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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69.독산성 세마대(禿山城 洗馬臺)

 

독산성은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자리 잡고 있는 독성산에 삼국시대에 쌓아서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군사들이 가등청정(가토오기요마사)의 부대와 싸워 승전한 곳이다.

 

 
독성산은 예전엔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대머리산이라는 뜻으로 독산(禿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운양 김윤식이 고종 2(1865)년 겨울에 정조 임금의 건릉(健陵)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을 때 독성산성을 유람한 시를 남겼는데, 민둥산이던 이 산이 언제부터인지 수목들이 자랐다고 하였다.
"일찍이 섬 오랑캐에게 곤욕 당할 때(임진왜란), 물길이 끊겨 병사들 오래 목말랐는데, 쌀을 들어 말 등에 쏟아부었더니, 왜군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물 뿌리는 줄 알았네. 왜놈들 깜짝 놀라며 신이 돕는다 여기니, 오랜 포위를 하루아침에 깨뜨릴 수 있었네"라고 읊었다.

 


 


독산성 정상에는 세마대(洗馬臺)가 있는데, 즉 1593년 무더운 여름 7월에 권율 장군이 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주둔하고 있을 때 가등청정이 이끈 왜군이 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내 약을 올렸다. 그러나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를 산 위로 끌어올려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였다.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했다는 것이다.

 

 
조선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이정구(李廷龜)가 쓴 ‘독성산성기(禿城山城記)’에 "이 산성은 넓은 들판의 한가운데 있어 험준하거나 막힌 곳이 없으며, 길 옆에 산자락이 우뚝 치솟아 있으나 이 또한 나무가 없어서 바라보면 빤질빤질하였다. 그래서 이를 이름하여 독성(禿城)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아서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왜구들이 크게 몰려왔을 때에 도원수 권율이 여기저기서 싸우면서 이 성으로 들어와서 여기에 웅거하여 여러 차례 적병들을 물리쳤으므로 그때서야 사람들이 비로소 이 성이 지형의 편리함을 얻어서 나라의 요충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였다.

 

 

 
그런데 대머리산에 숲이 우거지게 된 것은 사도세자의 현륭원(顯隆園=隆陵)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조 14(1790)년 2월에 정조 임금이 현륭원에 나아가 직접 제사지내고 좌우의 산기슭을 두루 살펴본 후 독성산성의 운주당(運籌堂)에 들었다.
"1760년(영조36) 온천에 갈 때 여기 들렀는데, 진남루(鎭南樓)에 올라가 활을 쏘아 네 발을 명중시키고 백성들의 고충을 물었었다. 내가 31년이 지난 지금 이 산성에 올라 이 당(堂)에 앉아서 백성들을 불러 보고 옛일을 자세히 물어보자니 나도 모르게 슬픈 감회가 인다"하였다.
그리고는 성 안의 노인들과 승려들에게 벼슬을 높여주거나 집집마다 쌀 한 섬씩 나누어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 주변에 여러 가지 나무를 심게 하였는데, 독산성 일대에도 심었다. 그 이유는 독산성에서 현륭원이 바로 내려다 보이기 때문이었다.
정조 21년 3월에는 독성에 모집에 응해서 온 백성들이 소나무 3537그루를 심었다. 대궐에서 내린 상수리가 8섬, 재실(齋室)의 상수리가 62섬 7말, 차사원이 기증한 상수리가 12섬, 안성 군수가 기증한 상수리가 412섬 7말, 용주사의 상수리가 10섬, 화성의 솔방울이 2섬, 영암군의 솔방울이 6말이었다. 용주사 삼거리에서부터 독산성, 안녕촌(安寧村) 뒤쪽 기슭의 여러 곳에 심은 것을 모두 합하면 소나무는 18만 8395그루를 심었고, 버드나무 3721그루, 잡목 850그루를 심었다. 말목은 4438개가 들었고, 공석은 2743닢이 들었으며, 상수리는 504섬 14말을 파종했고, 솔방울은 2섬 6말을 파종했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