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딸에 대하여’는 엄청나게 관객이 몰릴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조용히 화제를 얻을 작품이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엉뚱하게 뉴스를 타고 있다. 대전여성영화제와 관련해서이다. 영화의 공식 개봉은 어제(9월4일)였으나 오늘과 내일 이틀간 열리는(9월5~6일) 이 여성 영화 행사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문제는 대전 시이다. 시가 지원하는 보조금 1350만원의 반납을 고리로 영화의 상영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대전 시의 주장이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동성애자인 딸이 자신의 파트너를 집에 데리고 들어 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엄밀하게 이야기 하자면 딸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딸의 성 정체성을 새롭게 알게 된, 그래서 자신의 성 인지 정체성에 대하여 새삼 깨닫고 돌아 보게 되는 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이다. 담담하고 성찰 적이다. 이런 영화를 동성애 영화라 해서 민원을 제기하고 그 민원을 앞장 세워 영화 상영을 못하게 하려는 것은 나치의 마인드에 다름 아니다. 검열과 폭력이다. 아무리 지금의 세상이 온통 비상식적으로 거꾸
극장가 한편에서 조용히 개봉 중인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연극 ‘라스트 세션’(국내에서도 2023년 대학로에서 번안 공연됐다. 신구 이상윤 출연)을 기반으로 한 작품인 만큼 매우 연극적인 작품이다. 두 배우의 다이얼로그가 영화 전반을 차지하고 내용도 꽤나 깊고 철학적이라는 얘기이다. 다만 이전의 연극이 어쩔 수 없이 ‘평면적’일 수밖에 없었다면 영화는 영화인 만큼 시공간을 오가는 입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예컨대 영화에서는 프로이트 박사의 꿈과 환상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가 지니는 표현주의 미학의 정점 같은 것을 담보해 내는 것이다. 그런 장면은 마치 오래전 알프레드 히치코크가 만든 ‘스펠바운드’(1945)를 연상케 한다. 한국에서는 『 KBS명화극장 』 방영 당시 ‘백색의 공포’라는 제목의 영화였으며 그레고리 펙과 잉그리드 버그먼이 나왔던 작품이다. 정신분석이지만 스스로 정신병, 강박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은 종종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그림과 같은 이미지 영상으로 이어진다. 이번 영화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에서도 프로이트 박사(안토니 홉킨스)는 꿈을 꾸는데,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휠체어에 태워진 채
놀랍게도 한국영화 중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는 그리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툭하면 벌어지는 역사 논란들이 영향을 줬기 때문일 수 있다. 이상한 논란에 휘말리거나 공격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작자나 투자자를 지배할 수도 있다. 홍범도 장군의 위대한 쾌거의 독립운동 전투 ‘봉오동 전투’(2019)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절묘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이다. 이 영화를 요즘 같은 때에 다시 본다면 어떨까 싶다. 영화 ‘파묘’가 아무리 일부에서 반일 좌파적 영화라며 국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라는 식으로 떠들어 댄다 한들 관객 천만을 훌쩍 넘기는(11,913,519명) 대성공을 거둔 것은 어리석은 정치가 역사를 놓고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정부와 국방부는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홍범도 장군이 고려공산당 활동 전력을 문제 삼았다. 대중들은, 그렇다면 장제스와 마오쩌뚱의 1,2차 국공합작(일본 제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일시적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한 것) 역시 장제스의 공산당 활동 전력으로 봐야 하느냐는, 기이한 역사 해석을 요구 받는 셈이라 느꼈다. 홍범도 흉상 철거 문제를 놓고 대중들의 정
