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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의 관규추지(管窺錐指))] 무능을 반성하고 민심을 두려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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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래불사춘

지난 주말, 모처럼 바깥나들이 했다. 쥐똥나무꽃이 예쁘게 피어 발갛게 져버린 벚꽃의 아쉬움을 덜어주었고, 연둣빛 신록이 어지간한 꽃무리보다 나았다. 하지만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더러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고, 기온마저 뚝 떨어져서 제법 추웠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해야 했다. 동행이 죄다 춘래불사춘이라 한탄하니, 왕소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조용히 힘을 기르자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가 시진핑의 주동작위, 일대일로로 바뀌면서 힘을 뽐내고 있다만, 고래로 중국 한족은 외래 민족과 전쟁만 하면 졌다. 오죽하면 북쪽 사람에게 졌다(敗北)는 말이 관용어로 굳어졌을까. 한나라 원제 시절, 강성한 흉노족과 화친을 맺고자 후궁 중 한 명을 골라 시집을 보내는데, 이때 뽑힌 사람이 왕소군이다. 북방으로 끌려가야 하는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비파를 연주했는데,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미모에 홀려 날갯짓하는 것을 잃어버려 그만 땅에 떨어졌다는 경국지색이다. 후일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그녀를 기려 지은 시에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나온다. 나라를 지킬 변변한 장수 한 명이 없어, 가녀린 여인을 공물 삼아 화친을 맺어야 하는 한나라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하긴 미인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역대로 북방 민족에게 조공을 바치고, 군신의 예(중국이 신하)를 맺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2. 그들의 분노

보궐선거 결과를 받아든 우리 마음도 얼어붙기는 마찬가지다. 언론 때문에 졌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낭자한데, 말은 제대로 하자. 이번 선거는 진보진영,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그리고 586세대 때문에 졌다. 문재인 정권은 치솟는 집값과 LH 사태로 대변되는 공정성 문제로 분노한 청년 세대, 전면전으로 확대되기 직전처럼 보이는 청년층의 남녀 성별 갈등, 일베와 태극기 부대, 극우 개신교 집단을 다루는데 무능했다. 민주당은 한결같이 지리멸렬했다. 예컨대 조국의 검찰개혁과 계급 갈등, 절차적 공정성이 서로 배치되는 가치가 아닌데, 그것을 뒤섞는 조중동에 놀아났다. 그리고 우리 자신, 586들은 80년대 당시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그 사실 하나로 자신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뒤로 공부도 하지 않고,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도 못했다. 한때 민주와 평등 같은 거대담론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전체주의와 병영문화, 남성우월주의라는 구세대적 사고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기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정부는 무능했고, 민주당은 무능에 부패를 더했으며, 우리는 민주와 개혁을 말로만 주창한 죄가 있다. 절망한 청춘은 그런 우리를 표로 심판했다. 전두환 노태우를 몰아내자던 우리의 분노는 숭고했고, 문재인과 조국을 저주하는 그들의 분노는 언론에 조작당한 철부지들의 투정에 불과한가? 보궐선거 뒤로 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여론조사가 20%나 높게 나온 걸 두려워해야 한다. 프랑스 사회당은 68혁명 세대가 청춘일 때 14년 집권한 뒤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정권을 우파에게 내주고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기성세대에게 분노한 청년들이 결선투표에 오를 자격조차 안 주기 때문이다. 좌파 최고 지성들이 눈물을 머금고 우파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진풍경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흉노족 왕자에게 시집을 간 왕소군은 한족과 흉노족 사이를 잘 중재해서 그뒤로 80년 동안이나 평화가 지속됐다. 한참 젊은 32살에 죽어 대흑하에 묻혔는데, 다른 곳 풀이 시들어도 그녀 무덤은 언제나 푸르러 청총이라 불렸다. 춘래불사춘이라는 그녀가 스스로 언제나 푸르른 봄이 되었다. 우리는 민주와 평등, 통일을 일삼아 노래했다. 그러려면 냉정하게 우리를 반성하고, 돌아선 민심을 두렵게 여겨야 한다.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과두독점 정경유착세력과 구체제를 무너뜨리려면, 우리는 앞으로도 80년은 더 집권해야 한다. 간악한 조중동에 놀아나는 철부지 청춘들을 한탄하다 정권을 넘길 것인가, 제대로 반성하고 노력해서 기어이 정권을 지킬 것인가. 만일 과거와 같은 나이브한 판단으로 정권을 넘긴다면, 우리에게 봄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