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복지정책이다, 경제정책이다 논란이 많다. 기본소득이 어떤 정책이든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기본소득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이, 어느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개인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는 것’에 있다. 기본소득 지급에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궁극적 목적, 즉 ‘모든 국민이 온전하게 개인의 삶을 영위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남은 것이 하나 없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많은 부러움을 사는 국가가 됐다. 그 부러움의 원천은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푸드 등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 기저에는 대한민국의 우수한 사회 시스템이다. 치안이 잘 갖춰진 안전한 나라, 아플 때 쉽게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 교통이 편리하고, 물과 전기 등 기반시설이 잘 돼있는 나라, 어디나 깨끗하게 유지되고 국민이 질서를 잘 지키는 나라 등 대한민국의 우수한 사회 시스템이 문화의 힘을 만나 빛을 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은 빠른 시간내에 사회가 원활하게 운용될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을 훌륭하게 갖춰냈다.
한 나라를 선진국이라 할 때 그 기준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땅이 넓거나, GDP 커서 국가가 부유하다고, 또는 1인당 국민소득이 높다고 선진국이라 하지는 않는다. 중국, 인도, 러시아를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개인이 온전한 삶을 영위하는데 불편하지 않은 나라를 선진국이라 한다.
도로, 상하수도, 항만, 학교, 병원, 공원 등 사회기반시설은 국가 경제, 사회, 문화 활동의 기반이 된다. 그래서 국민의 삶을 걱정하는 정상적인 국가는 가능한 한 사회기반시설을 잘 갖추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우선 순위에 대한 논란은 있겠지만 국가 재정 여건에 맞춰 사회기반시설을 만드는 것에 누가 비난을 하겠는가.
기본소득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필수여건을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도로, 상하수도, 항만, 학교, 병원, 공원 등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듯이, 개인이 온전히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개인 인프라를 국가에서 만들어 주는 정책이라 생각한다. 홍수에 대비해 댐, 하수시설을 만들 듯, 개인 삶의 위험을 줄여주기 위한 기반을 조성해주는 정책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자 경제정책이며 SOC 정책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재원 마련이다. 하지만 재원이 마련돼도 그 사용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면 집행되지 못할 것이다.
세금으로 도로를 만드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 인프라가 필요한 지역에 국민이 요청하면, 국가는 필요에 따라 사회 인프라를 설치한다. 당연히 개인의 돈이 아니라 세금을 사용한다. 사회 인프라를 위해 세금을 쓰듯이, 개인 인프라를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세계 1위 노인 빈곤률이나 높은 자살률 등은 일종의 성장 후유증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성장을 위해 민주, 공정, 공평 등의 가치를 일정 정도 희생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독재도 정당화됐고, 일부 재벌의 경제 독점도 용인했다. 일부 국민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희생의 당의정으로 쓰였던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는 구호로만 존재했고, 실제 국민의 삶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잘 사는 사회’가 되기는 했지만 ‘모두가’는 실현되지 못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많은 국민의 희생 위에 이뤄졌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공동 부채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췄다.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세계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국가를 만들었다. 지속적인 발전이 있어야 하겠지만 어느 정도 우수한 사회기반 시설을 갖춘 국가가 됐다.
대한민국이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제 사회 전체를 넘어 국민 개개인의 삶을 튼튼하게 하기 위한 개인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를 갖춰야 힌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의 삶을 온전하게 지켜주기 위한 개인 인프라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모든 도로를 10차선으로 놓지 않듯이, 기본소득 정책도 사람들에게 아주 풍족한 생활을 보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가치는 최소한의 숨통을 터주는 데 있다. 최저 수준일망정 생계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정신적 여유를 갖게 해 주자는 것이다. 최소한의 생계 문제 해결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바라볼 쉼표를 마련해 주고, 더 나은 삶을 찾아갈 의욕을 고취해 준다.
이제 사회에 갓 나온 아무런 기반 없는 청춘에게는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나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주는 것이고, 돈이 되는 작물만을 키우던 농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작물을 키워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며, 외벌이 가장에게 1년에 한 번이라도 가족과 함께 야외로 나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행복을 제공하는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뮤지컬 무대에 서보거나, 목공을 배워 가구를 선물하거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소설을 쓰거나, 기타, 단소 등 악기를 배워 멋지게 연주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일부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쁜 대부분의 사람은 희망사항이나 꿈으로 간직하며 살아간다.
이들에게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사회적 활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며 사회적 활력은 지속적인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기본소득은 매슬로우가 이야기한 욕구 중 맨 밑바닥 욕구를 국가가 시스템적으로 충족시킴으로써, 자기실현의 단계로 나아갈 버팀목으로 작용하게 하는 개인 인프라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