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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섬을 가다 54 - 백령도식 소금 생산방법, 가을리 염전 이야기

 간척 이전 ‘백령도의 지중해’가 있었다. 원래 백령도는 사곶 서쪽 끝뿌리와 남포2리(화동) 동북단 갯창바위 뿌리 사이로 800여m 너비(백령대교 일대)에 해당하는 동서 중앙을 뚫고 서쪽 깊숙이 넓어지면서 소갈동(소가을리)과 잔대동 앞 장골까지 10여 리의 바다 갯골을 이루었다.

 

만조 시에는 수 십리 넓은 대양이 돼 크고 작은 선박들이 자유로이 상류까지 왕래하며 어선들은 낚시와 그물로 고기를 잡았고, 간조 시에는 대평원을 이루는 갯벌이 펼쳐져 각종 패류와 해조류를 채취하던 어장이었다. 또 예부터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던 염벗(鹽盆)이 있어 자염(煮鹽)을 생산하던 곳인데, 황해도에서 소금 생산의 최적지였다.

 

▶ 최상의 염전 조건을 갖춘 가을리

 

첫째 ‘백령도의 지중해’에서 서쪽 가장 끝부분에 해당하는 가을리는 육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가장자리부터 염생습지(salt marsh)→상부 조간대→하부 조간대의 순서로 구성되며, 썰물에 드러나는 얕은 수심의 갯벌이 발달했을 것이다. 따라서 노출이 빈번했던 상부 조간대를 거점으로 염전을 만들었고, 그 면적은 해안가 일대에 상당했을 것이다.

 

둘째 경기만의 임진강, 한강처럼 큰 강으로부터 유입되는 민물이 없어 계절별, 월별 염분농도(salinity, psu)가 비교적 일정했고, 함수(鹹水)를 얻기 위한 풍부한 해수가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자염 생산 방식에는 많은 양의 연료(땔감)가 필요했다. 따라서 업죽산을 비롯해 바다를 둘러싼 인근 야산들은 연료 공급처로서 최적지였고, 조선정부 차원에서 자염군(煮鹽軍) 50명을 배치해 연료를 보호했던 것이다.

 

가을리 염전은 400년 전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지역에 형성됐고, 간척 이전 신화동 개머리 일대를 거쳐 2020년 화동염전까지 이어졌던 것은 아닐까?

 

▶ 자염(煮鹽)이란? 가을리에서의 자염 생산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소금 생산 방법은 지역과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세종실록’에 의하면 “동해는 바닷물로 졸이기 때문에 (갯벌을) 갈아엎어서 조수를 취하는 괴로움이 없지만, 남해로부터 서해까지는 반드시 상현(上弦), 하현(下弦)의 조수가 물러갈 때를 기다려, 세 차례 소를 멍에를 메어 (갯벌을) 갈아서 조수를 취하니, 그 괴로움이 밭 다루기보다 배나 됩니다”라 적고 있어 지역별 차이를 알 수 있다.

 

이 내용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은 예로부터 자염법에 의해 소금을 만들었으며, 1900년대 초반 천일염이 등장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1950년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2010년대 충남 태안에서 자염생산 방법을 복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염(煮鹽)이란 무엇일까? 자염은 햇볕에 말린 갯벌 흙을 이용해 농도가 높은 함수(鹹水)를 채취한 다음 가마솥에 넣고 끓여(구을 자, 煮) 만든 소금(소금 염, 鹽)을 말한다. 가을리 염전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염을 생산했을까? ‘옹진군 향리지’(1996)에는 소금 생산의 단계별 작업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갈자락 만들기’다. 함도가 높은 갯벌을 만드는 과정이다. 바닷물이 잦아들어 함도가 짙은 갯벌 바닥 흙을 소를 대고 쟁기로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갈아엎어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둘째 ‘갈두둑 만들어 갈디리기’다. 첫째 과정에서 갈아엎은 갯벌을 일정한 위치에 두둑을 만들어 물이 빠지지 못하도록 돌아가며 둑을 만들고, 여기에 바닷물을 넣어 함도가 높은 소금물을 우려낸다. 이것을 ‘갈디린다’고 하는 작업이다.

 

셋째 ‘갈우물 만들기’다. 이는 우려낸 진한 소금물을 웅덩이를 만들고 저장하는 과정이다. 갈두둑 옆 가깝게 웅덩이를 파고 참나무와 같은 나무를 베어다 갯벌 웅덩이 안벽에 붙여 단단히 박아 우리를 만든다. 이 우리를 ‘갈우물’이라고 하며, 우려 낸 짠물을 우물에 따로 저장한다.

 

넷째 ‘갈가마에서 소금 만들기’다. 갈가마를 염분(鹽盆) 또는 염부(鹽釜), 소금가마라고 하는데 갈우물에 저장했던 함도 높은 소금물을 솥에다 붓고 불을 때고 졸여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어 낸다.

 

백령도의 제염 방식은 충남 태안의 자염 방식과 유사한 통자락 방식을 쓰고 있으나 차이점이 있다. 갈자락에서 갈가마에 이르기까지 ‘갈○○’의 토착화된 용어, 염전에서 갈우물의 위치, 갈두둑의 길이와 높이, 갈가마(일명 소금가마) 등은 일반적인 서해안 자염방식과 다른 ‘백령도식 생산 방법’이라 볼 수 있다. 남북이 분단된 채 백령도만의 자료로 분석하기엔 한계가 있으며, 향후 황해도 염전과 비교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후일 과제로 남긴다.

 

▶ 인간의 필수품 소금, 백령도 소금 생산은 이제 기록 보존돼야…

 

2014년 기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기준치 1일 소금 섭취량 2000㎎. 인간에게 소금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자염 생산 방식은 전국적으로 1950년대 점차 사라졌다.

 

백령도는 때마침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부지불식간에 흔적조차 사라졌고, 그 땅은 백령도를 ‘먹고 남는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현상은 사라졌지만 우리 선조들이 살아왔던 삶의 현장, 그 현장들이 문화이기에 안타까움이 크다.

 

김구 선생이 언급한 문화강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현장의 기록’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삶이 100년 후 공백 상태라면 그것은 역사와 문화의 단절로서 있을 수 없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김석훈 백령중고 교감·인천섬유산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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