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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류석춘’은 틀렸다

 

인도의 경면왕이 장님(시각장애인)들을 모아 코끼리를 만져보게 했다. 그리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각자 말해보라”고 물었다. 그러자 상아를 만져본 이는 ‘무’, 귀를 만져본 이는 ‘키(곡식 까부는 도구)’, 코를 만져본 이는 ‘절굿공이’, 배를 만져본 이는 ‘항아리’, 꼬리를 만져본 이는 ‘새끼줄’ 같다고 대답했다. 불교 경전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군맹무상(群盲撫象) 이야기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라는 말의 연원이다. 


일제강점기라는 불행한 역사를 겪은 우리에게는 그 참혹한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규정하고 평가하는 학설들이 있다. 그 중에도 소위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그 역사관에다가 모든 역사적 견해를 꿰맞추는 편협한 학문 양식이 존재한다. ‘식민사학(植民史學)’과 ‘식민지근대화론(植民地近代化論)’이 바로 그것이다. 


식민사학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 친일학자들이 해방 후 주요 대학 역사학과와 역사편찬위원회 등 역사 관련 국가기관, 중등국사 교원양성소까지 독점해 장기간 축성한 망국의 친일사학이다. 이른바 ‘강단사학자’로 통칭하는 그들은 해방 후 지금까지 오랫동안 독점해온 조직과 나라의 자금으로 민족사학의 씨를 말렸다. 민족사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는 석사학위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야박했다.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도록 한 또 하나의 축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이 논자들은 멍청하게 나라를 잃은 고종을 비롯한 조선왕조를 맹비판하는 것으로 공감대를 넓힌다. 그런 다음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비로소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관점을 주축으로 일본의 침략을 끊임없이 미화한다. 


심지어는 2차대전 종전 후 일본 정부와 민간인들이 이 땅에 놓고 간 재산이 1946년 가격으로 52억 달러를 넘어서 한반도 총재산의 85%에 달했고, 그중 22억 달러가 남한에 있었다는 논리로 일본이 우리에게 한일청구권 협상으로 준 3억 달러가 적은 돈이 아니라는 주장마저 펼친다. 독도에 대해서도 갖가지 해괴한 논리로 일본 땅이 맞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도대체 남의 나라를 집어삼킨 폭거를 정상적인 거래나 근대화의 시혜로 여기고, 수탈을 자행하다가 패망하여 도주한 일본의 재산을 우리의 부채쯤으로 생각하는 그들은 도대체 어떤 뇌 구조를 지니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그들이 위안부의 역사를 끊임없이 왜곡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반향을 일으킨 ‘반일종족주의’라는 책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들 친일 인사들은 일제강점기에 치밀하게 운영된 악랄한 위안소나 징용을 놓고 온갖 궤변들을 동원해 일체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언행들을 하염없이 지어내고 있다. 강의 도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징계를 받았던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이번엔 일본 극우 성향 잡지에 똑같은 기고문을 싣는 대형사고를 쳤다. 


류 교수는 일본 시사 월간지 ‘하나다(hanada)’ 8월호에 기고한 장문의 글에서 그동안 겪은 일들을 시시콜콜 일러바쳤다. 이 글에서 류 교수는 또다시 일제강점기를 “근대화가 진행된 시기라는 해석도 공존하고 있다”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앞세웠다. 이어서 “식민지배를 받은 기간이 매우 짧고 (중략) 그래서 한국은 일본을 더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유산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사코 위안부나 징용 강제동원을 자발적 취업이었다고 미화하는 류석춘의 논리는 너무나 경박하다. 취업의 기회라는 사탕발림으로 굶주린 식민지의 딱한 인민들을 으르고 유혹해서 데려다가 위안부를 만들거나 강제노동에 투입한 일을 임금 몇 푼 준 기록들만 갖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연구하여 ‘자발적’이라고 포장하여 우기는 게 무슨 오묘한 학문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그렇게 종군위안부로 징용공으로 끌려간, 또는 제 발로 간 조선인들에게 자기 의지대로 아무 때나 돌아올 자유가 있었는가. 거기에서 처절한 삶을 살다가 죽고만 그 많은 영혼은 또 어떻게 설명할 텐가. 연세대학교 강의실에서 학생들 정서에 전혀 맞지 않는 궤변을 학문으로 포장해 내뿜다가 사달이 난 일을 일본 극우 잡지에다가 고자질하는 구상유취(口尙乳臭)한 한 외눈박이 사회학자의 용렬한 모습은 참으로 깊은 서글픔을 남긴다. ‘류석춘’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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