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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년에 야마토왜가 가야를 점령했다고?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특별전 연표
‘일본서기’ 못쓰고 ‘서기’라고 모호하게 표현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왜에 조공 바쳤다’
‘369년에 야마토왜가 신라를 공격하고
가야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 등등
일본서기의 조작된 내용 버젓이 인용

일본고대사 전공 도쿄대 이노우에 미즈사다
“신공왕후의 신라 정벌은 사실이 아니다”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3>
임나일본부설은 극복되었나 ②

 

세상 바뀐 줄 모르는 강단사학계


추미애 법무장관은 6월 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던 ‘초선의원 혁신포럼’에 참석해 현 검찰의 행태를 질타하면서, “해방이 돼 전부 태극기 들고 나와서 ‘대한민국 독립만세’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일제 경찰 불러서 신고해야 한다고 하는 건 시대 흐름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비판은 한국 강단사학계에 적용하면 더 정확하게 들어맞는 말이다. 남한 강단사학계는 75년 전에 일제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아직도 조선총독부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역사관을 교리로 신봉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학계를 완벽하게 장악한 채 학문의 외피를 입고 자신들과 일본 극우파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국민들을 호도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수많은 사례 중의 하나가 2019년 12월 3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이 개최했던 ‘가야본성(本性)’이라는 제목의 가야 특별전이었다. 

 

역사서 이름은 왜 축약했나?


‘가야본성’이란 이름 자체가 일본식인 것은 둘째치고 이 가야특별전의 연표는 ‘369년’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고 써놓았다.


“369년 가야 7국(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음(서기)”
369년에 백제가 왜와 연합해 가야 7국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서기’라는 역사서에 나온다는 것인데, 서기는 어떤 역사서일까?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근초고왕 30년(375)조의 끝에 “이때  박사 고흥(高興)을 얻어서 비로소 ‘서기’를 갖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에 ‘서기’라는 역사서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박에서 이 사라진 ‘서기’를 찾아서 인용한 것일까? 그럴리는 없다. 국박 연표의 ‘서기’란 일본극우파들의 성서인 ‘일본서기’를 뜻한다. 여기에 남한 강단사학계의 고민이 있다. 속으로는 ‘삼국사기’를 부인하고 일본 극우파들의 성서인 ‘일본서기’를 신봉하지만 겉으로까지 ‘일본서기’만 믿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기’라고 모호하게 표현해 관람객들을 혼동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애꿎은 다른 사료들도 제 이름대로 쓰지 못하고 ‘삼국사기’는 ‘사기’, ‘삼국유사’는 ‘유사’, ‘동국여지승람’은 ‘승람’으로 모호한 이름으로 바꿔썼다. 아비를 아비라고 부르지 못해서 ‘일본서기’라고 쓰지 못하고 ‘서기’라고 써야하는 남한 강단사학계의 슬픈 자화상이다.

 

366년에 백제가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쳤다?


‘가야본성’은 366년에 ‘가야 탁순, 백제와 왜의 교류 중개(서기)’라고 써놓았다. 이  ‘서기’도 물론 ‘일본서기’를 뜻하는 것인데, 이는 근현대사로 비유하면 1910년에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5년 전인 1905년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았다고 적은 격이다. ‘일본서기’는 야마토왜의 신공(神功)왕후가 재위 46년(366)에 ‘사마숙녜’를 탁순국에 사신으로 보냈다고 말한다. 이 탁순국에 대해서 남한 식민사학자들은 대구라고 주장한다. 탁순국왕은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2년 전 백제에서 사신을 보내 ‘귀국(貴國) 일본(日本)’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는데 자신도 길을 몰라서 가르쳐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마숙녜는 종자 이파이(爾波移)를 백제에 보냈다. 그러자 백제의 초고왕(肖古王)은 이파이에게 철정(鐵鋌, 덩이쇠) 40매와 비단 등을 주면서 “우리나라에는 귀중한 보물이 많아서 귀국(貴國)에게 바치고 싶은데 길을 몰라서 따르지 못합니다. 지금 공물로 헌납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왜의 사신 사마숙녜도 아닌 그 종자에게 철정 등을 바치면서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치고 싶다고 간청했다는 것을 ‘가야 탁순, 백제와 왜의 교류중계’라고 써놓은 것이다.

 

국가도 아니었던 야마토왜에 조공?


