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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모두들 여섯 달 후 죽는대. 당신, 뭐 할 거야?

㊽ 돈 룩 업 - 아담 맥케이

 

에릭 홀트하우스의 저서 ‘미래의 지구 – 온난화 시대에 대응하는 획기적 비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지구 멸망의 시그널들이 본격화 된다. 당신은 내일, 혹은 며칠 후나 몇 달 후에 세상이 망한다면, 그래서 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뭐 근데 그런 질문을 하는 영화들은 많다. 예컨대 로렌 스카파리아 감독이 만든 ‘세상의 끝까지 21일’에서 주인공들은 마지막 순간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러 간다. 스티브 카렐은 아내보다는 옛 여자친구를 찾으러 간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다른 지역(뉴욕에서 시애틀로)에 있는 가족들에게 가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세상이 끝나는 날에 친구 찾기, 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였다.

 

대부분 가족을 만나러 가지만 또 대부분은 ‘막 산다’. 매일 밤 파티를 열고 아무나 붙잡고 섹스를 하는 데다 임신이나 성병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살이 찌는 것 따위는 더욱 더. 3주 후면 다들 죽는데 뭐. 곧 내가 죽을 운명이라면 과연 무엇을 할까의 질문은 그걸 아무리 코믹하게 그린다 해도 마음속은 서서히 침잠하게 되기 마련이다. 우울에 빠지게 된다.

 

 

넷플릭스의 새 영화 ‘돈 룩 업’은 지금까지 나온 지구 종말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죽기 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보다 사람들, 곧 인류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곧 죽는 것이 확실시 되면, 상태가 좀 나아질까? 그동안의 광기를 멈추고 정신들을 차리게 될까? 천재적 스토리텔러인 아담 맥케이 감독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그럴 기미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현재는 암담하지만 미래도 절망적이며, 죽기 직전까지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영화 ‘돈 룩 업’은 장르상으로는 코미디로 분류돼 있지만 그냥 이건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보고 나면 이상하게도 두 가지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데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하는 심정이 된다. 이른바 웃프다이다. 그래 뭐, 지구가 오래 안 간다는데 더 이상 뭘 어쩌겠는가.

 

환경 저널리스트 에릭 홀트하우스와 달리 영화감독 아담 맥케이는 지구 멸망의 단초를 혜성 충돌로 삼는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는 천체 관측을 하던 어느 날 거대한 혜성을 발견한다. 천문학자 사이에서 이런 일은 일종의 로또를 맞는 것과 같다. 그녀는 자신의 성(姓)을 딴 디비아스키 혜성의 발표를 눈앞에 두고 흥분에 빠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직후에 일어난다. 케이트는 지도교수 랜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함께 혜성의 이동 거리를 파악하던 중 이 에베레스트 크기의 괴물 혜성이 6개월 반 후에 지구와의 거리가 0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와 정면충돌하는 것이다.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할 당시, 운석이 충돌한 사건과 같은 것이다. 인류는 멸종된다.

 

자 이 소식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랜들과 케이트는 오만 군데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NASA의 박사가 동행한다. 물론 백악관부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은 일종의 여자 트럼프이다.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은 얼마 전 대법관을 임명했는데 이 인간이 포르노 출연 경력이 있어 논란이 된다. 올리언은 임명 철회를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이 대법관 후보를 ‘쉴드치려’ 한다. 둘은 한때 내연 관계였기 때문이다. 올리언은 대법관 지명 철회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여론의 향배, 자신의 지지율 추이 외에는 관심이 없다. 올리언이 케이트–랜들의 위기 진단을 받아들이는 건 순전히 그 때문이다. 이슈는 이슈로 덮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초기 대응이 미적지근할 때 이 천문학 연구자 둘(에 대해 백악관 비서실장은 하바드나 MIT 출신이 아니고 미시건 주립대 출신이어서 믿을 수가 없다는 식의 ‘재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이 비서실장의 성도 올리언이다. 곧 엄마가 대통령이란 얘기다. 트럼프의 딸 이방카가 백악관 보좌관 일을 맡았던 것을 빗댄 것이다.)은 신문사와 방송국으로 향한다. 가장 인기 있는 쇼에 출연해 절체절명의 위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겠다는 의지다.

 

 

그런데 다 알다시피, 여기나 거기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그 어디나, 방송과 언론은 이미 정론의 역할과 위기 센터의 역할을 포기하거나 상실한 지 오래다. 그것은 두 사람이 인기 진행자 브리(케이트 블랜쳇)와 잭(타일러 페리)의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했을 때 극에 달한다.

