/정선
격렬비열도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
땡볕은 비닐봉지만도 못하게 뒹구는 시들을 모아 파묻고 있다
꽤액 꽤액
시들은 파묻히지 않으려고 악을 쓴다
겉보기엔 멀쩡한 저놈들이
소리 없는 살인병기다
내 안에서 몇 번이나 수장시킨!
격렬비열도, 서서히 그믐달 바깥으로 침몰한다
절벽 틈마다 야자를 심자는 최초의 발상은
한통속으로 싱싱하다
- 정선 시집 ‘안부를 묻는 밤이 있었다’
어느 때 문득 ‘이건 본래의 내가 아니야’라고 느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삶의 목표를 위한답시고 부지불식간에 ‘나’를 내동댕이쳤을 때, 그로 인해 나답지 못하게 鄙劣해져서 타인들로부터 또는 스스로에게 심한 모멸감을 느낄 때면 특히 그럴 수 있다. 시인들에게는 시가 살인병기가 될 수 있듯이, 정치가에게는 권력이, 경제인에게는 재력이, 사회인에게는 관계가 살인병기가 되어 그들을 침몰시킬 수 있다. ‘나’를 죽이는 나의 鄙劣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