그런데 ‘일본서기’의 이 기사가 조작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사에 벌써 일본(日本)이란 나라가 나오지만 366년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왜(倭)가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바꾸었다”라고 말하고 있고, 중국의 ‘신당서(新唐書)’도 같은 해 “왜(倭)라는 이름을 싫어해서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이란 국호는 670년에 생겼는데, ‘일본서기’는 366년에 ‘일본’이란 나라가 있어서 백제에서 조공을 바쳤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역사학자 김석형은 야마토왜는 6세기 초에야 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4~5세기에 야마토왜는 아직 고대 수도인 나라(奈良)가 아닌 북큐슈에 있던 때로서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김석형, ‘초기조일관계사(하)’) 일본학자들도 극우파를 제외하고는 김석형의 이 견해에 대체로 동의한다. 실제로 야마토왜는 6세기까지 철 생산능력도 없었으므로 국가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군사 강국인 백제  근초고왕이 국가도 아닌 왜에게 철정 등을 바치면서 ‘계속 공물로 헌납하고 싶다’고 했다는 ‘일본서기’의 조작된 내용을 국박에서 연표에 버젓이 인용한 것이다. 

 

369년에 가야7국이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았다?


과연 국박 연표대로 369년에 가야7국은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았을까? 먼저 ‘삼국사기’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삼국사기’는 369년 9월 고구려 고국원왕이 2만 군사로 공격하자 백제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에게 군사를 주어 5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11월 근초고왕이 한수 남쪽에서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했는데, 모두 황색 깃발을 사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황색 깃발은 황제의 깃발을 뜻한다. 즉 ‘삼국사기’는 369년에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와 싸워 승리를 거두고 황제의 깃발인 황색깃발을 사용하며 대대적으로 군사를 사열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럼 ‘일본서기’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일본서기’는 말은 장황하지만 6하 원칙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핵심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서기’는 369년에 신공(神功) 왕후가 아라타와케(荒田別)·모쿠라콘지(木羅斤資) 등에게 군사를 주어 “탁순에 집결해 신라를 공격해 깨트리고, 비자발·남가라·탁국·안라·다라·탁순·가라 7국을 평정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이 일본 극우파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가야정벌 기사이자 임나일본부 설치 기사이다. 공격한 곳은 신라인데 정벌당한 곳은 가라 7국이라는 황당한 내용의 기사이다.

 

누가 거짓인가?
‘일본서기’는 신라를 공격하고 가라 7국을 점령한 야마토왜군이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서 남쪽 오랑캐인 ‘침미다례’를 도륙해서 백제에게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자 백제의 초고왕과 왕자 귀수가 왜인들과 고사산(古沙山)에 올라 신공왕후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국박의 눈에 ‘백제·왜 연합’ 결성이라는 것이다. ‘일본서기’는 내용이 뒤죽박죽이고, 이를 추종하는 대한민국 국박의 설명도 뒤죽박죽이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서기 369년에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를 마음대로 휘젓고 다녔고 가야를 식민지로 삼아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박이 추종하는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가야 7국은 ‘비사벌,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가야를 7국으로서 나라 숫자도 다르고 그 이름도 ‘금관·아라·고령·대·성산·소가야’로 아주 다르다. ‘일본서기’의 가라 7국을 ‘삼국유사’의 가야 6국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구려군을 격퇴하고 황색깃발을 사용하며 군사를 대대적으로 사열했다는 ‘삼국사기’의 근초고왕과 야마토왜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는 ‘일본서기’의 초고왕이 같은 인물일 수 있을까?


두 기사 중 ‘일본서기’가 거짓이라는 것은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쉽게 알 수 있다. 369년에 야마토왜는 국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본고대사를 전공한 도쿄대 이노우에 미즈사다(井上光貞, 1917~1983)는 “4세기의 조선 문제의 초점은 남한의 변한 지역의 확보인데, ‘기기(記紀:일본서기·고사기)’에서 말하는 신라는 아직 조연이었다”면서 “따라서 신공 황후의 신라 정벌은 사실이 아니다(‘日本の歷史, 第1券 神話から歷史へ’)”라고 말했다. 신공왕후의 신라정벌이 사실이 아니라면 ‘신라를 공격해 깨트리고 가라 7국을 점령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입론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여전히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신봉하고 있고, 어느 틈에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국민 세금으로 임나일본부설을 버젓이 전시하게 된 것이 광복 75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덕일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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