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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휘의 시시비비] ‘독(毒) 우물’이 걱정이다

  • 안휘
  • 등록 2021.10.27 06:00:00
  • 13면

 

 

 

지난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간토(關東)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 수천 명이 일본 자경단 등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사건이 있었어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일어난 비극이었지요. 소문 조작을 동원한 인류의 비극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 무렵, 유대인 박해를 위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뉴스는 여러 차례 동원되었다네요.

 

‘우물에 독(毒) 타기’는 전쟁사에서 오래된 고육책(苦肉策)이에요. 루마니아 지역에 있었던 ‘발라키아’ 공국의 왕 블라드 3세는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쫓기자 후퇴하면서 모든 우물에 독을 풀어 적의 진격을 늦추었대요. 20세기 들어서도 핀란드나 독일군이 적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어요. 수년 전에는 IS가 그 짓을 해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높았지요.

 

요즘 본격화하고 있는 대선전이 사상 유례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가고 있군요. 정치의 품격은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고, 오직 경쟁자를 죽이기 위한 살의(殺意)만이 휘 번뜩이는 위험한 게임이 벌어지는 중이네요. 가장 위태로운 행악은 ‘우물에 독 타기’ 추태예요. 문제를 내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치졸하기 그지없어요.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나라가 결딴나고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드네요.

 

‘우물에 독 타기(Poisoning the well fallacy)’는 논리학에서 다뤄지는 오류 중 하나지요. 어떤 주장에 대한 반론의 유일한 원천(우물)을 교묘한 궤변 기술을 발휘해 비판(독을 뿌림)함으로써 반박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사한’ 전략이에요. 작금 우리 정치권에서 이 치사한 기법이 횡행하는 이유는 ‘확증편향’에 빠진 지지층 비율이 높기 때문이지요.

 

여야, 진보-보수를 불문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내는 이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 돼버렸어요. 우리 편만 선(善)이고 나머지는 모두 악(惡)이라고 단정하는 ‘분별력 마비’ 현상이 판을 치고 있어요. 이건 순전히 정치인들의 책임이에요. 민중을 악랄하게 편 갈라놓고 자기편에만 서도록 만드는 일에 오랜 세월 몰두해왔거든요. 맑은 눈, 엄정한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온갖 사술(詐術)이 넘쳐나고 있어요.

 

‘우물에 독 타기’ 만행으로 죽은 역사 속 무고한 백성들을 기억할 때예요. 대선후보들이 마구 뿌려댄 독극물들은 정적(政敵)들만 골라서 쓰러트리지 않아요. 이제 본선이 시작되면 지저분한 전쟁 양상은 더욱 심해질 게 분명한데, 참으로 걱정이에요. 어리석은(?) 대선 후보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들이 우물에 마구 뿌려대는 이 독극물들, 자칫하면 우리 죄 없는 국민까지 모두 해칠 수 있어요. 제발 좀 자중해주세요. 멀쩡한 국민이 사라진 나라에서 그 알량한 권력 어디에다 쓰려고 그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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