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평택역에 들어선 ‘김진숙 희망 뚜벅이’ 행렬 100여 명은 쉬지 않고 걸어온 한 달이라는 시간만큼 더 굳건하고 결집된 모습이다. 그 안에 희끗한 머리 위에 패도라를 쓴 작은 체구의 여인의 밝은 표정이 유난히 눈에 띈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61)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지지자들은 지난해 12월 30일 김천역에서 청와대까지 자신의 복직 촉구를 위한 도보행진에 나섰다. 3명으로 시작한 행렬에는 한 달이 지나 평택역에 다다른 현재 100여 명이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복직과 한진중공업의 투기자본 매각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각계각층에서는 이들에 힘을 싣고 있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3명이 단식을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 ‘리멤버 희망버스 기획단’은 촛불집회와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지난해 9월 ‘김진숙 복직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들의 염원은 단 하나, 김진숙 지도위원의 복직이다. 유방암 투병 중에도 항암치료도 포기한 채 해고자의 신분이 되어 뚜벅뚜벅 도보행진을 할수 밖에 없는 사정, 수많은 노동계와 인권단체, 시민들이 그를 돕고 있는 이유를 찾으려면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지도위원은 21살이던 1981년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 이후 1986년 2월 당시 노조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홍보물 150여 장을 배포한 일로 5년 만에 해고됐다. 당시 김 지도위원은 부산시 경찰국 대공분실에 연행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고문 등 국가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해고자가 된 뒤에도 김 지도위원은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의 처지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과 지난해 “김진숙의 해고는 부당하다”라고 판정해 복직의 기회가 있기도 했으나 다른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앞서 요구하며 미뤘다.
2011년 1월 6일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에 맞서 영도조선소 안의 높이 35m에 이르는 85호 크레인에 올랐고, 같은 해 11월 10일까지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일은 누리꾼과 시민들은 어마어마한 지지를 끌어냈다. 시민들은 그를 응원하려고 ‘희망 버스’를 만들어 여러 차례 현장을 향하기도 했다. 어렵게 한진중공업 노사가 합의함에 따라 크레인에서 내려왔지만, 그는 여전히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인 채였다.
지난해 6월 정년을 6개월 앞두고 김 지도위원은 다시 복직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김천역에서 ‘김진숙 희망 뚜벅이’ 도보행진도 시작해 경기지역을 거쳐 다음달 7일 청와대에 도착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민주노조와 조합원이 있는 곳으로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며 “지난 36년 동안 복직하겠다는 꿈을 포기한 적은 없다. 이제는 마지막 해고자인 내가 영원한 해고자가 되지 않기 위해 힘을 내겠다”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노해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