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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확증편향(確證偏向)’ 바이러스

 

 

 

 

 

여우가 두루미를 자신의 식사에 초대했을 때, 자기만 생각하고 음식을 접시에 담아 내오자 부리가 긴 두루미는 그것을 먹을 수가 없었다. 두루미는 그 일을 마음속에 새겼고, 여우를 식사에 초대해 일부러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와 여우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유명한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다.

요즘 21대 국회 상임위원회 구성을 놓고 여당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 미래통합당이 벌이는 하염없는 샅바 싸움을 보노라면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야가 상대방에게 못 먹을 조건을 서로 내놓고 레코드판 틀어놓은 듯 딴 주장만 거듭한다. 여야 정치권의 가없는 드잡이질은 가뜩이나 힘든 국민에게 짜증을 부른다. 여당은 야당 시절 기억 안 하고, 야당은 여당 시절 망각한 척 철면피 치매 놀음들을 벌이니 시쳇말로 웃프기 짝이 없다.

고려대 철학과 조성택 교수의 말을 빌리면 “대화란 ‘나의 옳음’을 잠시 유보하고 ‘타인의 옳음’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이며, 질문을 통해 차이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큰 ‘옳음’을 모색하는 과정”이라는데, 우리 정치판에선 씨도 안 먹힐 공자님 말씀이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허구한 날 우습고도 슬픈 앵무새 흉내에다가 드잡이 놀음을 하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얘기해서 집단적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이 문제다.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아니,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남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아량이라곤 조금도 없다. 특히 이 나라에서 ‘확증편향’이 집단화, 보편화돼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일이다. 온 국민이 감염된 확증편향 바이러스는 어쩌면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부모 형제간에도 정치, 종교 이야기는 금물이 된 지 오래다. 어쩌다가 시작했다가는 십중팔구 머지않아 핏대 올리고 다투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피붙이들끼리도 금지된 화제를 피하느라고 요령을 피워야 한다. 생각이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다른 생각을 들어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못하다. ‘반대를 말할 자유’와 ‘반대의견을 존중하는 배려’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핵심인데 우리는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념집단의 확증편향은 자아도취의 ‘메아리 방’,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안에서 무한 증폭된다. 자신들만의 방에 갇혀서 실컷 떠들고서 ‘여론 청취’라고 강변하는 정치인들과 서초동·광화문 혹은 여기저기 입맛에 맞는 ‘메아리 방’을 찾아다니면서 그것을 ‘민심’이라고 우기는 숱한 이념편향족(理念偏向族)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자기 생각과 같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잔인한 혐오감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사태 도중에 더 많이 알려진 ‘신천지’ 집단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행태가 수두룩하다. ‘인지부조화’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행동 대신 생각을 바꿔 자기합리화로 치닫는 현상을 말한다. 4·15총선 직후 대승을 거두고도 ‘대구는 독립해서 일본으로 가라’는 글을 올린 진보 여류시인이나, 패배한 총선을 한사코 ‘부정선거’라고 외쳐대는 전직 보수 국회의원이나 모두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의 딱한 희생자들이다.

우리가 이렇게 ‘확증편향’과 ‘인지부조화’에 만연한 세상을 만들고 만 것은 근본적으로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체계와 풍토는 오로지 ‘입시’에 맞춰져 있다. 균형 잡힌 인간을 길러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는 유능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만 줄기차게 해왔다.

자신의 신념에 맞춰 유리한 정보·증거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반대는 무시하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 현상은 아무래도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페이스북·트위터·커뮤니티를 넘어서 유튜브·포털의 알고리즘도 즐겨 찾는 콘텐츠만 계속 모아주면서 사람들의 ‘확증편향’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실험·조사에서 확증편향의 포로가 되기 쉬운 1순위는 논객·법관·정치인·종교인·학자·교사 부류의 전문가들로 지목된다. 망국적 ‘확증편향’ 바이러스를 박멸할 시대적 사명이 이 나라 리더들에게 부여되고 있다. 진정한 리뉴얼(Renewal)은 그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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