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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짐승들도 그렇게는 안 한다

 

새끼를 낳고 기르기 위한 남극의 황제펭귄 부부의 노력은 눈물겹다. 암컷이 알을 낳고 몸에 먹이를 비축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면 수컷은 발 위에 있는 주머니에 알을 넣고 품는다. 알을 품고 있는 기간이 무려 64일 안팎이다. 그동안 수컷은 수분 보충을 위해 눈(雪)을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는다. 워낙 혹독한 날씨여서 잠시만 자리를 벗어나도 알이 얼어 터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수컷 황제펭귄은 부성애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진다. 


새끼가 부화하면 수컷 펭귄은 자신의 위 속에 있는 소화된 먹이를 토해서 먹인다. 새끼가 부화한 지 열흘 정도 후에 암컷이 돌아와 같은 방식으로 먹이를 주고, 이후로 수컷과 암컷은 번갈아 가며 하나는 새끼를 품고 다른 하나는 바다로 나가 먹이를 비축해 돌아온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 둔 부모는 알 둔 새 같다’는 말도 있다. 오랫동안 익히 들어온 이런 말들을 우리는 굳건히 믿고 살아왔다. 대개의 부모가 그 이치에 딱 맞는 따사로운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귀한 상식이 가차 없이 무너지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극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여행용 캐리어에 의붓아들을 가둬 숨지게 한 천안 계모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창녕에서 계부가 아홉 살 된 의붓딸에게 학대를 뛰어넘는 고문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또 드러났다. 쇠사슬에 목이 묶인 채 베란다에 갇혀 굶주림에 시달리던 이 9살짜리 여자아이는 가까스로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아슬아슬 탈출하여 야산에 숨어 있다가 해거름에야 산길을 걸어 나와 구조됐다.


아이가 털어놓은 계부와 친모의 학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쇠사슬로 목을 묶어 가둔 것도 모자라 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등과 발바닥을 지지고, 지문을 없앤다고 달궈진 프라이팬에 손가락까지 지졌다니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다.


해마다 서른 명 안팎, 지난 2016년부터 3년 사이에 무려 102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각종 아동학대로 숨졌단다. 학대 행위자와 피해 아동과의 관계는 부모가 1만8천919건(76.9%)에 달한다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만큼도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친부가 학대 행위자인 경우가 1만747건(43.7%), 친모 7천337건(29.8%), 계부 480건(2.0%), 계모 297건(1.2%) 등이었다. 


절대다수의 학대는 친부모에 의해 일어난다는 얘기다. 도대체 왜 이런 비참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할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기에,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부모의 모진 학대 끝에 숨지는 비극이 계속되는 것일까.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으신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면 무슨 관성처럼 ‘엄벌’만을 외친다. 국회에 수두룩한 법조출신 정치인들은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 “처벌이 솜방망이여서 그렇다”며 형벌 강화를 부르댄다. 현대사회의 모든 일이 그렇게 범인을 잡아 손 자르고 발목 끊는 야만 시대의 형벌이면 해결될까. ‘아동학대’는 그렇게 간단히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동학대 처리 시스템’ 전반의 부실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는 현실적으로 옳다. 감시망을 확대해 신속히 학대 아동을 찾아내어 확실하게 구출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의 부모는 그냥 두고 딴 예기만 하는 것은 해충의 발원지는 그냥 두고 벌레만 잡는 어리석음과 다르지 않다.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별도 교육이 필요하다. 아무렇게나 아이를 낳고, 또 아무렇게나 키우는 현상을 방치하는 한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가뜩이나 ‘인구절벽’이 시대의 난제로 떠올라 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냥 아이 낳았다고 돈 주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의무적으로 ‘좋은 부모’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부모’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고 아이를 낳은 뒤 화풀이 대상 삼아 말 안 듣는다고 두들겨 패고 밥조차 굶기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모른 척할 셈인가. 정신병자에 가까운 부모들이 양산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확실히 끊을 정밀한 종합대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자기들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보석처럼 귀한 아이를 가방에 가두어 죽이고, 손가락 발가락을 지지다니….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씻고 싶다. 짐승들도 그렇겐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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