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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의 징검다리] 학교교육을 넘어 방과후교육을 받을 권리

 

학교교육이 위기에 처했으며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현행 학교교육은 지식전수 위주의 국영수 중심 교육 성격이 강하고 경쟁심과 우열의식을 부추기며 개별맞춤형 교육은커녕 지역특색교육도 구현하기 어렵다. 뚜렷한 고교서열화와 대학서열화로 고입경쟁과 대입경쟁이 치열한 우리현실에서 학교교육은 부모 운을 극복하기보다는 부모 운을 증폭시키는 역기능까지 수행한다. 부모의 유전인자와 경제자본, 학술문화역량에 따라 아이의 발달과 성장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교육기회와 교육환경이 달라지고 관심사와 가치관, 사회관계가 달라진다. 공교육의 분명한 목표 중 하나는 부모 운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아이들이 교사효과와 학교효과로 교육기회를 풍부하게 누리며 높은 교육성취를 이루게 하는 데 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지능과 예체능은 부모의 유전인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부모 운의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교육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서도 그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예술 역량도 부모의 계급계층에 따라 교육기회가 크게 차이난다는 점에서 부모 운과 관련성이 높다. 이들 역량은 교육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명문대 입학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교육격차 발생요인이다. 물론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반적 수준에서는 교육기회와 교육결과에서 차지하는 본인노력의 비중이 부모 운만큼 크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제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 아이들이 넉넉한 집안 아이들에 비해 명문대 입학실적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GDP대비 유초중등 교육예산비중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유초중고 교육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경제적 신분대물림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지금의 학교교육만으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를 상쇄하고 교육기회의 실질균등을 이루는 데 몹시 부족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교육적으로 무엇을 더해야 하나? 다들 지금의 학교교육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답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과 진로교육, 노작교육과 예술교육, 생태교육과 시민교육을 강화하자는 데 이견이 없다. 교과와 학년을 불문하고 독서교육과 글쓰기교육, 토론교육을 강화하자는 데도, 지역사회와 학교가 아이교육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이러저런 내용을 지금의 학교교육과정에 추가하라는 요구는 몹시 비현실적이다. 학교교육과정은 이미 꽉 차서 더 이상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한 교육내용이라도 학교교육과정에서 무리하게 소화해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학생들에게 달리 접근기회를 제공할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효과적이다.

 

불편하지만 분명한 진실은 지금의 학교는 마음학교, 인생학교, 시민학교, 세계학교, 생태학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인문학교, 노작학교, 예술학교, 스포츠학교, 게임모험학교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빅 데이터, 메타버스 등 신기술학교와도 거리가 멀다. 이런 학교 밖 학교의 수혜자는 비교적 넉넉한 집안출신 아이들로 한정됐고 그것이 교육결과의 격차를 만들어내는 눈에 안 보이는 주요요인의 하나였다.

 

그런데 위의 학교 밖 학교교육들이 과연 학부모가 바라는 것일까? 학부모가 학교에 바라는 바는 우선 인성을 갖춘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모든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알게 하고 좋은 생활습관을 익혀주며 적성과 소질을 파악해서 진로를 제시하는 일이다. 지적호기심을 살려내서 공부동기를 부여하고 자율성과 책임감을 강화하고 우애와 리더십을 길러주는 일이다. 한마디로, 가정에서 못해주지만 공동체 안의 좋은 삶에 필요한 좋은 생활습관, 좋은 가치관, 좋은 판단력, 좋은 실천력, 좋은 심미안을 갖춰주는 일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다양한 요구를 지금의 학교교육과정에 새로 반영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학교교육과정은 이미 꽉 차있어서 무언가를 새로 넣으려면 무언가를 빼야하는데 과연 뺄 것이 있을지 의문이다. 요컨대, 학교교육과정을 아무리 뜯어고쳐도 학교교육을 인생교육 중심, 예술교육 중심, 시민교육 중심, 생태교육 중심으로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꽉 차있는 학교교육과정 개편과 혁신을 넘어 누구나가 평등한 접근권을 갖는 수준 높은 방과후교육과정을 만들어내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방과후교육과정에는 방학중교육과정도 포함된다.

 

요약하자. 학교교육만으로는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부모 운을 상쇄하는 교육효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이 부모 운을 극복하는 순기능을 담당하려면 공교육이 학교교육을 넘어 방과후교육까지 확장되어야한다. 이제부터 공교육당국은 학교교육뿐 아니라 방과후교육을 통해서라도 전인적 교육기회를 충실하게 제공해야만 한다.

 

이미 학습부담에 허덕이는 학생들에게 방과후교육까지 의무적으로 받으라는 것이냐고 반발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학생에게 방과후교육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일 뿐이다. 한마디로, 이제부터 학생들은 공교육의 일환으로 최상의 학교교육뿐 아니라 최상의 방과후교육을 제공받을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특히 가정형편이 열악한 아이들에게 복음이 될 것이다.