 

이날 이 프로그램의 메인 이벤트는 아리아나 그란데(실제로 아리아나 그란데가 나온다)의 출연이다. 그란데는 얼마 전 남친과 ‘쩍’ 갈라섰고 오늘 출연에서 그 과정을 고백할 예정이다. 그런데 웬걸 방송국은 그란데의 전 남자친구를 생방송으로 연결하고 두 사람은 각자 누구와 누구와 바람을 폈네, 사실은 그 상대와 잤네 어쩌네 얘기를 하다가 재결합하자는 폭탄선언을 한다. 방송과 시청자들은 난리 난리 난리부르스가 난다.

 

그러니 케이트와 랜들의 지구 멸망 소식은 어디서 개가 짖는 소리냐는 반응들이다. 여성 진행자 브리는 잘 생긴 랜들 교수에게 ‘눈짓’을 보낸다. 대학원생 케이트는 결국 생방송 도중 폭발하지만 그녀가 분노를 터뜨리는 순간은 ‘밈’으로 회자되며 비웃음만 사게 된다.

 

영화 ‘돈 룩 업’에서 묘사되는 지구 멸망 전, 사람들의 모습은 차라리 소돔과 고모라가 낫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도대체 머릿속에 어떤 쓰레기들을 담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일단 사람들은 진실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망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그때 가서 볼 일이라는 태도들이다. 그러고 나서는 나중에 가서야 온갖 난리를 친다. 패닉에, 패닉에, 또 패닉에 빠진다. 이건 진정한 위기 불감증 때문이거나 아니면 나 하나만 살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극단적 이기주의의 발로 때문이다.

 

정치권의 진영 논리, 편 가르기 역시 극에 달해 있고 결국은 진정한 정치가 진짜로 실종돼 있는 현실이야 말로 사람들을 다 죽게 만들 것이라는 점을, 영화는 보여준다. 앞서 언급한 백악관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은 바로 그런 일에 전문인데 그는 엄마인 대통령과 함께 한 대중연설에서 자신들의 속내를 이렇게 드러낸다.

 

“여기에 우리 같은 상류가 있고 거기에 당신들과 같은 노동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기에 저들(지식인과 좌파)이 있죠. 우리는 저들이 필요해요. 왜냐?! 바로 당신들과 우리를 같이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의 인간은 최첨단 IT사업자(마크 라이런스)이다. 이 사업자는 핵을 탑재한 우주선 미사일과 그걸 몰고 가는 극우 자살 특공대장(론 펄만)을 발사 이후 귀환시킬 만큼 개인의 탐욕에 빠져 있는 상태다. AI에 의한 빅데이터의 결과치임을 내세우는 이 IT사업자는 혜성 자체가 반도체에 필요한 천연물질로 돼 있다며(희토류를 암시한다) 이걸 잘게 쪼개서 태평양 바다에 떨어 뜨려야한다고 대통령을 꼬드긴다. 올리언은 그의 편을 들고, 미국과 세계는 랜들 박사 방식이냐, 이 IT사업자 방식이냐를 두고 또다시 논쟁을 벌인다. 시간은 째깍째깍 코앞으로 다가 온다. 지구는 이제 곧 폭발한다.

 

 

‘돈 룩 업’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불문가지, 명약관화이다. 지구는 멸망하기 전에 이미 멸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순전히 인류, 곧 인간들의 천박함과 오만함, 비루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에 하나 지구가 위기를 피해 가고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혹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해법보다는 정신의 혁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혁.명 사.회.철.학.의 복.원 6500만 년 전에 공룡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진 정신적 지도자들의 가르침 같은 것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적 스승의 부재야말로 지금 세상이 지닌 절체절명의 위기임을 영화는 정확하게 지적해 내고 있다. 그런데 그걸 굉장히 웃긴 방식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처절하게 직설(直說)을 던지는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 히피 청년(티모시살라메)의 기도 문구가 가슴에 콱 와 박는다. 우리에게 그 어떤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더라도 우리 모두를 담대하게 하소서라고 그는 기도한다. 맞다. 아담 맥케이 감독이 애기하려는 것도 이 담대함이다. 자존감을 갖고 이 부당하고 부정직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세상에 당당히 맞서고, 임하라는 뜻이다.

 

전설의 방송인 에드워드 머로였다면 지구의 마지막 날 전에 이런 멘트를 했을 것이다.

 

“오늘은 저의 마지막 방송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27년간 방송을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지낼 겁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행운이 함께 하기를. 신의 가호를.”

 

‘돈 룩 업’의 주인공들도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눈다. 신은 의로운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단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 모두들 그 ‘단 한 사람’이 돼야 할 때이다. ‘돈 룩 업’은 바로 그런 얘기를 하는 영화이다. 자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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