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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 양약(良藥)은 쓰다

  • 안휘
  • 등록 2020.08.26 05:59:46
  • 16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서식하는 들쥐 레밍(Lemming)은 이따금씩 떼 지어 달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집단자살 행태로 유명하다. 이들의 행위는 당초 왕성한 번식력으로 순식간에 늘어나는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이성(理性) 행위로 해석됐다. 임신 기간은 20일, 한꺼번에 낳는 새끼 수가 2~8마리에 출산 후 두 시간이면 다시 임신이 된다. 그러나 학자들의 본격 연구로 ‘지독한 근시’와 ‘떼거리 본능에 따른 과속 질주’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사불란(一絲不亂)은 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만장일치(滿場一致) 역시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성의 보장에 있다. 다양성을 슬기롭게 소화해내는 방법으로 인류는 민주주의를 고안해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곧 민주주의다. 때로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만, 논리적 설득 과정을 통해서 구성원들을 성장시키고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의 특장점이다.

 

불명예스러운 탄핵의 역사를 만들어낸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일사불란의 정치, 배제의 정치, 독식의 정치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지난 2015년 2월 초 당시 여당의 원내대표 유승민은 국회 대표연설에서 “134.5조 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고백했다. 이 연설에는 이례적으로 야당까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 발언을 역모로 여겨 끝내 유승민을 찍어냈다.

 

협애한 아량의 극치를 보여줬던 이 사건의 뒤끝은 결과적으로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무참히 끌려 내려오는 치욕스러운 탄핵 비극의 서막으로 회자된다. 이 사건은 건전한 비판 의식을 배신으로 몰아붙이는 병든 권력의 말로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가 됐다.

 

그런데 이 참담한 비극이 가져다준 절호의 기회로 정권을 잡은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이상한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뜻밖이다. 당의 건강성을 걱정하는 일부 소신파들을 소화하지 못하는 옹졸한 파열음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당하는 정치인들은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조금박해) 등으로 대표된다. 그들의 언행을 겨냥한 친문 지지자들의 표독스러운 칼질들이 가장 문제다.

 

현안마다 소신 발언을 해온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행 중인 전당대회를 ‘3무(無) 대회’라고 정직하게 비판했다. 조 의원은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니 우리들만의 리그가 되고 그러니 ‘논쟁’이 없다. ‘논쟁’이 없으니 차별성이 없고 ‘비전’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말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몸은 과거사와 검찰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당의 이중잣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민주당 당원들은 거칠게 반응했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미통당(미래통합당)으로 가라”, “조응천을 제명해야 한다”, “조응천 쓰레기” 등등의 글이 100개 이상 달렸다. 익명을 요구한 일부 국회의원들도 “돌출행동을 해서 혼자 튀려 한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태섭 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 기권표를 던진 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후렴 보복을 당했다. 용기 있게 당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박용진 의원과 김해영 전 의원도 소신을 밝힐 적마다 조응천 의원과 유사한 봉변을 당하고 있다. 다른 의견을 낸다고 쥐어박고 내치는 행태를 어떻게 건강한 민주주의라고 불러줄 수 있나.

 

1876년(고종 13년) 2월 강화도에서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면암 최익현(崔益鉉)은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나타났다. 차라리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치라며 밝힌 그의 병자지부소(丙子持斧疏)는 일제의 국권침탈과 잔혹한 강점기 통치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러나 면암은 매국 간신들의 농간으로 전라도 흑산도에 3년간이나 위리안치되었다. 그리고 고종의 조선은 곧바로 망국의 지름길로 치달았다.

 

입에 쓴 약이 모두 명약은 아니다. 그러나 대개의 양약(良藥)은 입에 쓴 법이다. 혀끝의 감각만으로 약의 진가를 예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하물며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가벼워서야 말이 되나. ‘일사불란’은 민주주의의 반대편에 있고, ‘만장일치’는 전체주의를 부르는 악마의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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