 

상상해보자. 집안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방과후/방학중 학교를 통해 지금은 비교적 넉넉한 집안의 자제들만 접근 가능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에 접근하며 성취동기를 강화하고 교육성과를 높이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음수련, 동기부여, 애니어그램, 리더십훈련, 분노조절, 시간관리, 체력관리 등 삶의 기술 프로그램에 마음껏 접근하며 역경을 헤쳐 나갈 내면의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공부에서 손을 놓은 아이들은 기초학습기회를, 교과보충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은 보충학습기회를, 수월성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은 수월성교육기회를 제공받을 것이다. 체계적인 방과후교육 설계를 통해 학교교육에서 부족한 전인적 교육기회를 제공할 경우 학생 개개인은 각자의 잠재력을 좀 더 쉽게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세계최고의 교육국가로 발돋움하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튼튼하게 다지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윤석열 당선자의 교육철학이나 교육정책은 특별히 알려진 게 없다. 다만 김인철 교육장관 후보자는 대입에서 정시비중=수능비중을 높이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를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 유지방침이 지금의 고입경쟁광풍과 고입사교육비부담에 어떤 문제의식도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면, 정시확대방침은 수능한방주의와 점수경쟁주의, 반복적 문제풀이교육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김인철 후보자가 예고한 두 가지 정책방향만 관철돼도 한국교육은 10년 넘게 후퇴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서다. 오는6.1.교육감선거의 향배가 정말 중요하다. 최소한 서울에서 진보교육감시대가 지속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교육대반동 정책으로 말미암아 학생, 학부모, 교사 등 모든 교육주체의 고통과 부담이 더 늘어날 게 틀림없다.

 

2010년 이래로 진보교육감시대는 혁신학교를 선보여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에서 어느 정도 새 표준을 만들어냈으나 혁신학교의 실험과 실천을 일반학교로 확산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혁신학교운동은 전국 어디서나 초기의 활력을 잃고 뚜렷한 한계에 봉착한 상태다. 진보교육감들은 국영수사과 등 핵심교과운영을 변화시킬 혁신적 개별교과정책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영재학교, 과학고, 특목고 등 특권고교에 대해서 학부모의 상위소득 편중방지나 학생의 적정계열 진학유도, 진보적 대안제시 등 진보적 문제의식과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교육과정의 혁신적 통융합이나 교과경계를 가로지르는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외쳤지만 실천의지가 미약했다. 일례로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광역시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의 주요내용과 쟁점을 학습, 토론하는 수업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생활교육의 신기원을 연 3주체생활협약 역시 일부 혁신학교에서만 실시되었을 뿐 어디서도 일반학교의 담장을 넘지 못했다.

 

진보교육감시대는 혁신학교 학력논쟁에서 보듯이 성적중하위층 학생의 기초학력 진보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했으며 소득중하위층 학생의 전반적인 학업성적 진보나 기초학력 진보를 보여주지 못했다. 진보교육감시대는 혁신교육지구사업을 통해서 전례 없이 학교와 지역사회의 협력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으나 모범사례를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진보교육감시대는 끝 모를 교권추락을 멈추고 교사를 보호하는 일에서도 유능하지 못했다. 끝으로 진보교육감들은 명문대 총장들과 협의하여 기회균등선발이나 지역균형선발을 강화하거나 교대총장, 사대학장과 커리큘럼개혁을 관철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경제계와 머리를 맞대고 특성화고를 현대화하기 위한 노력도, 환경단체들과 협력해서 생태교육을 본격화하기 위한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진보교육감들은 합당한 정치적 위상과 발언권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요컨대, 진보교육감시대는 무상급식과 체벌금지, 학생인권으로 시작해서 탈권위주의, 반부패, 교육복지에서 상당한 변화와 성공을 거뒀으나 일부 혁신학교를 제외하곤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에서 체감가능한 성과를 못 낸 채 교육계 내부를 맴돌며 표류 중이다.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진보교육감시대는 누구도 가슴 뛰게 하지 못한다. 진보교육감들은 12년 전의 무상급식, 학생인권, 혁신학교에 못잖은 담대한 의제를 내놓고 재도약을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교육감시대는 스스로의 정체성도 확립하지 못한 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될 것이 틀림없다. 이번 6.1.교육감선거에서 진보교육감후보들, 특히 재*삼선에 도전하는 진보교육감들은 하루바삐 진보교육을 한 단계 도약시킬 공통공약을 내걸어서 유권자를 감동시켜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학교교육을 넘어 방과후교육까지 공적 책임으로 제공함으로써 부모 운에 따른 교육기회와 교육결과의 격차를 해소하고 부모신분의 대물림을 예방하겠다는 교육기회 실질보장공약이 진보교육감시대 2.0의 대표공약으로 적합하다.

 

새로운 교육체제아래서는 누구든지 최상의 학교교육뿐 아니라 최상의 방과후/방학중 교육까지 제공받을 권리를 갖는다. 교육받을 권리의 현대적 확장이자 실질화를 통해서 지금까지는 부모 운이 좋은 학생들이 사교육의 형태로 제공받아온 양질의 학교 밖 교육을 부모 운이 따르지 않은 학생들도 무상으로 제공받게 된다. 이를 통해 누구든지 공동체 안의 좋은 삶에 필요한 생활습관과 문화감수성, 학습능력과 시민역량을 함양할 풍부하고 지속적인 교육기회를 갖게 된다. 또한 그 결과로 누구든지 전인적인 필수역량 등 더 나은 교육성과에 도달할 게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진보교육감은 최상의 학교교육은 물론이고 최상의 방과후교육까지 제공함으로써 모든 학생을 위한 교육기회의 실질균등화와 교육결과의 상향평준화, 그리고 깨어있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도모할 새로운 임무를 갖는다. 부모 운과 상관없이 누구나가 공교육을 통해 교육기회와 교육결과의 실질 균등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국가의 약속은 진보교육감이 새 임무를 적극적으로 떠맡아서 신분대물림현상을 극복할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다. 이제부터 진보교육감 호칭은 이러한 시대적 과업에 있는 힘을 다해 도전하는 교육감에게만 주어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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