한국에서 가장 과작(寡作)의 감독 군에 속하는 오승욱 감독이 9년 만에 세 번째로 내놓은 신작 ‘리볼버’는 필름 누아르에 정통한 감독과 제작자(사나이 픽처스 한재덕 대표)답게 어두운 욕망과 비정한 관계, 하드보일드한(hard-boild : 냉혹한) 액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간의 평가는 저점을 오가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평자로서의 짐작으로는, 극의 결말 부분에서 감독과 제작자, 배우의 의견이 다소 차이가 있을 수는 있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관객들도 그 부분에서 영화에 대한 전체 반응이 엇갈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의 완성도가 어떻다느니, 배우들의 연기가 어떻다느니 하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저급한 인상비평에는 동조하기가 어렵다. ‘리볼버’는 잘 만든 영화이고 나름 숨이 막히는 서스펜스가 있으며 이런 류의 영화 치고 속도도 빨라서 오히려 감독이 느린 작가주의 풍을 따라가지 않고 상업주의 영화의 흐름을 타려고 했다는 생각마저 갖게 만든다. 이 정도면 흔히들 ‘재미가 있다’고들 말한다. 게다가 조영욱의 음악은 ‘올드 보이’나 ‘신세계’ 때처럼 자신의 강점과 특성(클래식과 재즈를 오가는 크로스 오버 풍의)을 잘 살려 내고 있어 극적 긴장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푸른 눈의 사무라이’는 미국産이다. 넷플릭스 재팬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사무라이 색채가 강하고 다수의 일본인들이 제작에 참여해서 마치 일본 작품처럼 느껴진다. 한국에서 지난해 11월 첫 공개됐을 때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했던 건 일본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반감이 작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폭발적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교적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반응도 비슷해서 인구에 회자되는 빈도가 높아지고 결국 넷플릭스가 올해 말 시즌 2를 내놓을 예정이다. 시즌 1, 에피소드 8편 마지막이 얘기의 매듭을 짓지 않기도 했다. 완연하게 시즌 2를 예고하는 끝맺음이었던 셈이다. 주인공이자 혼혈 사무라이 검객인 미즈(타무라 무츠미)는 자신의 원수 중 한 명인 어바이저 파울러(타키 사토시)를 죽이지 않는 대신 그를 앞세워 영국 런던으로(혹은 어디엔 가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는 것으로 끝난다. 미즈는 사실 여자인데, 푸른 눈을 가졌고, 자신의 생모가 어바이저 파울러를 비롯해 백인 남자 넷에게 겁탈을 당해 자신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 미즈는 그래서, 매우 불행한 어린 시절과 인생을 살아왔고 자신을 혼혈
솔직히 억울한 사람은 소유진일 것이다. 그녀는 최근 이진숙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의 이전 발언 탓에 다시 한번 우파 연예인으로 분류 낙인 찍혔다. 과거 이명박을 지지하는 연예인 명단에 이름이 들어 있어서 였는데, 그것도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 불분명한 상태의 얘기이다. 이런 게 잘 확인이 안되는 이유는, 연예인들로서는 누구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네 안했네, 식의 논쟁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자신의 연예계 활동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배우 자신보다도 소속사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 이른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아닌)전법이다. 해당 연예인에게 철저히 함구령을 내리고 일체 노 코멘트로 일관하게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유야무야 된다고 본다. 소유진 측으로서는 그렇게 됐을 법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 얘기가 다시 불쑥 튀어 나온 것이다. 최근 그녀의 남편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MBC가 새로 시작한 손석희 앵커의 새 프로그램 ‘질문들’에 출연한 것도 아내에 대한 우파 논쟁을 희석화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우성과 박찬욱 권해효를 오
영화가 사람처럼 의도된 가벼움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면 그런 작품은 ‘핸섬 가이즈’가 될 것이다. 일부러 궁색하고 못나게 군다. 작정하고 사람들을 웃기려고 한다. 넘어지고 자빠진다. 이런 시대, 이런 시절에는 이렇게라도 웃고 넘어가자며 허허실실 댄다. ‘핸섬 가이즈’의 두 남자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는 핸섬한 남자들이 아니다. 그저 ‘못생겼다’의 차원도 아니다. 극중 파출소장(박지환)은 이 둘이 자신의 마을을 범죄의 소굴로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소장과 부하 경찰(이규형)은 이들이 흉악범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는 재필과 상구의 외모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그들이 전혀 잘못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다소 어폐가 있다. 한국 같은 비뚤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못생긴 것은 죄다. 그들은 1차 용의자로 오해받아도 싼 것처럼 취급받는다. 영화 ‘핸섬 가이즈’는 구르고 넘어지며 사람들을 몸으로 웃기려고 애를 쓰지만 그 안에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기묘한 ‘돌려 까기’가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정말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재필과 상구는 죽마고우에 가까운 선후배 관계이다. 공사판 노동자들이다. 오랜 노동으로 돈을 모았고 시골집을 샀으며 이제 막 이사를 가고 있는 중이다
