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와 한강을 잇는 경인아라뱃길 서쪽 끝에 이르면 인천 정서진이 나온다.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정동 쪽에 있는 강릉 ‘정동진’에 대칭하는 개념으로, 지난 2011년 아라뱃길 개통과 함께 노을과 낙조(落潮) 명소로 조성된 곳이다.
새해 첫 날이면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에 많은 인파가 몰리듯 이곳에서는 매년 12월31일, 묵은 한 해를 보내는 해넘이 행사가 열려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정서진파출소는 아라뱃길 정식 개통 전인 2011년 10월24일 문을 열었다. 당시 이름은 ‘청라파출소’였다. 이후 2014년 세월호 사고로 ‘정서진 해양경비안전센터’로 개칭됐다가 다시 2017년 7월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정서진파출소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경찰이 아닌 해양경찰청(인천해양경찰서) 소속이다. 아라뱃길 개통 당시 해경과 경찰은 이곳 관할권을 놓고 다툼을 빚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라뱃길을 ‘바다’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일반 강이나 호수와 같은 ‘내수면’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였다. 바다는 해경이, 내수면은 경찰이 각각 관할권을 갖기 때문이다.
해경은 아리뱃길 특성상 항만(경인항)과 수로의 기능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에 선박 검색 검문과 각종 해양 사고 대처에 전문성이 있는 자신들이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갑문 바깥에서 발생하는 해상 사고 외 갑문 안쪽 지역까지 해경이 맡는 것은 맞지 않다며 맞섰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수로 내에서 사망하거나 발견된 변사체 수습은 일반 경찰이, 그 외 선박과 관련해 발생하는 충돌이나 화재, 해양 오염 사고 등은 해경이 담당하는 걸로 업무 분담이 이뤄졌다. 또 자살 시도자 구조 등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사건·사고의 경우 경찰과 해경, 소방 3개 기관이 함께 대처한다.
현재 정서진파출소에는 조용국 소장과 의경 2명을 비롯해 총 12명의 직원이 일일 3교대로 근무를 하고 있다. 지상 순찰을 위한 순찰차 1대와 경비함정 단정을 개조한 연안구조선과 고무보트 각각 1대씩 그리고 선박 기름 유출 사고 등을 대처하기 위한 오일 펜스 등의 장비를 갖췄다.
조 소장은 “정서진 파출소와 같은 치안 수요 등급(C급)을 가지고 있는 경우 보통 20명 정도가 근무하는 것이 맞지만 최근 어선안전조업법 시행 등으로 해경이 맡는 업무가 확대되면서 조직 전체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각 500마력과 900마력 보트를 보유하고 있는 육경 아라경찰대나 119 소방센터에 비해 장비도 다소 열악한 편”이라고 말했다.
해경은 아라김포여객터미널 인근에 있는 김포파출소와 정서진파출소 두 개로 아라뱃길를 관할한다. 김포파출소가 관할하는 범위는 한강으로 나가는 한강갑문서부터 검암역 인근 시천교서까지고 정서진파출소는 시천교서부터 서쪽으로 서해 갑문과 그 바깥에 있는 세어도와 영종대교 중간 위치 정도서 보이는 운염도까지다. 전체 면적으로 약 20㎢ 정도다.
세어도와 운염도는 각각 46명, 6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유인도(有人島)이기도 하다. 조 소장은 “3톤 이내 소형 선박이나 그보다 더 작은 선외기(船外機)로 조개나 바지락 등을 캐는 영세한 어민들이 대부분”이라며 “이들 섬 주민들이 내륙으로 나올 때 이용하는 인천 서구 행정선인 정서진호의 안전관리와 입출도 하는 인원 점검 검사 등도 우리가 맡은 업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중단됐지만 이전에는 일반 승객도 하루 20명씩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아 정서진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지난해 이 배를 이용한 승객은 약 5000명에 이른다.
경인항 앞 가로 약 1㎞, 세로 약 500m 규모의 직사각형 수역에서 이뤄지는 각종 해양 레저활동 안전관리도 정서진파출소가 맡은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인천조정협회와 해경 체육단, 한국해양소년단 인천연맹 등이 이곳에서 조정과 카약 체험 및 훈련을 한다. 지난해 인천조정협회는 총 55차례 누적 1857명이 조정 훈련을 했고, 또 한국해양소년단 인천연맹이 주관하는 카약 체험을 하기 위해 5000명 가까운 인원이 이곳을 찾았다.
이처럼 아라뱃길을 이용하는 선박보다는 자전거족과 행락객, 해양레저 등을 즐기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지면서 정서진파출소의 주 업무도 익사 사고 방지와 인명 구조 등에 맞춰졌다.
또 아라뱃길에서 발생하는 자살 사고 대처 업무도 주 업무가 됐다. 인천해경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아라뱃길에서 발생한 선박 구조 사고 건수는 11건이었으나 자살 기도자 사고 건수는 39건에 달한다. 지난 2월 중순 경에는 정서진 파출소 직원들이 시천교와 목상교 중간 부근을 해상 순찰 중 변사체를 발견해 인양하기도 했다.
조 소장은 “이제 겨우 2년차 밖에 되지 않은 여경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며 “그래도 유가족이 파출소에 찾아와 시신이라도 찾아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해서 마음 아프면서도 보람을 느낀 인상 깊었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10일 박남춘 인천시장도 당시 코로나19로 외부 일정 대부분을 취소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해양경찰의 날이자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정서진파출소를 방문해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격려했다. 전체 14개 아라뱃길 다리 중 자살 시도가 가장 많은 시천교를 자살 방지 다리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조 소장은 인터뷰 중 여러 번 “정서진파출소는 다른 곳에 비해 그나마 업무 강도도 많이 높지 않고 치안 수요도 덜 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해경은 바다 위의 작은 정부 기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업무를 맡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일반 경찰이나 소방에 비해 시민들에게 덜 알려져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 소장은 주말이면 주차할 곳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정서진을 방문하는 점을 활용해 앞으로 여건이 된다면 정서진파출소를 해경 홍보의 미니 센터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비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조 소장에게 정말 정서진의 노을이 아름답냐고 물었더니, “저녁에 퇴근하면서 영종대교에 걸쳐서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조 소장은 “금지 구역임에도 최근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인천 = 유희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