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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고성(孤聲)] 어느 민족주의자의 죽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노선을 두고 갈라졌던 항일단체들은 이념 면에 있어서만은 삼균주의라는 정치이데올로기로 통합되어 있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주의 그리고 교육의 균등을 주장하는 삼균주의는 좌우의 독립운동단체들 대부분이 해방된 조국에 적용될 민족주의 정치이념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삼균주의를 만든 이는 임시정부의 외무부장으로 활동했던 우국지사 조소앙이었다. 그는 이미 임정의 헌법을 만들고 해방된 조국의 미래상으로 건국강령을 작성한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해방 후 백범과 함께 귀국한 조소앙은 분단정권이 아닌 통일민주정부수립에 나셨다, 반탁운동과 죄우합작운동 등 그는 시종일관 임정을 대표한 민족주의자였다. 특히 1948년 4월의 남북협상은 분단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민족운동의 몸부림이었다.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협상에는 임정세력과 함께 당시 가장 나이 어린 조만제(서울 상대 3년)가 삼균주의학생동맹 위원장으로 참석했다. 조만제는 조소앙에게 감명해 그의 삼균주의 노선을 따른 열혈 청년이었다. 남북협상팀은 나름의 성과를 가지고 귀환했지만 이미 냉전적 세계질서가 형성된 뒤라 허망한 결과를 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북협상이 강조되는 것은 아무리 엄혹한 국제질서에서도 우리의 자주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북에 각기 단독정부가 들어선 모습을 보면서 임정의 요인들이 가졌던 좌절감은 얼마나 컸을까. 분단극복을 위해 노력하던 백범이 49년 5월 암살되고 말았다. 임정 요인들 대부분도 신변의 위험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조소앙의 지시로 삼균주의청년동맹을 만들어 통일정부수립운동을 하던 조만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그해 9월 일본으로 밀항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대 경제학부에 편입한 그는 53년 졸업했지만 귀국할 수 없었다. 이승만의 적대세력으로 판단된 그의 입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귀국한 것은 4·19 혁명 이후였다.

 

납북되었던 소앙의 죽음 소식은 청천벽력이었지만 그는 스승이 남긴 삼균주의 실현운동은 계속해야 했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바탕한 개인의 균등 그리고 민족의 균등, 국가 간의 균등이 이루어지는 이상사회는 스승의 염원이자 그의 지상과제였다. 엄혹한 독재정권하에서도 그는 이 땅에서 삼균주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 75년 개천절을 기해 수립된 삼균학회는 그 첫 결실이었다. 학회의 이름으로 출범해야 할 정도로 삼균주의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남에서는 사회주의이념으로 북에서는 자유주의이념으로 잊혀진 사상이 된 삼균주의이지만 여전히 통일이데올로기로서의 가치는 살아있다.

 

그런 조만제 선생이 지난 9일 9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남북협상에 참여한 마지막 생존자이자 평생을 삼균주의가 실현된 사회를 만들기에 바친 그는 이 땅의 진정한 민족주의자였다. 헌법에 있는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막무가내로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극우파들이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우리 헌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조만제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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