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遺産)
/김윤환
평생 한 남자에게만 속내를 허락한 아내의 젖은 눈
말없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턱수염
그 곁에 여전히 슬피 웃으시는 영정속 어머니
낡은 책상위에 졸고 있는 1963년 개정판 성경책
무심히 떠나가는 벗들의 손 인사
저기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글쩍이다만 시답쟎은 시 한 소절
흘러간 노래 한 소절
-김윤환 시집 ‘이름의 풍장’ / 애지·2015
유산이 있다는 것은 살아온 흔적이 있다는 것이리라. 사람에게 주어진 숙제는 흔적을 물질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공기나 우주 속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처럼 어느 날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펴는 벗들의 이마 위나 아이들의 눈에 비추어질 수 있다면, 문득 떠오르는 시 한수가 시인의 유산이 된다면 그 또한 얼마나 설레이는 일이겠는가. 시인이라는 이름도 수십 길 지하에 은 암반수처럼 수많은 곡괭이질을 마친 후 솟아나는 한 접시 냉수 같으니 더는 욕심내 꿈꿀 일도, 못 다하여 속상할 일도 없으리라는 시인의 가벼운 유산을 본다.
/박병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