‘프렌치 수프’는 무려 30년 전 ‘그린 파파야의 향기’와 ‘시클로’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던 베트남계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홍의 뒤늦은 신작이다. 그는 중간쯤인 2009년에 이병헌, 기무라 다쿠야, 조시 하트넷을 주연으로 내세워 ‘나는 비와 함께 간다’라는 영화를 찍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 그 직후인 2011년에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상실의 시대’를 영화로 만들었고 수작이었지만 역시 흥행에서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메가폰을 잡지 않았다. 젊은 관객들에게 이제 트란 안 홍은 새로운 인물이다. 영화 ‘프렌치 수프’는 제목과 달리 프렌치 수프만 만드는 얘기는 아니다. 프랑스 요리, 그것도 만찬을 즐기는 미식가와 요리사, 그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 도댕(브누아 마지멜)은 ‘미식계의 나폴레옹’이라 불릴 만큼 음식에 정통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요란하고 까다로운 입맛을 20년 동안 채워주고 만족시켜 준 요리사는 여인 외제니(줄리엣 비노쉬)이다. 이 둘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며 살아가는 연인이다. 둘은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긴 했지만 이제 막 결혼을 하려 한다. 도댕이 줄기차게 결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외제니는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영화 ‘원더랜드’가 좋은 영화라는 것,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송강호가 신하균에게 하는 대사, 곧 “나 너 착한 거 안다”처럼 따뜻하고 착한 작품이라는 건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또 동의하는 내용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전설의 영화감독 하워드 혹스가 얘기한 대로 좋은 영화란, 좋은 장면 세 개쯤이 있는 작품이라는 원칙 아닌 원칙을 적용할 때 ‘원더랜드’는 세 개 정도는, 아니 그 이상의 좋은 장면으로 차고 넘치는 작품이다. 그 점에 대해서도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17일 현재 전국 570,347명을 모은 수준으로 이 정도면 시쳇말로 ‘폭망’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원더랜드’의 이야기 축은 세 개이다. 아니 네 개이다. 중심은 해리(정유미)와 현수(최우식)가 이끄는 AI 여행사 원더랜드 팀이다. 이 둘은 죽어 가는 사람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들 존재가 지닌 모든 정보를 사이버 상에 심어 놓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할 사람들, 그의 존재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모두와 소통할 수 있도록, 그것도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슬쩍 극장에 나타났다가 겉치레로 상영을 하는 둥 마는 둥 사라진 영화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애당초 목표가 부가형 서비스 윈도우(VOD나 케이블TV, OTT)였을 것이다. 이제는 극장 상영작이 아닌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저어하거나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됐다. 극장이든 비극장이든, 결국엔 어떻게든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만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전에 이런 영화가 있(었) 다는 것 정도 알고 있는 것은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물론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매우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 VOD나 OTT로 보기에, 그렇게 시간 때우기용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떨어지는 작품도 아니다. 영화는 종종 재미로, 쉬기 위해, 그래서 일상의 활력을 얻기 위해 보는 것이다.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그렇게 머리를 쉬고, 리프레시(refresh) 하기에 딱 좋은 작품이다. '할리우드 살인사건'은 우리말 제목의 느낌대로 할리우드, 곧 LA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한 사립 탐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립 탐정은 뉴욕 같은 동부보다 LA, 캘리포니아가 많다. 미국의 동쪽은 춥고 서쪽은 따뜻하며 사람들이 친절하고 '루스'하다. 특히 할리우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