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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사이다’ 리더십

 

‘사이다’는 대표적 무색 탄산음료다. 예전엔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갈 적에나 맛보던 귀한 마실 거리였다. 처음에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사과술을 뜻했던 사이다는 1853년 영국 해군에 의해 일본에 전래됐다고 한다. 1868년 영국인 노즈 안드레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복합향료를 사용한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의 제품을 개발했고, 1905년 고종 광무 9년에 우리나라에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다.


지방선거 TV토론회에서 ‘친형 강제입원’ 의혹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재명 경기지사의 비상(飛翔)이 범상치 않다. 이 지사는 각종 정치현안에 대해 특유의 ‘사이다’ 발언을 시리즈로 내뿜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에 대권 잠룡 선호도에서 장기간 1위 자리를 굳혀왔던 이낙연 의원을 오차범위 안까지 따라붙고 있다.


20일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전국 성인 1천 명에게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이낙연 의원은 23.3%, 이재명 지사는 18.7%로 각각 집계됐다. 둘의 선호도 격차는 4.6%포인트로, 이 지사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이 의원의 지지율에 오차범위 안으로 근접한 셈이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재명 지사의 거침없는 이슈파이팅 스타일이 만들어낸 변화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대법원 판결이 임박한 시기에 ‘고위 공직자 부동산 백지 신탁제’(지난 5일), ‘장기공공임대주택 확대’(지난 6일), ‘기본소득토지세 도입’(지난 9일) 등 부동산 정책들을 쏟아냈다. 이중 ‘백지 신탁제도’는 지난 17일 민주당 신정훈 의원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는 정부가 해법을 찾지 못해 진땀을 흘리고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부터 소신 발언을 터트렸다. 이 지사는 “비싼 집에 사는 게 죄를 지은 건 아니지 않냐. 평생 한 채 갖고 잘살아 보겠다는데 집값 올랐다고 마구 때리면 안 된다”면서 “실거주 1주택에 대해서는 오히려 필수재라는 걸 인정하고 세율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정이 검토해오던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서도 “그린벨트를 풀어 아파트를 신축하자는 것은 역대 최대 ‘로또 아파트’로 투기 광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대안으로 “도심 재개발, 도심의 용적률 상향 등으로 푸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소위 ‘안·이·박·김’의 저주를 확실히 끊어낸 활기찬 언동이 당당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재명 지사의 승부 근성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선 공천 여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논란 속에서 극명하게 발휘되고 있다. 당헌·당규를 고쳐서라도 후보를 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장사꾼도 그렇게는 안 한다”며 반대 소신을 완강하게 쏟아냈다. “정치인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장사꾼도 신뢰를 유지하려고 손실을 감수한다”는 게 논지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이재명 지사의 발언에 딴죽을 걸고 나왔다. 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 지사를 향해 “지금 시기에 ‘혼자 멋있기 운동’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며 “동지들을 먼저 살피라”고 직격했다. 이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공직이란 동지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이라면서 “동지가 국민을 배반했을 때는 그자를 쳐내야 한다. 그게 안 되는 품성이라면 조폭을 해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재명 지사의 돌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를 통틀어서 국민이 원하는 말을 그만큼 솔직담백하게 해주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남다른 직관과 타이밍을 읽는 감각, 핵심을 뚫는 의제설정 능력, 좌고우면하지 않는 용맹한 직언 기질에 이르기까지 이재명 지사의 언동은 코로나 위기와 경제난에 찌든 국민에게 영락없이 달고 시원한 한 모금 ‘사이다’다.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탄산이 날아가면 그냥 설탕물로 변하는 ‘사이다’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대처해낼 수만 있다면 그의 ‘사이다’ 리더십은 당분간 더 휘황하게 빛날 것이다. 그의 활약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조금이라도 진화되는 기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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